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중 쓴 글 나누며 은혜 깨닫죠"

"투병 중 쓴 글 나누며 은혜 깨닫죠"

[ 아름다운세상 ] 폐병 앓으며 쓴 편지, 책으로 펴낸 백경천 목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8년 08월 15일(수) 09:51
지난 6월9일 일산호수교회에서 있었던 백경천 목사 저서 출판기념회에서 함께 한 참석자들.
'특발성폐섬유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지난 2월16일 폐 이식 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새 삶은 얻는 백경천 목사. 지인들로부터 '수도자'이자 '통일 신학자'로 불리는 그가 투병 생활 중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는 인사를 대신해 써놓은 글이 엮여져 '형에게 그리고 우성에게'(사하라북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자신과 똑같은 병으로 5년전 세상을 떠난 형 백경홍 목사에게, 그리고 아들 같은 목사 후보생에게 편지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은 사실 그가 투병생활을 하며 겪은 일들과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그의 묵상의 파편들이다.



# 후배들이 나서서 유고집 만들어



백 목사는 일산호수교회를 18년간 시무하다가 지난해 건강상 도저히 설교와 목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교인들의 양해를 얻어 사임을 했다. 그와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병세가 악화되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폐 이식만이 유일한 살 길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사후 기증자가 나오길 기다릴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삶 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인생이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혹 살게 될 경우 치료비를 치르기 위해 지금까지 납입했던 자신의 연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에 목사직까지 내려놓았다(그는 올해 수술을 받고 새 삶을 얻어 다시 봄노회에 목사직을 회복했다).

수술을 받기 몇 달 전 백 목사가 응급차에 실려 병원 중환자실로 입원했을 때 일산의 젊은 후배 목사들은 백 목사가 세상을 곧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신앙과 삶을 다른 이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투병 중 쓴 글을 모아 유고집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 후배들은 책을 만들기 위해 모금도 하고 출판사와도 출간 논의를 진행했다. 백 목사는 이렇게 젊은 내가 인생을 정리하는 것 같은 책을 내는 것은 이상하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 같다고 말했지만 후배 목사들의 뜻이 강하고, 그 마음들이 고마워 그들의 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후 백 목사는 6개월여 동안 집과 병원에서 사경을 헤맸고, 그 사이 책은 거의 만들어져 퇴원 후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정도만 쓰면 될 정도로 진행이 되어 있었다.

지난 6월 9일 토요일 일산호수교회에서는 교인들과 외부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감사예배가 드려졌다. 초청도 못했는데 찾아온 지인들이 많아 작은 교회당이 차고 넘칠 정도였다. 일산호수교회 교인들과 지인들이 마련해 준 그 자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백 목사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 죽음 앞에서의 영감과 깨달음

백경천 목사의 저서'형에게 그리고 우성에게'
죽음을 앞두고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신앙인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려는 한사람의 구도자가 한 움큼의 공기를 잉크 삼아 삶을 위해 한줄기 가는 호흡을 붙잡고 써내려간 문장 속에는 영감과 깨달음이 가득하다.

-"저는 지금 매우 적극적으로 환자의 역할을 하려 합니다. 마치 어떤 배우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배역을 최선을 다해 소화해야 하는 것처럼."

-"저는 정말 성실하고 확신에 찬 호흡기 환자로 살고 싶습니다. 이 삶이 감당하기 힘들다며 도망가고 싶지 않아요.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구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구하는 것은, 지금 저에게 주어진 삶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삶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요, 산다는 것도 그 단면을 잘라보면 매일 매일의 죽음을 통하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죽음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의 기억입니다. 그래서 내가 깊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기
백경천 목사의 저서'형에게 그리고 우성에게'
억될까 하는 것입니다."

백 목사는 지난 2월16일 새롭게 얻은 폐로 생명과도 같은 공기를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폐 수술 후 감염은 치명적이라 평소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매일 같이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복용한다. 수술 후 이식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어 조심스럽기 그지 없지만 덤으로 얻은 이 새로운 삶에 감사할 뿐이다.

"저는 이 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 책을 꿈꾸지 않고 계획하지도 않았거든요. 단지 그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써야만 내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무거운 것을 들 수도 없고, 음식도 먹지 못하겠고,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배설조차 잘 못했어요. 숨이 가쁘다는 것은 몸의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쓸 수 없는 거예요. 나는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글을 쓰며 아내와 아이들이 이 글을 읽어주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비록 목회를 다시 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저를 죽음에서 인도해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표현모 기자



<백경천 목사는?>

한반도 평화 위한 기도·농아인 섬김에도 앞장



백경천 목사는 몇년 전부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목회자들과 함께 정기적인 기도모임을 가져왔다.

백 목사는 "2013년 형이 돌아가시고, 두주 후 WCC 부산 총회가 열려 두주간 내내 참여하게 됐는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주 안에서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세계교회 대표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전부터 가져왔던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솟아올라 동생 백경삼 목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철원에서 기도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됨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달에 한번 국경선이 있는 철원에서 기도회를 가졌던 그는 이내 건강이 나빠져 많이 참석하지는 못했다고 아쉬워 한다. 백 목사는 최근 미국과 평양을 오가며 남북한의 화해와 남북 교회의 교류를 위해 힘썼던 고 홍동근 목사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통일이 되면 남한과 북한의 교회가 홍동근 목사님 이야기를 하면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현재 한국의 신학자들은 유학 후 자기 선생님의 노트만 풀어놓는데 이 땅에 꼭 필요한 남과 북의 평화 신학을 이야기 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백 목사는 농아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6월 출판기념회에 다수의 농아인들이 와서 함께 축하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일산호수교회 목회 시절 동네 독거노인을 돕다가 농아인을 만난 뒤 이미 농아인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던 안기성 목사와 함께 '농아인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화요모임을 10여 년간 갖기도 했다. 농아인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된 그 모임에서는 수화를 가르치고, 성경공부도 가르쳐 이 모임에 참석하던 농화인 중에는 방송국 수화 통역자 몇명이 배출되기도 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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