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중요성 확인

코로나19,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중요성 확인

[ 특별기고 ]

조건회 목사
2020년 04월 13일(월) 10:27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모든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부득불 예배를 축소하거나 온라인 예배로 드리게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4차 산업혁명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말도 들린다. '유튜브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무너진 가정예배가 회복됐다'고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모이는 교회의 기능에 주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공예배를 포함해 교회 안에서 모임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상대적으로 삶의 예배에 소홀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엔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는 교회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과 함께 지역사회의 약자들을 돌보면서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것을 회복하고, 그동안 우리가 소홀했던 가정예배가 회복되는 귀중한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도 이전처럼 모여 예배 드리는 교회로서의 기능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있다. '21일이면 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66일이 지나면 습관이 굳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져 '굳이 교회에서 예배 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생각하는 성도가 늘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는 함께 모이는 공동체적 예배가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모이는 교회로서의 기능이 중요한가?

첫째,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공동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1:26)." 삼위일체 하나님은 공동체적으로 존재하고 계시며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 그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이성, 도덕성, 영성, 사회성(공동체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인간 또한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문명의 편리함 속에서도 더욱 하이 터치(high touch)를 갈망하며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행복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나 홀로가 돼서는 안 된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인 응답으로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그 임재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예배 가운데 더 깊은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공동체적 예배 속에서 성도들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를 때 주님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 공동체로 모이는 예배의 연합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우리는 교인과 지인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는 너무도 쓸쓸한 결혼과 장례 예배를 경험하고 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하신 말씀이 성도들의 공동체적인 예배 가운데 일어나는 축복임을 더 깊이 절감하고 있다. 함께 모여 예배 드려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는 동시에 성도들과 연합돼 세상의 시험과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되기기 때문이다(전 4:9~12).

셋째, 교인들의 영적이며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신앙이 전수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령의 교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배 후 봉사하고 교제하는 시간에 이뤄지는 영적인 코이노니아는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성숙한 신앙이 전수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문화비평가 맥루한은 "전달 매체가 바로 전달 내용"이라고 말했다. 내용보다 전달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본받고 싶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라야 내용을 신뢰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이 바로 예배공동체인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넷째, 공동체의 힘이 커질수록 사회적으로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교회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대로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경험한 마가의 다락방이었다. 거기에 모인 120명(행 1:15)의 성도들이 전심으로 마음을 같이 해 기도에 힘쓸 때 바로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결과 온 백성의 칭찬을 받으며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졌다(행 2:47).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수록 세상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은 커질 수 있다. 미국의 척 스윈돌 목사는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갈멜산의 영적 전투에 비유해 이런 말을 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도 누가 땅에 장작을 많이 쌓았느냐에 따라 화력은 달라진다." 성전에 모여 예배하면서 공동체의 영적인 화력을 모으지 않으면 어떻게 초대교회처럼 전도의 문을 힘껏 열 수 있으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겠는가?

예배당에서 함께 모여 드리는 구심력적인 예배는 하나님 임재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한 원심력적인 삶의 예배로 흩어져가는 것이 영적인 원리다. 모이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 중심에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 계획 가운데 자신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흩어지는 원심력적 예배는 모이는 구심력적인 예배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그동안 소홀했던 가정예배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기능이 회복되고, 세상으로부터 칭송받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갖추길 바란다. 더불어 이 사태가 끝나면 온라인 예배의 익숙함에 머물지 말고, 공동체로 모여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고, 어떠한 세상의 시험과 고난도 함께 이겨내며, 교인 간에 아름다운 전수와 계승이 이뤄지고, 사회적으로는 선한 영향력을 더 크게 발휘하는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조건회 목사 / 총회 예배학교 교장·예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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