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뎌도, 느려도 앞으로 나아간 20년'

'더뎌도, 느려도 앞으로 나아간 20년'

[ 아름다운세상 ] 창립 20주년 맞은 영락교회 사랑부 감동의 연극공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10월 26일(금) 11:47
붕어빵장수: 왜 사람들이 장애를 겪으며 고통당해야 하는지 물었지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돈과 권력을 믿고 살아가지요. 하지만 아픔이 있고 약함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 약함이…축복인거죠.

승희: 정말 몰랐어요. 아프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걸…. 약함이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지난 21일 서울노회 영락교회(김운성 목사 시무) 사랑부가 창립 20주년을 기념해서 올린 연극 '붕어빵의 비밀'의 한 장면이다. 발달장애인 부서인 영락교회 사랑부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사랑부 교사와 발달장애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 연극을 기획, 연출하고 연기해 무대에 올리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창립 20주년을 기념할만한 행사를 기획하면서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연기에 참여하는 연극을 만들자고 담당목사와 선생들은 의기투합은 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를 위해 1년 전부터 담당 지도목사인 임평호 목사가 대본을 쓰고, 사랑부 선생인 류혜선 집사가 연출을 맡아 10개월 전부터 연습을 이끌었다. 물론 외부 전문가들에게 이 일을 맡길 수도 있었지만 사랑부 목회자와 선생들은 지난 20년간 영락교회 사랑부가 발전해 온 것을 보여주자며 의기투합했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들의 연기, 아마추어 선생의 연출, 담당 목사의 극본, 여기에다가 무대장치, 의상, 믹싱까지 연극의 전 과정을 모두 사랑부 교사들이 맡았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지능이 일반적으로 4~6세 수준인 발달장애인들은 대사 한줄을 외워도 남들보다 수십배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 50분짜리 연극을 위해 횟수로 따지면 70~80번의 연습모임을 가지며 일반인들의 몇십배 노력을 기울였다. 발달장애인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 좋은 기분 속에 연습을 하다가도 사소한 한가지에 수가 틀리면 며칠동안 화를 풀지 않아 다시 컨디션이 좋아질 때까지 연습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임평호 목사는 "비장애인은 몇분이면 할 수 있는 것을 발달장애인들은 몇 백번 반복해서 연습했어도 다음 주면 까먹는 일이 빈번했다"며, "그래도 연극을 준비하면서 사랑부 친구들이 복음적인 내용을 나누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오셨구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출 류혜선 집사는 "일반인들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연스러운 학생들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려고 했다"며, "연습을 하며 우리 친구들이 많이 즐거워했다. 발달장애인 친구들은 오히려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수도 별로 없었는데 오히려 선생님들이 실수가 더 많았을 정도로 잘해주어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류 집사는 "평소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우울하거나 과격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연습이 있었던 올 한해는 이러한 모습도 줄었다"며, "정기적인 연습이 정서적으로도 도움을 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당일까지는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를 위해 공연 한달 전부터는 교사들은 사랑부 친구들이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공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제목으로 릴레이기도를 이어갔다.
공연 당일인 지난 10월 20일. 기념예배가 끝나고, 올드보이스 하모니카 합주단, 와일드 브라더스 중창단, 이엘합창단의 축하공연마저 끝나 드디어 무대에 오른 13명의 장애인과 13명의 교사가 꾸민 무대는 어땠을까?

관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와 춤, 퍼포먼스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많은 대사에도 실수 없이 극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본 부모들은 연신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연극이 끝난 후 한참이 지났어도 박수는 멈출 줄 몰랐다.

담임 김운성 목사도 관람 후 "공연이 정말 훌륭해서 한번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다"며 연극에 참여한 장애인들을 하나 하나 안아주었다. 김운성 목사는 "영락교회 사랑부가 20년 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약한 자들 편에 서는 것을 강조하셨던 한경직 목사의 정신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수님은 연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 곁으로 오셔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며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신 분이다. 연약한 이를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아니면 영적으로 무능력자인 것을 사랑부 아이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연 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과 교사, 그리고 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임을 느낀 사람은 비단 기자뿐이었을까? 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고, 그 약함이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20년간 절실하게 체험해온 이들이 주는 가을밤의 뜻깊은 선물이었다.


표현모 기자

#영락교회 사랑부가 걸어온 길



영락교회 사랑부는 1997년 6월 교회교육원 주최로 장애인부서를 설립키로 가결하면서 그해 12월 교사를 모집하고, 이듬해 3월 학생 4명과 교사 28명이 50주년 기념관 201호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시작됐다.

2007년에는 18세를 기준으로 1, 2부로 분리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그해 10월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일본으로 비전트립을 떠나기도 했따.

2008년 창립 10주년을 맞이해서는 4월 희망연대가 주최하는 금강산 투어에 참가했고, 5월에는 영락교회 주최로 제1회 발달장애인 찬양제를 개최해 12교회가 참가하기도 했다. 창립 10주년에도 '멀티맨'이라는 제목의 기념연극을 올렸다.

외부공연에 자신감이 생긴 사랑부는 이후에도 발달장애인 찬양제, 체육대회, 영락경로원 방문 연극공연, 영락카페 깐띠아모음악회 출연, 성탄주일 난타 마당공연 등을 펼쳤다.

이번 20주년을 맞이해서는 '붕어빵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연극을 공연했으며,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참여해 성경필사를 완성해 봉헌하기도 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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