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8일

9월 3~8일

[ 가정예배 ]

2018년 08월 31일(금) 15:21
월-하나님을 멸시하다
본문: 민 13:30~14:11
찬송가: 312장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의 실제 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멸시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면 누구에게 멸시를 받는 것일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에 의해서다. 그런데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고 지속적으로 말씀하신다.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믿는다고 하면서 주로 살지 않고 나로 산다. 십자가의 도를 모독한다.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니다. 출애굽한 1세대 남자 성인 약 60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심판적으로 모두 광야 길에 묻혔다. 두 사람이 남아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존경 받기를 매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에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제일 먼저 관심 가져야 할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라고 하셨다. 무엇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인가?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갖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평생 채우며 살아야 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나의 생에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이끄시면서 백성들을 돌보셨다. 그런데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은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아들이고, 울고불고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쳤다. 모세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자기 지혜와 능력과 선을 의뢰치 않고, 범사에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베푸심 가운데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누렸다.
 
셋째는 순종이다. 인도하심에 따르고, 말씀하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것이다. 그런데 순종의 훼방자는 바로 '나로 사는 나'다. 이를 죽이려면 성령 충만해야 한다.
 
끝으로 하나님을 존중하려면 하나님의 만나주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장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가시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를 만나주셨다. 그 후 친구처럼 대면해 주셨다.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도록 역사하셨다. 우리도 만나주시고, 대면해 주시고, 주장해주시기를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제가 멸시했습니다. 용서하시고 더욱 깊게 만나주시고 친구처럼 대면해 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절대 신뢰를 드리며,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존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호병기 목사/봉화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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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저주가 풀리다
본문: 갈 3:13~14
찬송가: 259장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한다. 저주란 무섭고 끔찍한 것이다. 왜 저주를 받으셨을까? 이는 하나님께 버림 받으시고,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풀어주시려고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죄의 저주에 묶여 살고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우리는 저주 받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저주란 '막힘' 또는 '나쁜 운명'이란 뜻이다.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사방이 막혀 있는 저주 속에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께 나가는 길 마저 막혀 사망에 이르는 죄의 노예로 살다가 죽게 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저주, 지옥의 저주, 심판의 저주, 질병의 저주, 불행의 저주, 슬픔과 고통의 저주, 가난의 저주, 가정파괴의 저주, 부도의 저주, 음란의 저주, 자살의 저주 등 인간은 어디든지 막힌 불행한 운명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인생의 막힌 길과 문을 열고 닫아 주실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 하나님은 인간이 죄로 인해 닫힌 길과 문을 열고 닫아 주실 분을 다윗 집에 세우시고 그 열쇠를 주시겠다고 언약하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의 저주를 풀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죽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자에게는 모든 저주가 풀린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섬뜩하게 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님만이 저주를 끊으신 분이데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평생 저주 아래 살 수밖에 없기에 '예수님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 소중한 일은 저주를 풀어 줄 분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주를 풀려고 돼지머리에 절하거나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간다. 하지만 도리어 일곱 귀신이 붙어 저주가 더 심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내 저주가 풀린 것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라. 그리하면 예수님이 평생 저주에 갇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본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의 약속된 복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진실한 믿음으로 이러한 복 받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요,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내 인생과 가정에 죄악의 저주가 풀리고 아브라함과 성령의 약속된 복을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용 목사/주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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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믿음의 선택으로
본문: 룻 1:6~18
찬송가: 94장

'믿음이란 무엇인가?' 크리스찬들은 '선택'이라는 데 큰 공감을 갖는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순간순간마다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를 접하며 선택의 결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본문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엘리멜렉의 가정 이야기이다. 극심한 흉년이 들자 이들은 모압 땅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엘리멜렉이 죽고 남편과 사별한 나오미가 두 아들을 모압 이방여인과 결혼 시킨다. 그런데 10년 만에 두 아들마저 죽게 되고 세 명의 과부만 남았다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약속의 땅이요 '떡집'이라는 축복의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지만 엘리멜렉이 하나님께 무릎 꿇는 영적각성도 없이 오히려 이방 땅으로 도피함과 그 아들들이 이방여인과의 결혼함으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선민의 혈통을 더럽히는 악한 죄로 인해 이 가정에 무서운 징계가 임했다.
 
