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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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칼럼 ]

김정태 공동대표
2021년 01월 20일(수) 08:52
#6개 의대에 동시 합격한 학생 이야기

최근 특정 TV 프로그램에서 서울의 주요 의대 6곳에 동시 합격한 학생이 출연했다. 그 학생은 수시 전형으로 지원한 의대 6개에 모두 합격한 수재이다. 알다시피 의대가 어떤 곳인가? 고등학교 최상위 성적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이다. 서울 지역 의대는 물론이고 지방 의대 또한 각 지역 고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얻는 학생들이 들어간다. 적절치 않은 표현인 줄 알지만 입시 경쟁터에서 최고의 포식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의대생들인데 그런 대학에 무려 여섯 군데를 모두 합격했으니 학령기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이 학생이 궁금해질 것이다. 입시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공부방법의 특징은 무엇인지, 수시전형 준비 과정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없을지를 호기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방송 출연자였다. 다만, 이 방송에 딱 하나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과학고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특별한 학교

우리나라에는 영재들이 가는 특별한 고등학교가 있다. 8개의 영재고와 20개의 과학고로 모두 28교이다. 중학생들은 영재고와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중학교 내내, 아니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으로 내몰린다. 최근 3년 동안 두 학교의 입학경쟁률은 대략 14:1 정도였으니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있다. 거기에 떨어진 학생들은 다음 레벨의 학교인 국제고, 외국어고, 자사고로 입학한다. 그렇게 특별한 준비와 노력을 한 소수의 인원(약 7000명)만 입학할 수 있는 영재고와 과학고에는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 학교별로 수십억 또는 백억 이상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일반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혜택이다. 그 학교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그런 학교에 근무한다는 것에서 오는 그들만의 특별한 자부심이 있다. 그러니 좋은 학업 분위기에서 입시에 도움이 되는 면이 일반고에 비해 월등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영재고와 과학교는 이공계 분야, 과학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학교이다. 그런데 설립 목적과 달리 방송에 출연한 그 학생처럼 매년 이공대가 아닌 의대로 진학하는 졸업생 수가 적지 않다. 혹자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교 졸업생이 의대로 가든 이공대로 가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다!"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재고와 과학고 학생이 의대로 진학하는 것을 단순하게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최고의 시설과 환경에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것은 그들 개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 인재 양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게 하려는 학교의 설립 목적을 고려한다면 의대 진학은 우리 사회의 손실이고 해당 교육을 받고 싶었던 다른 학생들 기회의 박탈이다. 다시 말해 공공성 훼손 차원의 문제로까지 볼 수 있다.

#유감이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영재고와 과학고와 관련한 교육계의 속깊은 사정을 방송국에서 감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해한다. 허나 방송 프로그램 제작자들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평균 이상의 양식과 능력을 가졌을 것인데, 6개 의대 동시 합격이라는 위엄 앞에서는 그런 그들의 건전한 양식과 판단력이 작동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 시대의 어른들, 특히나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학부모들에게 입시와 진학의 결과가 던지는 메시지와 그 힘은 엄청나다. 학교 설립 목적이 그 무엇이든 상관치 않고 최고로 유망한 직업을 얻는 것이라면 다른 것은 다 덮어도 된다는 생각이 우리의 내면 속에 깊숙이 동의되어 있음을 들킬 정도이다. 그래서 유감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그 학생이 좋은 재능을 열심히 갈고 닦아 아프고 죽어가는 이들을 고치고 살리는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한 인생이 어찌 정답만을 찍으며 갈 수 있겠나? 이 소란스러운 과정 또한 학교와 우리 사회의 성장을 위한 양분이 되리라고 믿는다.

김정태 공동대표/좋은교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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