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 문제

대리인 문제

[ 기자수첩 ]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19년 07월 15일(월) 11:09
"건축업자가 지은 집이 무너져 거주자가 사망하면 건축업자는 사형에 처한다."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법은 행위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

나심 탈레브는 저서 '스킨인더게임'에서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나타나는 대리인 문제를 논한다. 로마 황제 다수가 전쟁터 일선에서 사망하는 등 과거의 지도자는 리스크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의 중앙화된 정치체제에선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제빵사 구두수선공 배관공 택시운전사 회계사 주차원 치위생사 등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에 상응하는 책임을 진다"며, 반면 "고위 관료, 정책 입안자, 중앙집권적 정부, 정치인 등은 자신의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다"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를 '블랙 스완'으로 예측하며 주목받은 그는 당시 금융위기가 책임지지 않는 행동으로 빚어진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밝히고, "금융업에 종사한 사람들, 은행 등은 이익만을 챙기고 납세자에게 리스크를 전가했다"고 비판한다.

대리인 문제를 보며 목회자의 노후를 위한 연기금으로 몇 백억원대의 투자 결정을 내리는 총회 연금재단이 생각났다. 총회와 가입자회가 파송한 총대들은 이사회를 구성해 결의한다. 이는 선택에 책임을 지는 구조일까? 과거 연금재단의 부실 투자들이 이사회의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므로, 당시 판단을 내린 그들의 책임은 면제된 걸까?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헌신하는 주의 종에게 책임까지 강요하는 건 너무 과한 요구일까.

총자산 4700여 억원의 연금재단은 부산 민락동 부지를 873억원에 공매 낙찰 받고, 1100억원에 매각을 추진해왔다. 이에 대해 총회 임원회 소위원회는 감사위원회 가입자회와 합동대책회의를 갖고, 총회 감사를 조속히 시행하며, 외부 특별 회계법인을 통한 특감도 진행할 것을 총회 임원회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번 감사는 부산 민락동 부지 건에 집중하겠지만, 합동대책회의는 연금재단 구조에 더 중점을 뒀다. 이사회의 결정으로 연기금을 움직이는 그 시스템 자체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에 대한 해답으로 나심 탈레브는 "책임을 분산시키는 분권화와 지방화가 책임이 면제된 의사결정자들의 수를 최소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한 후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분권화를 추진하고 책임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그 사회는 결국 쪼개지고 만다"고 경고한다.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대해 과거 함무라비법처럼, 혹은 오늘날의 회계사 의사 등 다수의 사람들처럼 지도자는 책임을 지거나 아니면 분권화를 통해 책임이 분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택에 따른 책임과 투자에 따른 리스크는 매월 납입금을 내는 목회자, 가입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


최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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