너는 내 것이다!(사 43:1~4)

너는 내 것이다!(사 43:1~4)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4

강성열 교수
2021년 11월 17일(수) 11:26
오늘의 본문은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40~55)에 속한 것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 중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의 말씀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요, 창조주이시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메시지가 이 단락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아울러 이사야는 우상 숭배가 쓸모없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고난받는 종을 통해 이루어질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노래한다. 오늘의 본문이 속한 43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7절(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하나님), 8~13절(하나님의 증인인 이스라엘), 14~21절(새로운 출애굽: 바벨론 해방), 22~28절(이스라엘의 죄악) 등이 그렇다.

1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동안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충분한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하셨기에(사 40:1~2) 이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하신다. 무엇보다도 1절에서 이사야는 '사자 양식'(messenger formula)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분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아주 특별한 민족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야는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가리키는 '바라'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소명과 출애굽 사건 및 가나안 정착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것들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는 이러한 신앙고백으로부터 더욱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과거에 그들의 조상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내신 것과 같이 이제는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예언자는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이 과거의 출애굽을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New Exodus; 43:14~21; 48:6~7). 창조와 구속의 이러한 결합은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고(출애굽 사건), 또 그들을 불러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다("너는 내 것이라")는 1절 후반부의 메시지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구속하신 분이요, 그들을 자기 소유로 삼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앞으로도 그들을 구속하실 분임을 암시한다. 사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는 단순히 하나님이 과거에 그들을 구속하셨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그들을 자기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이 과거에도 그들을 구속하셨지만, 앞으로도 그들을 구속하실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2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나님은 그들이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환난을 만날 때 그것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요, 홍수의 물이 그들을 침몰하지 못하게 막아주실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홍해 앞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구원 은총(출 14장)을 빗댄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바벨론에서 당하는 고통과 시련으로부터 그들을 건져주실 것임을 암시한다. 그들이 불 가운데 지날 때 타지 않는다거나 불꽃이 그들을 태우지 못할 것이라는 후반부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참조. 단 3장).

3~4절: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신다(3a절). 그 이름들은 이스라엘을 도우실 하나님의 품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들이다. 그 중 첫 번째인 "야웨 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야웨 하나님 자신도 이스라엘에게 속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호관계는 사실 시내 산 언약에 잘 반영되어 있다(레 26:12; 렘 7:23; 11:4; 참조, 출 6:7; 신 26:17~18; 삼하 7:24). 이사야가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출애굽 사건 당시의 언약 관계가 다시금 회복될 것임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언약 관계의 회복이 제2의 출애굽인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암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사야가 소개하는 하나님의 두 번째 이름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다. 이사야의 전문용어로 널리 쓰이는(1:4; 5:19, 24; 10:20 등) 이 이름 역시 앞의 이름처럼 출애굽 사건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레 11:44~45). "구원자"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이다(출 14:30; 15:2). 이상의 세 이름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곧 야웨 하나님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임을 뜻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품성은 그가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해 이집트와 구스 및 스바 등을 속량물로 주셨다는 사실(3b절)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내어주고 이스라엘의 생명을 대신하여 다른 민족들을 내어주시는 것은, 순전히 이스라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요, 그가 사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4절). 결코 이스라엘이 잘나서가 아닌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인류를 위한 대속적인 사랑으로 발전한다. 하나님께서는 존귀한 그의 백성, 곧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 2:9)을 위하여 자기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대속물로 내어주기까지 하신 것이다(마 20:28; 막 10:45).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