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15일

9월 10~15일

[ 가정예배 ]

2018년 09월 10일(월) 11:45
월-행복한 실패자
본문: 마 14:22~33
찬송가: 302장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사 무리로부터 격리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보내신다. 그리고 무리들을 돌려보내신 후에 당신은 홀로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홀로 기도하시던 그 시간, 제자들을 태운 배는 바람과 물결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밤 사경에 고난 당하던 제자들의 배를 향하여 바다 위를 걸어서 예수께서 다가오실 때에 제자들은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예수께서 즉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셨고, 배 안에 있던 제자들 중에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거든 명하여 나를 오라 하소서"라고 요청하여 "오라"는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 배를 뛰어넘어 바다위에 계신 예수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하지만 베드로는 곧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갔고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구원하시며 말씀하셨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배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게 된다. 성경은 잠시나마 바다를 걷다가 물에 빠졌던 베드로에 대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정녕 사고유발자이고 실패자일까? 즉흥적으로 나서기를 좋아하고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불편한 천덕꾸러기 인생일까? 예수님은 물에 빠진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베드로는 몇 걸음일지 몰라도 예수님을 향하여 물위를 걸었고 또 물에 빠졌기에 구원의 은총도 경험했다. 하지만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배 안에서 단지 구경만 했을 뿐이다. 그 중에 누군가는 베드로의 돌발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불편한 시선으로 흘겨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 안에 있던 누구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믿음이 작은 자여"라는 사랑어린 핀잔조차도 들은 사람이 있었던가?
 
흠뻑 젖은 베드로를 불편한 시선으로 흘겨보며 밀쳐내는 다른 제자들에게 베드로는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당신들 해보기는 해봤어?' '빠져 봤어?' '물 위를 걸어 봤어?' '그런 말 들어봤어?' 작은 믿음의 베드로는 훗날 바닷가에 서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과 디베랴호수에서 재회하게 되고 한 제자가 "주님이시라"고 하는 말을 듣고 또 다시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배를 뛰어넘지 못하고는, 바다에 빠져보지 않고서는, 그 옷이 젖어보지 않고서는 우리가 어찌 예수님께 나아가랴? 베드로와 같은 행복한 실패의 은혜를 더 더욱 사모할 일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향하여 '오라'하시는 주님의 초대에 두려움 없이 세상의 파도 위를 걸어 예수님께 달려가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궁천수 목사/낙원교회
-------------------------------------------------------------------------------------------
화-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가
본문: 롬 7:24, 8:6~8
찬송가: 284장

무의식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무슨 생각으로 사느냐?"라고 물으면, 생각 없이 살기에 "자신도 모른다"고 답하기도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잘 모른다. 이들에게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남에 대해서는 잘 안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잘 알고 그 잘못을 끄집어 낸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일까?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들추어 내는 사람이다. 과거는 유익이 되지 않는다. 현재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살아간다면 실수도 없을 것이고, 남의 잘못도 들추어 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만함과 거만함이 원인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요, 소망이 되시는 분이다. 그 예수님을 알고 믿어야 구원이 있다. 예수님은 생명의 길잡이가 되시는 분이다. 성도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죄를 씻음 받는 것이다. 아무리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닮아 가려고 애를 쓴다 할지라도 그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에 곤고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선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지 않는 것을 죄라고 말한다. 죄는 무거운 고통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그 고통을 해소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을 십자가로 해결해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짓고 있는 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죄의 무게는 너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무게를 체크할 수 없다. 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합법적인 사죄의 선언이 꼭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죄의 법과 싸우다가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과 죄에 사로잡혀 죄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 땅에서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렇게 고통을 받고 괴로움과 싸워야 하는 죄악을 예수님께서 말끔하게 씻어 주셨다.
 
