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로운 이웃들

우리의 새로운 이웃들

[ 5월특집 ] 변화하는 가정의 형태에 주목하라

김창운 교수
2021년 05월 18일(화) 10:42
미국의 문화심리학자 존 베리(John Berry)가 자신의 저서 <초문화심리학>(Cross-cultural Psychology)에서 강조하는 것은 '문화정체성'(Cultural Identity)이다. 오늘날 다양하고 급변하는 문화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문화에 대한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이 정체성 점검은 세 가지 질문을 동반한다. 하나는 '내가 어느 문화에 속하였느냐'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고, 둘째는 '내가 속한 문화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다른 문화를 접하는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이민을 간 동포들 중에는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정체성을 버리고 선진국의 문화에 동화되어 그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분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구촌이 세계화 되고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문화심리학의 연구는 자신이 속한 본래의 문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여기고 그 문화에 속하였다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건강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국제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이 성공적이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매우 높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국가 경제 지수와 군사력이나 문화 컨텐츠는 물론, 시민 의식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인지할 때가 되었다.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은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이 땅에 130여 년 전 복음이 들어온 후 크게 성장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이 바른 신앙적 자세이다.

이제 생각할 것은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다. 문화정체성이 중요하다는 시각이 문화인류학적 관점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즉,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성경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영적 통찰인가? 이것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말한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성경이 가르쳐주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정체성은 세상에 대해서는 죽었고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영적 지각이 점점 더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선교 명령(마 28:19~20)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면해야 할 때이다.

우리들에게 새로운 이웃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땅을 찾아온 이주민들이다. 인구 조사에 따르면 1990년에 4만 9000명이었던 외국인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여 2019년에는 252만 4656명을 기록하였다. 5000만 대한민국 인구 중 이주민 인구가 5%를 차지하고 있고, 2050년에는 국내 인구의 10%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국제결혼도 꾸준히 이어지면서 2019년에는 2만 3643쌍이 결혼을 하였고, 2050년이 되면 결혼 이민자가 98만 2700여 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외국인들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이미 그들이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한반도 역사에 경험해보지 못한 큰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다.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의하면, 이주민들의 유입에 대표적으로 세 가지 면에서 반감을 느낀다고 했다. 하나는 우리 문화를 위협한다는 것이고, 경제와 복지 혜택으로 인한 손실, 그리고 이방 종교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슬람포비아'라는 말도 생겨났다. 기독교인이요 선교학자로서 납득이 될 만한 이유라 여긴다. 선교적 대척점에서 선교신학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함을 공감한다. 다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이던 존 스토트는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사건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해석을 해주었다. 예수님의 승천 후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다. 성령님의 권능이 임하자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이 그 방언을 자신들의 언어로 알아들었다. 이 사건을 존 스토트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대비하며, 타락과 교만으로 흩어져야 했던 언어와 민족들을 성령을 보내심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한 복음주의 선교학자 아더 글래서도 같은 관점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나서 하나님을 안다"고 했다(요일 4:7~8). 선교는 사랑이다. 성경은 온 민족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이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 때에 각 나라에서 온 이들이 제자들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선 이 땅에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성장을 이루게 하셨고, 세계 각국 사람들이 찾아와 이 땅의 제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듣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골로새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1).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마 22:37~40, 막 12:29~31, 눅 10:26~37). 한 신학자는 지금 우리에게 "아우름의 신앙"이 필요한 시대라 하였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이때를 위함"(에 4:14)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정체성을 붙잡고 있다면, 이때 우리를 찾아온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우르며 주님의 이름을 전해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 모습이 아닐까?



김창운 교수(대전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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