그래서 이제 다 무너진 것 같고 망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긴 역사관 안에서 이 집에 주의 긍휼을 베푸시어 새 역사를 일으셨다. 또 다른 축복의 싹을 틔우시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의 과정 안에 있지만 당장 서글픈 현실에서 나오미는 고국에 임한 하나님의 긍휼의 소식을 듣고 두 며느리를 데리고 유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멈춘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불쌍히 여긴 나오미는 그들에게 새 인생의 길을 열어줄 결심으로 친정으로 돌아가서 재혼을 하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맏며느리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고 떠나고 둘째 며느리인 룻은 결단코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룻은 재혼하여 새출발 할 수 있음에도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며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심한다.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선택이다. 시어머니의 고향에는 경작할 땅도 없어 먹고 살길이 막막함에도 이국땅 베들레헴으로 함께 가겠다는 것은 단순히 시어머니에 대한 효심이기보다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룻이 남편과 사별의 슬픔을 당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어 깊은 믿음을 갖게 되어 시어머니에게 하나님께 하듯 사랑의 봉양을 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결단이다. 룻의 이 믿음의 결단에 감동하신 하나님은 그의 살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다윗왕의 증조모)이 되는 영육간에 놀라운 영광을 받게 하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오늘의 기도
선택의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의 선택을 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이선 목사/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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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공자의 삶
본문: 엡 5:15~17
찬송가: 344장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성공자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현대는 치열한 경쟁시대이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성공할 수 없다. 얼마 전 중국과 러시아는 첨단과학으로도 탐지할 수 없는 로켓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도전이 필요하다. 도전 의식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 연구가 거듭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공자의 삶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성공자로 본다. 또한 많이 배우면 성공자로 본다. 지식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성공자는 누구일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성공자의 삶을 살려면 첫째, 세월을 아끼라 했다. 세월을 아껴서 믿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말세에는 세상이 악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강도, 강간, 살인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악하다'라는 말은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게 못되고 나쁜 것을 말한다. 인간 사회에는 못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본문은 세상이 악하기에 세월을 아끼라고 한다. 세상이 악하면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믿음 없이는 주를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활용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요리문답 제1문답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주의 말씀을 벗어나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믿는 성도이다. 행동과 행위가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 신앙의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나게 된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한다. 내 멋대로 행동한다. 주님은 안중에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개인 우월주의 사상에 빠져 있다.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공자의 삶을 살 수 없게 됐다. 게으르고 나태한 생각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은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 나태와 게으름은 치료가 힘든 중병이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있어야 한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운동이 다시금 전개 되어야 한다. 이제는 체험의 신앙으로,은혜의 신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세월을 아끼고,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변화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게 되면 성공과 복된 삶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성공자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축복의 사람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준 목사/곡성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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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리를 알지니
본문: 요 8:32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진리가 되시고 그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 위에 세워진 곳이 교회와 가정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아야 한다. 진리는 예수님이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들으며 예수님을 알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중심은 오직 예수님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회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라 목사가 중심이 되며 사람이 중심이고 제도와 행사와 프로그램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예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잃어버리고 변질된다. 성도의 가정도 예수님이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를 받는다. 그전에 더욱 중요한 점은 은혜를 바르게 받아야 한다. 은혜를 잘못 받으면 이상한 데에 빠져 진리를 벗어나게 된다. 지금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이단, 사이비가 나오게 된 이유이다.
 
디모데후서 4장 4절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는 경고의 말씀이 나온다. 우리는 항시 점검해야 한다.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이 주님의 진리 위에 든든히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진리의 복음 위에 온전한 은혜를 공급 받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주는 은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만 받으면 된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교회와 예배를 통해서 주님만이 존귀와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가정을 통해서도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요한복음 8장 32절은 우리 모두의 기도제목이다. 이 구절이 공동체의 소망이요 응답이다. 더 나아가 내 영혼이 먼저 진리의 터 위에 뿌려지고 심어지고 거두어지기를 소원해야 한다. 평범한 것 같으나 능력이 있으며 보이지 않는 것 같으나 보이게 된다. 더욱 깊은 주님의 은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진리 위에 설 때 가벼운 은혜가 아니라 무거운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지식이며 지혜이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힘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다. 저마다 교회가 위기라고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심보다 더 시급한 것은 원칙이다. 원칙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 원칙은 진리이다.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가정도 이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면 가정이 회복된다. 가정 안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화목하게 된다. 동시에 예수님이 주시는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1:4 ) 오늘 말씀을 통해 반석같은 믿음의 가정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예배와 말씀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리며 주 안에서 제대로 받은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를 나누며 전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용 목사/소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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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을 구하는 시대
본문: 삼상 8:1~7
찬송가: 432장

사무엘이 늙어 그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사사 역할을 맡았으나, 아버지의 신앙과 행위를 따르는 대신,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왕을 구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그들은 사무엘 앞에서 대대적인 인적 청산과 통치구조의 개혁을 요구한다. 이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결국은 여전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들의 왕을 구하고자 하나님을 버렸으며 이에 엄히 경고하고 왕 제도의 실체를 가르치라고 하셨다.
 
신앙계승의 실패는 다음세대의 영적 암흑기를 가져오고, 또한 영적암흑기의 징조이고 결과이다. 사무엘의 생애에 있어서 출생부터 큰 흠결 없이 살아온 것으로 기록되지만 그의 노년에 두 아들의 신앙계승에 실패함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판결을 함에 있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 사사로운 욕심을 따라 판결을 굽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눈 앞의 재물에 대한 욕심이 하나님의 공의에 눈 멀게 하였던 것이다. 자식농사보다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이 있을까? 신앙의 계승이 없이 사사직분 계승이 이뤄졌을 때, 사무엘의 두 아들은 중요한 직분의 자리에서 사사로운 욕심으로 범죄하는 비극을 초래한다. 또한 당 시대와 백성들로부터 그들과 그들의 하나님이 거부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다음세대로의 신앙계승 실패는 단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왕으로 삼게 될 때에 거짓되고 허황된 환상에 대하여 가르치고 엄히 경고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아닌 세상으로 왕을 삼아 자녀들을 향한 거룩한 책임을 잊고서 세상으로 내모는 부모들에게도 그 위험성을 엄히 경고해야 한다. 당장에 네 눈앞에 보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위험한 것들로 눈이 멀어 처음 인류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죄의 함정에 빠져 곤란을 겪고 있는가? 무덤사이에 소리지르며 귀신들렸던 자 안에 들어가 있던 군대귀신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 안에 있던 물질귀신이 군대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을 마을에서 쫓아내지 않았던가?
 
하나님 아닌 것으로 왕을 삼는 시대이다. 세상 뿐 아니라 교회, 성도, 특히 목회자 가정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의 사역과 목회와 삶의 방향이 하나님 아닌 것을 우상 삼게 될 때에 당장의 눈에 띄는 인적 청산이나 제도개혁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 여전히 불편한 사사기를 반복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엄한 경고를 통하여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죄악된 세상 가운데 어두워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사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되심을 깨닫고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궁천수 목사/낙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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