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교회에서 경험하는 '무한'한 주님의 은혜

'가장 작은' 교회에서 경험하는 '무한'한 주님의 은혜

[ 아름다운세상 ] 인생의 순례자들을 품는 '순례자의교회'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1년 06월 18일(금) 15:20
제주 한경면 용수리에 위치한 순례자의교회 앞에 선 설립자 김태헌 목사.
【 제주=표현모 기자】제주 한경면 용수리의 올레 13코스를 걷다보면 2.4평 규모로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인 '순례자의교회'를 마주치게 된다.

인적이 드문 들판 한 가운데 앙증맞게 예쁜, 그러나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교회는 1년 12달 24시간 열려 있어 있어 '인생 길을 걷는 순례자'는 누구나 들어와 잠시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다.

'쉼'. 사람들은 누구나 쉼을 원한다.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생존이 버거운 현대인들에게 '쉼'이야 말로 '복음'이 아니던가.

순례자의교회는 그렇게 쉼이 갈급한, 인생의 행로를 잃고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위해 김태헌 목사(산방산이보이는교회)가 설립한 교회다.

지난 15일 총회 임원회는 수련회 중 순례자의교회를 견학하고, 격려금을 전달했다.
지난 15일 우중(雨中)에 방문한 순례자의교회는 갓 세수를 하고 나온 듯 더욱 청초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순례자의교회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성인 평균 키 정도인 기자도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세상에서 제 아무리 큰 자라 할 지라도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자기 자신을 축소시켜야만 한다. 순례자의교회는 입구부터 방문자에게 "세상의 것을 내려놓으라", "겸손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좁은 문'은 좁긴 하지만 막혀 있지 않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작아지는 자는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

어른 대여섯 명이 들어서면 가득차 버릴 정도의 교회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과 양옆의 작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부드럽게 방문객을 감싼다. 눈 앞에 놓인 작은 제단과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나무 향이 인상적이다. 시끄럽고 복잡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된다.

# 각양각색 사람들의 사연 가득한 공간



2.4평의 이 작은 공간 안에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혜와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사연으로 가득차 있다.

"2012년 1월 중순이었어요. 저녁 7시 경 문자가 하나 왔어요. '감사합니다. 천당 가시겠어요'라고. 통화 버튼을 눌렀죠. 40대 중반의 남성이더라구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아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자기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러 제주도에 온 거예요. 자살 장소를 물색하다가 순례자의교회를 발견했던 거죠. 교회에 들어와 3시간 동안을 앉아 있었는데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래요. 한참을 울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서울로 돌아가면 죽는 것보다는 나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 저녁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갔대요."

설립자인 김태헌 목사가 순례자의교회를 방문한 사람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이러한 일화 말고도 순례자의교회는 오래 전 신앙을 포기했다가 이곳에 들어와 몇 십 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기도를 하게 된 사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허무한 마음을 가지고 왔다가 다시 그 의미를 찾아 노력해볼 것을 다짐하게 된 사람, 도시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 제주에서 한달 살기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기 전 이곳을 찾아 전보다는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사람 등등 교회가 설립된 2011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이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교회를 결혼예식장으로 택해 결혼한 커플도 142쌍이 탄생했을 정도다. 김 목사는 주례를 서면 그 어떤 결혼식보다 엄숙하게 진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도 결혼식 집례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여전히 잘 살고 있는지 문자를 보내며, 일종의 '애프터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김태헌 목사가 동회천순례자의교회에서 김준표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은혜도 넘쳐