죄를 살펴보면 여러 종류가 있다. 불법(법에 위반되는 것), 불의(도리에 어긋난 것), 선을 행하지 않는 것,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깨닫지 못하면 죄악의 수렁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죄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죄로 인해 속박을 당하고 살았지만, 십자가로 인해 죄의 해방을 맞게 됐다. 영적인 생각을 하고 영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죄를 멀리 할 수 있다. 항상 성령이 충만하여 죄를 멀리 하자.
 
오늘의 기도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준 목사/곡성읍교회
-------------------------------------------------------------------------------------------
수-전통을 지키라
본문: 살후 2:15
찬송가: 436장

우리나라는 유교문화를 중시한다. 가정에도 유교전통의 잔재가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크리스찬이 된 것이다. 기독교의 전통과 성경에서 일러주는 영적인 전통을 받은 성도들이다. 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만약 우리 가정의 신앙연륜이 2대나 3대 이상이 된다면 믿음의 어르신들이 남겨준 영적인 자산을 잘 전수해야 한다.
 
그러나 가정의 신앙 연륜이 이제 1대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라면 내가 믿음의 초석이 되어 아름다운 영적인 전통을 시작하고 세워가면 된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2장 15절은 우리에게 전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받은 전통을 잘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 말씀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믿음을 지키고 영혼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라는 말이다. 그리고 가정을 지키라는 의미도 있다. 굳건하게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하라는 말씀이다. 예전에는 집안마다 가훈이 있었다. 믿음의 가정들은 성경구절을 가훈 삼아 사용하기도 했다.
 
가정예배가 봇물처럼 드려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정예배에 소홀해진듯 하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제단을 쌓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받은 전통을 지키라는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다시금 도전이 되어야 한다. 가치 있는 전통을 상실하거나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잘 유지해야 한다.
 
세상은 점점 혼탁해져 간다. 윤리와 상식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의 가정은 질서와 양심을 지키며 끝까지 주님 편에 서야 한다. 우리의 눈은 하늘을 향하여, 우리의 귀는 말씀을 향하여, 우리의 손과 발은 진리를 향하여,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입술은 불신자를 향하여 담대히 나가야 한다. 그 일이 전통을 수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경의 십계명의 회복이 절실하다. 십계명이야말로 전통 중에 전통이다. 지금 세상에는 여러가지 법이 많다. 수 천가지 수 만가지의 법이 있으나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세상은 점점 타락해 간다. 십계명은 단 10가지 밖에 안되지만 그 속에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열 개의 법만 잘 지켜 나가도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된다. 오늘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마다 십계명을 되새기고 마음판에 새기며 그 율례들을 실천해야 하겠다. 우리가정은 십계명을 목숨 걸고 지킴으로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는 존귀한 가족들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가정마다 믿음의 유산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을 받았으니 잘 보전하게 하시어 이 마지막 시대에 빛을 발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용 목사/소근교회
-------------------------------------------------------------------------------------------
목-감사의 능력
본문: 살전 5:18
찬송가: 93장

그리스도인을 가장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것이 감사이며 감사의 삶은 크리스찬의 표지이다.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라"며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의 말씀은 감사할 것이 전혀 없는 경우와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감사하라는 절대적인 생활방식이다. 감사의 유형은 가진 것이 있음에도 감사하지 않는 자, 있으므로 감사하는 자,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자(어떤 상황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시신다.감사해야 할 이유와 중요성을 살펴보자.
 
