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 뉴미디어이렇게 ]

이종록 교수
2020년 10월 15일(목) 10:48
'안드로이드도 꿈을 꾸나? 릭은 속으로 물었다. 그건 분명해. 그들이 때때로 주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치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더 나은 삶. 노예 신세가 아니라.(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1968년.)'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인조합성인간(replicant)에 관한 소설을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 2019'라는 영화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7년에 드니 빌뇌브가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만들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들은 인간과 달리 감정이입을 할 수 없고 4년 이상 살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그들을 노예처럼 다루고, 자유를 얻기 위해 탈출한 안드로이드들을 인조인간 사냥꾼에게 막대한 상금을 주면서 찾아내 처형하게 한다. 노예 해방 전 백인들이 흑인 노예를 다뤘던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당시 백인들은 흑인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 고통을 실제로 느끼는 존재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흑인을 자신과는 전혀 다른 타자, 배제하고 폐기해야 하는 위험하고 고통을 모르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겼고, 아주 가혹하게 대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플라톤적 등급 매기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데아 세계는 진짜고, 물질계는 이데아의 복제품이기에 가짜이고 하급이며, 물질계를 복제한 예술작품들은 가짜를 복제한 완전 헛것이라는 3등급 구조 말이다. 유사한 내용의 소설들에서 진짜와 복제품을 그토록 구분하고 차등하는 까닭이다.

지난번 '바이센테니얼 맨'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은 음산한 비관이나 허망한 낙관보다는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가 보여준 따스한 상상력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무엇이 인간인가?'에 대한 혁명적인 생각을 불어넣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생명 자체 그리고 인격적 존재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종록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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