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오늘도 있는 힘껏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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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별량현악합주단의 마윤미 단장과 꿈 찾는 아이들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8년 10월 03일(수) 18:13




"음악이 너희를 행복하게 할거야"

별량현악합주단의 마윤미 단장과 꿈 찾는 아이들


【 순천=최은숙 기자】 삶의 무게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감당하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표현할 방법은 오직 분노와 거친 행동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쁜애'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과 더 적대적이고, 더 반항적으로 맞섰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어둡고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였는데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요", "게임에 빠져서 잠도 안자던 아이가 달라졌어요", "평소에 말 한마디 없던 아이가 수다쟁이가 되었네요"…. 한마디로 '아이들이 행복해졌다'는 뜻이다.

아마도 활을 잡고 바이올린을 켠지 서너달 쯤 지났을 때부터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어떤 묵직한 울림을 같은게 느껴졌어요. 위로받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바이올린의 섬세한 선율이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일까?

순천의 작은 시골마을 별량면.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품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은 정서적, 경제적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부모의 계속된 재혼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을 이겨내야 했고, 남들보다 조금 '까만' 피부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 속에서 자꾸 움츠러 들었다. 그 아이들의 아픔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던 별량현악합주단 단장 마윤미 씨와 '쪼무래기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별량아이들의 '꿈'을 담은 합주단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도시에서 레슨을 하면서 나름 '평안하게(?)'생활했던 마 단장은 가난한 농촌마을의 아이들을 외면 할 수 없었다. 별량중앙교회 마성철 목사의 장녀이기도 한 마 단장은 "도시의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늘 별량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어요. 그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우선 농촌교회 목회자 자녀들을 모아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서너명의 아이들로 조용하게 시작했는데 소문이 퍼졌다. 한명 두명 아이들이 찾아 왔다. "저도 배울 수 있어요?"

사실 여느 시골마을이 그랬지만 아이들은 겪지 않아도 될 상처들을 안고 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의 눈 속에서 상처가 보였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는 마 단장은 개인레슨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바우처를 활용해 아이들에게 악기를 빌려 주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하고 얘기를 들어주었다. 연주를 하면서 마음을 나누었다. 서로의 상처를 음악으로 보듬었다. 매 시간 아이들과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쉼 없이 연습하는 아이들은 '꿈'도 꾸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싶어요." 한번도 꿈꾸지 못한 꿈이었다. 아이들은 한시간 수업을 마치고도 3시간, 4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처음부터'끝'은 정해져 있었다. "바우처는 2년이면 끝나요. 악기도 반납해야 하고요." 가난한 아이들이 계속 연주를 할 수 있는 길은 한가지, '합주단을 만들어 연주를 이어가는 것'이다. 목회자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지역의 14개 교회 중 7개 교회 목회자가 뜻을 같이했다.

지역의 아이들이 모여 별량현악합주단을 꾸렸다. 그러나 시골의 가난한 농촌교회가 재정적인 후원을 할 수는 없었다. 내년 5월에는 악기를 모두 반납해야 할 상황인데, 그렇다고 악기를 구입할 재정 능력도 안된다. 합주단 운영비도 마 단장 사비로 충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은 물론 비올라 첼로 레슨까지 혼자서 다 감당하고 있다. 연습 공간은 별량중앙교회, 간식 담당은 마 단장의 부모님이다.

어머니 심현자 씨는 아이들 차량봉사를 전담하고 있다. 온 가족이 자원봉사로 나선 셈이다. 합주 연습 전 의자와 보면대 배치와 정리는 아버지 마성철 목사의 몫. "처음부터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는 어머니 심현자 씨는 "아이들의 합주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너무 이쁘고 대견해서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심 씨는 이제 가장 적극적인 별량현악합주단의 후원자이며, 딸인 마 단장의 매니저가 됐다.

유난히 연습량이 많은 단원들 덕분에 마 단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 "아이들 실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저는 바이올린 전공이기 때문에 다른 악기는 전문가 레슨을 받는 게 좋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 단장은 지난 여름 '오케스트라 연합캠프'에 참여해 아이들이 전문가 레슨을 받게 해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비용이 문제였다. "1인당 비용이 20만원이에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더라고요."

고심끝에 마 단장과 가족들이 나섰다. 자체 캠프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역시 사비를 털어 합주단 지휘자와 비올라 첼로 전문가를 섭외했다. 교회서 1박도 하며 전문가 강의도 들었다. 아이들은 또 그렇게 꿈을 꾸었고, 실력은 또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아이는 없다. 꿈꾸지 못할 아이도 없다"는 마 단장은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순천시에 오케스트라 재정지원을 수차례 요청해 왔다.

"시 지원을 받으면 재정적인 문제 없이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마 단장은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들의 꿈에, 그 아이들의 열정에 우렁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 9월에는 지역의 콩쿠르도 참가해 2등을 거머쥐었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천재"라면서 아낌없는 애정을 쏟는 마 담장은 "시골에는 전공자도 없고, 강사 섭외도 어렵다"면서 "아웃리치처럼 도시의 악기 전공자들이 방학마다 농촌을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부탁을 전하기도 했다.

- 순천의 '엘 시스테마'를 상상하다

마 단장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호세 안토니오 아브루가 생각났다. 그는 마약과 폭력,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는 베네수엘라 빈민가의 허름한 차고에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을 불러 모아 총 대신 악기를 건냈다. '궁핍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음악은 분명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의 첫 시작이었다. 결국'엘 시스테마'는 구스타보 두다멜과 에딕슨 루이즈 등 세계적인 젊은 음악가를 만들어냈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오늘'을 선물한 '기적'같은 이야기, 그 기적같은 순간이 순천의 작은 시골마을 별량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즐거운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이렇게 아름다운이야기가 '그들은 계속 계속 아름다웠다'고 이어질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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