첫째, 범사에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비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둘째, 범사에 감사는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경건생활의 척도이며 범사에 감사생활은 그 자체가 최고의 기도이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감사지수를 높이며 살아야 한다. 믿음의 크기와 감사의 크기는 비례하기 때문이다. 셋째, 범사에 감사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함은 더 많이 감사할 조건들을 낳는 축복의 능력이 된다. 하나님은 감사의 희생(제물)의 삶을 통해 구원의 능력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옮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고 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범사에 감사의 향기가 세상에 퍼져나가서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축복의 특별한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는 곧 믿음이 되고, 찬양이 되고, 최고의 기도이기에 감사자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심령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는 영적으로 병든 상태이다. 이런 사람은 있어도 불평하고 없어도 불평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십자가의 크신 구원의 사랑을 입은 자이기에 자신의 최선을 드리는 '범사에 감사자'가 돼야 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만나고 시련과 고통이 닥칠지라도.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으며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면 좋으신 하나님은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답게 입술로 감사를 선포하며 살아가자. 그렇게 할 때 우리 삶속에 축복과 기적이 넘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생활, 그 능력 안에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이선 목사/수동교회
-------------------------------------------------------------------------------------------
금-시험을 받으시다
본문: 마 4:1~11
찬송가: 313장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친히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성도들에게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시험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이시기 위함이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실물로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예수님처럼 성령 충만하고, 말씀이 육이 되어 은혜와 진리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바대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고 수시로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3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첫째는 사단이 40일 금식하여 굶주리신 주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이었다. 이에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답하신다. 우선순위의 시험이다. 사람들에게는 육적인 욕구가 절실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선 충족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도, 교훈, 지시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우선해야 한다.
 
두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 데려다 놓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는 것이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를 보내실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답하셨다. 이 시험은 신뢰의 시험이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해야 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지혜, 능력, 선, 신실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충만히 깨닫기를,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있음을 확신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확신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며,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케 하심을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곤고와 환난과 시련과 기근과 핍박이 와도 넉넉히 이기게 된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산다는 것 자체가 은혜가 된다.
 
세번째 시험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이르기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답하셨다. 가치의 시험이다. 나의 존재와 사명의 가치를 아느냐의 문제다. 성도들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를 알아 존재 가치와 일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 모르면 세상 권세 잡은 마귀를 따라 세상 유행 풍속을 따르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절대 가치로 여기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과 경영과 돌봄 가운데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덕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 건설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예배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성령 충만케 하시고, 아버지의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호병기 목사/봉화현교회
-------------------------------------------------------------------------------------------
토-언약의 하나님과 그 백성
본문: 수 7:22~26
찬송가: 445장

본문은 아간의 범죄로 그 집안이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다. 이는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훔친 죄로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아이성 전투에 패하고, 다시는 너희와 함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제비를 뽑아 아간을 끝까지 찾아내 죽게 하신다. 아간이 훔친 것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1벌, 은 200세겔, 금 50세겔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진노하셨을까? 이는 백성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은 언약의 물건에 손댔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무서운 진노가 임한다. 우리의 구원도 '언약'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구원하시는 언약,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언약, 죄를 자복하면 보혈로 용서하시는 언약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고 있었다.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즉, 여리고성을 너희에게 줄 것이니 전리품은 여호와께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간이 탐심 때문에 하나님의 제물을 훔쳤다. 하나님은 가정마다 짐승의 첫 새끼는 하나님의 것으로 사람이 손댈 수 없게 하셨다. 여리고 성도 가나안의 첫 성으로 하나님이 받으신 제물로 사람이 손댈 수 없게 하셨다. 그런데 아간이 언약을 파기했고, 결국 개인과 가정, 국가가 큰 위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언약으로 맺어진 '언약백성'이다. 우리에게 맺은 언약은 무엇일까? 첫째로 십자가 언약, 구원 언약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언약이다.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죄사함과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언약백성의 축복이다. 둘째로 심는 언약이다. 축복의 비결은 심는 데 있다. 하나님은 광야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풍족하길 원하시어 첫 성 여리고는 하나님께 심으라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심으면 축복이 되어 되돌아온다. 십일조와 서원봉헌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이것을 도둑질하지 말라 하셨다. 십일조와 서원 예물에 대해서 탐심을 버리고 믿음으로 심자. 그러면 하나님이 물질을 축복하시고 책임지신다. 또한 '주일'을 심어야 한다. 주일은 허락된 모든 시간의 첫 날이다. 주일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임재의 날이다. 주일성수로 첫 날을 온전히 드리자. 그러면 모든 날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책임지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반석같은 믿음을 주옵서서. 언약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용 목사/주성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