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마을에 부는 희망바람

민들레 마을에 부는 희망바람

[ 현장칼럼 ]

남금란 목사
2021년 11월 12일(금) 09:02
어린 딸을 데리고 이 곳 보호시설에 오신 분이 있었다. 이 분은 생계로 인한 빚이 많아서 살 길이 막막했다. 이런 분들은 먼저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회생을 신청한다. 취직을 해서 일정기간이라도 성실히 돈을 갚으면 더 많이 탕감되고 자립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 왔을 때의 그녀의 불안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질병으로 학교생활 적응이 어려웠고, 그로 인한 집단따돌림으로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함께 생활하면서 보니 이 분은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사회성도 좋았다. 집단 상담에 참여할 때마다 눈에 띄게 성장하며 밝고 착한 심성을 드러냈다."이런 좋은 학교도 다 있네요." 이 분이 '시설'에 대해 '학교'라고 표현하여서 나는 "이 학교에서 ○○씨는 우등생이십니다"라고 대답하며 서로 웃었다. 이 분은 요리솜씨가 좋아서 식당에 취직했다. 중학생 딸을 잘 키워내겠다는 강인한 의지로 빚을 갚아가며 자립에 다가섰다.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지켜보는 우리들도 힘이 났다.

어느 날 이 분이 말을 꺼냈다. "원장님, 소원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통장에 내 돈 딱 100만 원 있는 거고, 둘째는 딸 무탈하게 크는 거고요, 셋째는 조그만 제 (음식)가게 내는 거예요"라고 하셨다. 이것이 가난하여 소박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가! 나는 내 부질없는 욕심이 일어날 때마다 이 분의 세 가지 꿈을 떠올리면서 내 의식을 깨우는 종소리가 되게 한다.

6개월이 지나,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집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꿈을 열배나 이룬 셈이다. 이 분에게 1000만 원은 아마 천하만큼 큰 것이리라.

본인 스스로가 노력하면 정부의 자립지원금도 있고, 민간기금이나 후원자가 생겨 평생의 족쇄인 빚의 노예에서 벗어날 길이 생긴다. 아무리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이라도 본인의 자립의지에 따라 반드시 살 길이 주어지게 되어 있다.

이 분이 작년에는 월세지원을 받게 되었다며 환히 웃으며 좋아하시더니, 지금은 한 부모 가정에 제공하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여전히 우리 동네에서 살며 시설을 친정집 삼아 오가고 있다.

시설에 들어오는 한 번의 용기를 내었는데 소원도 이루고 연이어 계속 좋은 일이 일어난다며 행복해 하신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 분이 어떤 일에도 감사하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정신력'을 보여준 것이다. 자신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창조적인 힘이 발현된 것이리라 믿는다. 코로나19로 인해 두 번이나 실직을 경험했지만, 그 때마다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이 기회에 좀 더 기술을 익혀보려 해요" 하며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켰고,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이 분의 감사가 커질수록 정말로 현실에서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겨났다. 헤어진 아이의 아빠도 취업이 되어 중학생 딸의 양육비를 보내게 되었고, 사춘기를 지나는 딸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었다.

시설에서 퇴소하신 분들이 주변에 살게 되면서 이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작지만 우리 같은 시설이 지역사회에 있게 됨으로 마을 전체가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동네 주민 센터는 한 부모 여성가장을 위한 복지 정보력과 서비스의 질이 최고가 되었다. 학교도 시설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그래서 시설 퇴소 후에도 웬만하면 이 동네에 계속 살고 싶어 한다.

민들레 홀씨 같은 우리들 가난한 마음이 모여 사는 예쁜 마을에 바람을 타고 희망이 흩날린다.





남금란 목사 / 전국여교역자연합회복지재단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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