순례자의교회가 건축되는 과정 중에도 김 목사는 파란만장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비록 보이는 건축물은 돌과 쇠, 나무로 지어졌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하나님의 은혜, 사람들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사연, 아픔과 기쁨, 눈물과 회복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김태헌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 이후 교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3평 이하의 교회,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김 목사가 사역을 하던 교회는 분쟁이 있던 포항의 한 교회였는데 성도들이 싸움을 멈추고, 건강성을 찾자 기도 중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고 한다. 김 목사가 이사가는 날 아침 교회 권사 한 명이 김 목사를 찾아와 "목사님이 말하던 작은 교회를 짓는데 사용해달라"며 800만 원을 헌금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제주의 무교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결심으로 제주도에 다시 돌아온 후 상황이 좋지 못해 순례자의교회 건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길 정도로 힘들어 하던 어느 날 그 권사가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제가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아 임종 준비를 하라는데 교회 완공을 보고 갈 수 있을까요?" 정신이 버쩍 든 김 목사는 교회 건축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아들의 용돈과 아내의 아르바이트 수입까지 보태 7개월 만에 건축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김 목사는 말로 다 못할 어려움들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 김 목사는 한 장로로부터 교회 부지를 기증받고, 매형과 한 사업가의 도움으로 적은 공사비용으로 건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순례자의교회 건축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형통의 복을 받았다고 한다. 교회를 완공한 후 땅을 기증한 장로는 기증한 땅의 100나 되는 면적의 토지를 구입했고, 건축비도 제대로 받지 않고 공사를 해 준 김 목사의 매형은 사업이 번창했으며, 건축을 도와준 사업가는 부도 직전의 회사를 일으켜 확장시키는 은혜를 입었다고 김 목사는 나열하며 소개한다.

김태헌 목사는 계룡장로교회(안명헌 목사 시무) 창립 15주년 기념교회인 산방산이보이는교회의 담임으로 청빙됐다.

아, 참! 종잣돈을 기증한 말기 난소암을 앓던 권사 또한 기적적으로 병이 완치되어 헌당식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했고,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제주도에서 올레를 기획한 서명숙 이사장이 이 교회를 직접 와 보고 감동 받아 기존의 루트를 변경해 교회 앞 길을 올레 13코스로 지정, 지금까지 많은 순례자들이 교회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표현모 기자



강화도에 위치한 교동순례자의교회(김한윤 목사 시무).
#같은 듯 다른 콘셉트의 동회천순례자의교회

"가나안 성도들 품는 교회 되고파"



제주도 회천동에 위치한 동회천순례자의교회(김준표 목사 시무)는 한경면에 위치한 첫번째 순례자의교회와는 같은 듯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김태헌 목사는 올해 5월 동회천순례자의교회를 김준표 목사에게 맡긴 이후에는 교회 운영에 대해서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지난 15일 기자와 함께 방문한 것도 몇 개월만의 방문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김준표 목사는 이른 아침 동회천순례자의교회로 출근했다가 낮에는 제주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한 후 저녁에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

첫 순례자의교회와는 달리 동회천순례자의교회에는 주일예배를 드린다. 주일 11시에는 김준표 목사 혼자 영상을 틀어놓고 예배를 드리고, 오후 3시에는 아내와 함께 예배한다. 2마리의 강아지도 함께 한다. 2년 안에 15~20명 교인으로 성장하는 게 기도제목이다.

김 목사는 "동회천순례자의교회는 잠깐 길을 잃고 헤매시는 분들이 교회에서 부딪히거나 얽히지 않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 예배하다가 문득 목사를 만나게 되는 교회"라며 "한국교회의 가나안 교회 성도들을 만나는 통로가 되고 싶다"라고 바람을 피력했다.


표현모 기자



#"전국 곳곳에 순례자의교회 세울 것"

현재 제주 2곳, 강화 1곳, 총 19개 건축이 목표



순례자의교회는 제주 한경면 용수리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김태헌 목사는 기도 중에 한반도 19곳에 순례자의교회를 건축하겠다는 비전을 갖게 되어 이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물론 김 목사는 재정도 없고,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다. 그저 지친 현대인들이 참된 안식과 쉼을 느낄 수 있는 교회, 생의 힘든 순간 한줄기 빛이 되어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교회, 주님의 임재가 편만한 교회를 지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겠다는 깊은 바람으로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에는 제주도 회천동에 두번째 교회가 건립됐다. 동회천순례자의교회(김준표 목사 시무)가 바로 그곳이다. 지난해 2월에는 강화도 교동도에 교동순례자의교회(김한윤 목사 시무)가 세번째로 건립되어 김태헌 목사가 기도 중에 결심한 꿈들이 하나 둘씩 진행되고 있다.

김태헌 목사는 게토화 되어 있는 교회를 지양하고, '교회 다운 교회', 우주적인 공교회로서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며,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교회를 짓자는 결심을 날마다 새롭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여러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순례자의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김 목사에게 문의한다고 한다. 김 목사는 첫번째 교회의 소유권은 대구동노회에 기증했고, 두번째, 세번째 교회도 해당 지역 노회나 단체에게 기증할 예정이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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