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왜 평화가 필요한가?

예루살렘에 왜 평화가 필요한가?

[ 6월특집 ] 평화의 길 멀고 험한 길인가? 3

조해룡 교수
2021년 06월 14일(월) 17:09
조해룡 교수
예루살렘에 왜 평화가 필요한가?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지 약 3000년의 역사가 흘렀다. 그 역사의 중심에 있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3000년의 역사에서 그 성전의 주인공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대인이 지배하던 시대는 약 550년, 그리스도교는 약 400년 그리고 그 둘보다 훨씬 많은 약 1200년 기간 동안 이슬람이 통치했고, 나머지는 기타 외세에 의해 다스려졌다. 아브라함 시대에 예루살렘은 멜기세덱 왕이 다스렸다(창세 14,18). 예루살렘의 본래 이름은 '살렘' 이었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며,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만큼 평화가 간절한 곳은 없을 것이다. 세계 3대 종교의 각축장이었고, 세계열강들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목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모든 시대를 통하여 삶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와 기도의 중심지였고 강력한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현존 하시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용서와 계시를 통해 응답하시는 거룩한 곳, 평화의 상징, 하나님과 인간이 조우 할 수 있는 거룩한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로서 그 오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삶의 중심을 한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지금은 이슬람이 차지하고 있다. 평화의 모체요 인류 구원의 상징이 되어왔던 예루살렘은 세계 3대 종교의 각축장으로 끊임없는 전쟁, 종교적 분쟁과 반목, 갈등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인류 평화와 사랑의 상징이 되어 왔던 예루살렘은 전 세계가 가장 우려하는 도시로 '중동의 화약고'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지닌 채 불안의 이목이 집중된 곳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세계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기원하는가? 예루살렘은 매우 특별한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상11:36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왕에게 다윗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신다.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성읍 예루살렘을 택하였고 예루살렘을 다윗과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 하셨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으로 다윗의 후손, 즉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영원한 언약의 상징이었다. 영원한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샬롬이 모든 열방 가운데 선포되고 증거 되길 원하신 것이다.

예수님 또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으로 언급하신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은 거대한 하늘, 땅과 같이 취급하시면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임을 분명히 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도중에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1~42).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예루살렘의 평화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의 평화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의미했다. 차별과 불신, 반목과 불일치, 빈익빈 부익부, 끝없는 종교적 갈등을 가로 질로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길 희망하는 눈물이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 평화의 근원이요, 인류 평화를 향한 순례의 출발점이 되길 소망하셨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특히 종교 간의 분쟁은 인류 평화의 위협이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초래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죽이는 싸움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다울 수가 없다. 생명이 지닌 가치를 무시하는 체제가 체제를 유지하는 데만 치중할 때 폭압이 잉태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종교적 갈등과 이념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고 가르치신 예수의 사랑은 종교적 이념과 갈등, 증오와 착취, 인종 차별과 불신, 분쟁과 불일치의 벽을 허무는 사랑이다. 사랑의 부재는 분쟁을 가져오고 분열과 싸움을 낳는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항속적인 평화의 도래는 '예수 사랑'의 실천 의지에 달려 있다. 사랑 없는 법과 협상은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는 사랑이 매개될 때 가능하며 온전케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 인류 평화의 마중물이요, 생명의 원천으로 인간 역사에 깨어났던 도시가 지금은 전쟁과 인류 평화 위협의 모체가 되어 있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세계 교회는 일치와 연합을 통해 함께 기도하고 세계 평화를 위한 선교적 노력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세계 3대 종교가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는 예루살렘이 평화의 사도요, 하나님의 샬롬의 모체로서 그 역할과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전쟁을 위한 긴장을 완화시키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종교, 정치적 대화와 초당적 협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해룡 교수(주안대학원대학교,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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