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정론, 예언의 숨결' 되라

'시대의 정론, 예언의 숨결' 되라

[ 창간기획 ] 창간 73주년, 한국기독공보가 가야할 길

서정민 교수
2019년 01월 08일(화) 15:51
한국기독공보 73주년을 기쁘게 축하한다. 한국기독교계 중심 신문으로서 지금까지의 역사는 물론 앞으로의 사명 또한 막중하기 이를 데 없다. 1946년 한국기독교의 에큐메니컬 신학 출발선에서 역사적 창간을 한 이래, 교계 안팎의 수난 역사 중에서 빛나는 공헌과 부침의 길을 함께 걸었다. 1954년 9월 한국장로교 기관지, 1970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기관지로 재창간하였으나, 그 태생적 기조인 에큐메니컬 정신과 사회공헌, 민족통일 시대의 비전을 강하게 지녀 한국교회의 대표적 저널의 사명을 한층 더하여 왔다. 오늘날 교회와 민족의 새로운 전환기에 그 73주년을 맞아 앞으로의 역할 또한 더욱 무거워진 것이 사실이다. 모쪼록 한국기독공보의 건승과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

역사가는 역사를 가늠함에 있어 그 시대의 정론(正論)을 찾아 나선다. 거짓과 위선, 굴욕과 협잡이 가득한 시대에도 필시 예언은 어디엔가 살아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엄혹한 시대, 통한의 교회사에도 희망이 있었던 것은 그런 '예언의 숨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 확장 시대, 모든 예언은 숨을 죽이고, 시대의 파수꾼도 다 눈을 감은 시대였다. 일반 언론은 물론 예언자를 자처한 기독교계 언론마저 거짓과 괴변으로 권력에 추종할 때이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큰 과제와 목표는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침략의 명분이며, 방법이었다. 여기에 일본 기독교계 저널들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하였다. 당시 대표적 교계신문인 '福音新報'(복음신보), 잡지 '新人'(신인) 등은 이른바 '신의병합론'(神意倂合論)을 주장했다. 즉 한국은 일찍이 하나님이 정하여 일본에게 준 '약속의 땅'이며, '한일합병'은 이미 신의 섭리로 정해진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한국인은 일본에 복속되는 일을 기쁘고 당연히 여겨야 하며, 일본은 한국 경영에 자신을 갖고 선정(善政)을 베풀면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이 밖에도, 한국이 수천 년 간 중국의 식민지였던 것을 일본이 일단 구해내어 독립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까지 식민통치를 해야 한다든가, 러시아를 비롯한 서방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일본의 한국통치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논리로 한일 강제병탄을 지지한 논설은 산처럼 많다.

그 와중에도, 시골의 한 작은 교회 신문인 가시와키 기엔(柏木義円)의 '上毛敎界月報'(상모교계월보>나 우치무라 간죠(內村鑑三)의 잡지 '聖書之硏究'(성서지연구)는 단호히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정론이었다. 한국은 그렇게 일본이 지배하고, 통치하며, 식민지 선교를 할 대상이 아니다. 특히 한국통치에 나서는 일본 식민지배자들의 도덕적 결격까지 비판하였다.

그 시대를 기록하는 역사가는 다수의 협잡과 편승보다는 소수의 지조 있는 예언에 주목한다. 그들이 참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한국교회에 여전히 괴변과 굴욕, 협잡이 난무한다. 시대의 권력에 의거하기 보다는 예언의 사명에, 그리고 역사적 전통에 따라 필의(筆義)에 지조를 거는 '공보'이기를 감히 바란다. 장로교 안팎에도 산적한 의론(議論)이 적지 않다. 동향을 살피기 보다는 선두에 서기를 바란다. 역사에서나, 지금에서나 어느 것이 '의'인지, 정녕 '하나님의 의'인지는 의외로 늘 분명하다.

다시 한번 한국기독공보 73주년을 축하하며, 건필, 건승, 그리고 의로운 싸움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기를 바라고 응원한다. 그리고 또한 '화목제의 제단'이 될 것까지 주문한다. 주가 함께 하실 것이다.

서정민 교수 /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동 대학 그리스도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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