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빈손

[ 독자투고 ]

정재용 장로
2020년 05월 07일(목) 07:51
대봉교회 박맹술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강사로 오신 적이 있다. 그날 설교는 어버이날을 즈음한 부모 공경에 관한 설교였다. 목사님의 키는 컸고 얼굴은 온화했다. 조용한 말씨로 보아 성품도 인자할 것 같았다. 목사님은 예화를 자주 들어가면서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말씀을 전했다.

"어른을 찾아뵐 때는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말고 어른이 좋아하시는 그 무엇인가를 사 들고 가십시오. 어른은 사람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얼굴보기 전에 손부터 보십니다."

'얼굴보기 전에 손부터 본다'는 말씀은 명언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하지 못한 나는 얼굴을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말씀 한 마디로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목사님의 약간 허스키한 음성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구약성경 '룻기'를 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로버트 킨케이드 역)와 메릴 스트립(프란체스카 존슨 역)이 주연한 영화'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와 비슷한 중년 남녀의 연애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사해 건너 모압 땅으로 길을 떠났다. 거기서 사는 동안 남편은 죽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을 맞이하였는데, 십 년쯤 살다가 두 아들마저 잃었다. 그 중에 둘째 며느리 이름이 '룻'이다. 고향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면서 두 며느리에게는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강권했다. 그때 룻이 말했다.

"저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제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고 그 곳에 저도 묻히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여인은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보리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봉양하던 룻은 어느 날 밭에서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났다. 밭주인이었다. 룻으로부터 집안 사정의 자초지종을 들은 보아스는 보리를 여섯 차례나 되어 자루에 담아 주면서 말했다.

"어머님께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으로 어머님을 잘 봉양하십시오."

얼마 안 되어 보아스와 룻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의 손자가 바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윗 왕이다.

곧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이다. 만물이 생동하고 꽃피는 새봄인데다 어린이와 어버이날이 들어있어 이렇게 멋있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혹시나 그동안 자식들에게는 넘치도록 후하고 어버이께는 빈손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정재용 장로(성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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