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 역사 속 연약하지만 충성된 산골 교회의 세례식

114년 역사 속 연약하지만 충성된 산골 교회의 세례식

[ 아름다운세상 ] 봉화척곡교회 35년 만에 청소년 5명에 세례 베풀어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21년 10월 26일(화) 23:33
【 봉화=임성국 기자】"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봉화척곡교회의 다음세대는 '희망'이고, 쓰여질 '역사'입니다. 세례받은 다음세대들이 멋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수십년 만에 거행된 세례식, 정말 감격스럽고 은혜 가득했습니다."

'역사는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신앙의 유산은 더욱 그러하다. 114년의 오랜 시간을 지켜온 봉화척곡교회의 담임 박영순 목사는 교회의 전통과 과거를 소개하던 중 지난 달 거행된 잊지 못할 세례식을 떠올리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산속 깊숙히 묻혀있는 봉화척곡교회는 어쩌면 말없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뻔했다"며, "마을도, 젊은이도, 그 누구의 관심도 없던 이곳에 수십 년 만에 세례식이 열렸고, 그 가운데 땅속의 보물을 캔 것처럼 다시금 희망이 샘솟고 있다"고 전했다.

교회는 지난달, 35년 만에 중·고등부 학생 5명에게 세례를 베푸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례식을 거행했다. 1907년 설립돼 기독교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열악한 상황에 놓인 산골의 작은 교회로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다. 몇 안 되는 대부분의 성도가 70세 이상의 고령인 점까지 감안한다면 이번 십 대 청소년들의 세례식은 각별하다 못해 특별하기까지 했다.

박영순 목사는 이날 세례식에 대해 "교회의 존폐를 논해야 할 정도로 마을도 없는 산골 외지인 이곳에 몇 년 전 교회학교가 생기고, 전도되어 믿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이 꾸준히 신앙생활을 했다"며, "초등학생들이 어엿한 중·고등학생으로 성장해 세례를 받게 돼 감개무량하다. 그래서인지 산골 교회의 세례식은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전했다.

주일 오전, 세례식이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달리 통합예배로 진행된 예식에는 10여 명 되는 온 교인들이 참석했다. 박 목사는 학생들의 머리에 손을 대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35년 만에 세례교인을 배출한 교회의 담임으로서 그 감동과 은혜를 짓누를 수 없었다고 했다. 고령인 어르신들만 출석하던 작은 교회에서 신앙을 고백한 청소년들이 주께 속한 것임을 약속했으니 이보다 아름답고 귀한 일이 있겠는가.

이날 세례를 받은 송영아 학생(17세)은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친구 전도로 교회에 나오게 됐다"며, "세례를 받았으니 앞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절대 신앙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바라기는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시면 좋겠고, 산속에 있는 작지만 충성된 우리 교회가 더 오래도록 역사를 이어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고백에 흐뭇한 미소를 보인 오영란 집사는 2018년 귀촌한 몇 안되는 교회의 젊은 집사이다. 그는 "목사님의 헌신적인 사역과 김영성 장로님을 비롯한 어르신 교우들의 사랑 속에 35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겨내고 귀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됐다"며, "우리 학생들이 신앙 안에서 더욱더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늘 기도로 힘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날 세례예식에 참석한 오영란 집사를 비롯해 전 교인은 5명의 수세자를 위한 신앙의 돌보미,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전교인은 박영순 목사의 세례식 선포 후 회중서약을 통해 "수세자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로 돕고 사랑으로 돌보겠다"며, 다음세대 자녀들의 신앙이 성숙해 봉화척곡교회의 역사이자, 한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희망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다.

박 목사는 "세례식은 늘 경건하고 은혜가 있다. 하지만 35년 만에 거행된 봉화척곡교회의 세례식은 여태껏 경험한 것 중 가장 은혜롭고 감동적이었다"며, "5명의 학생이 자신의 과거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 자신의 주인을 바꾸는 날일뿐만 아니라 기존 교우들은 교회가 이 땅에 마지막까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확인하게 했다"고 감동을 전했다.

세례식이 있기 전 봉화 척곡교회는 담임 박영순 목사의 사택이 없어 건축공사를 기획했었다. 하지만 박 목사의 "다음세대가 없으면 교회 사택도 필요 없다. 다음세대를 먼저 세워나가야 미래가 있다"는 만류에 교회의 모든 역량과 재원을 다음세대 양육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과 작은 산골교회는 매년 두 차례 교회 안 울타리를 넘어 마을의 학생들에게까지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 봉화교육지원청과 협약을 맺고 피아노 등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교육기관의 역활도 감당 중이다.

이 일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수십 년 간 방치돼 있던 교회를 다시 세우고 복원하며, 문화재로 등록하는 일에 헌신한 97세 김영성 장로는 이날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며 학생들이 한국교회의 미래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114년의 역사가 부끄럽지 않게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교회가 될 것을 다짐했다. 김 장로는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을 전하면서 특별히 "아이들을 신앙으로 훈련하고 이끌어주신 박영순 목사님의 눈물어린 헌신과 전교인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된 열매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다. 세례식은 산골 동네 척곡리의 잔치일 뿐만 아니라 어려움 중에 있는 작은 농어촌교회들에도 희망의 소식이 될 것"이라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세례식을 35년 만에 가진 봉화척곡교회. 114년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포기없이 충성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해 온 교회의 아름다운 사역과 헌신이 지치고 피곤한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의 디딤돌이 되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임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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