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12일

5월 7~12일

[ 가정예배 ]

2018년 05월 07일(월) 09:35
월-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본문 : 출 1:1~7
찬송 : 536장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최고의 기적이요 하나님 현현의 역사적 증표이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하는 내용이지만 더욱 중요한 궁극적 의미는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을 깨우치고 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로부터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애굽은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해방이요 출발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애굽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
 
출애굽기 서막에서 보는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강하여 애굽 온 땅에 가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애굽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키우고 이스라엘이 받는 복의 토양과 근거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하나님은 인큐베이터 같은 온실에서 신앙을 키우지만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리의 신앙을 반대하는 애굽과 같은 거친 세상의 현장에서도 신앙을 꽃피우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는 방법은 이처럼 특이하고 다양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신앙의 어떤 조건에서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시고야 만다. 광야에 강이 흐르게 하시고 황무지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도 무의미한 것은 없다. 애굽이라는 신앙의 악조건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을 막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에 의해서 그 뜻과 계획을 포기하거나 실패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약할 때 강하시고 우리가 부족할 때 풍성함으로 다가오신다. 그 현장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던 애굽의 고센 땅이다.

어느 것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 조건의 모자람이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함을 입증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손길이 머물지 않는 곳은 없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할 조건은 없다. 여기에 신앙의 위로와 희망이 있다.

주어진 현실을 불평하지 마시고 감사하라. 우리의 인생 계획은 하나님이 하셨고 오늘의 현실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성공이든, 실패든, 건강이든 병이든, 부유하건 가난하건 관계없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다양한 현실을 주시면서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다양한 현실 속에 신음하는 영혼들을 끌어안아 품게 하시고 위로하게 하신다. 아픈 자만이 아픈 자를 위로 할 수 있고, 절망을 경험한 자만이 내일은 없다고 절망하는 이웃과 함께 울면서 내일의 희망을 향하여 함께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삶의 현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구원의 여정의 모판입니다. 우리의 가정, 직장, 만나는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 속에서 신앙과 인격이 넓어지고 깊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의성 목사
맑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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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꽃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다
본문 : 시 104:1~15
찬송 : 79장

시인은 평범함을 거절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는 세상의 평범한 사물 속에서 독특함을 포착해낸다. 시인은 풀 한 포기에서도 우주를 보고, 아이의 눈 속에서도 세상의 수많은 언어를 만들어낸다. 월터 부르그만은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인이 되는 것은 비단 시를 쓰는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이나 설교자만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으려면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시인이 되어야 한다. 오늘 시인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풍경을 통해 하나님을 생각한다.
 
시인은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첫째,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다. 시인은 밤이 물러가고, 태양이 떠오를 때, 빛의 옷을 입고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 시인은 뭉게구름이 흘러갈 때, 바람이 불 때 구름과 바람을 조종하여 타고 거니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그의 눈에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눈뜨고 바라보고 만나는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하늘을 보고, 아름답게 피는 꽃을 바라보고 살아보자. 그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과 숨결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 세상을 여전히 섭리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육지와 바다를 지으시고, 그 물이 육지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 우리가 두 발을 이 땅에 딛고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물을 명하여, 우리의 터전을 삼키지 못하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한계와 질서를 정해 놓으신 것이다. 이 세상의 피조물의 행복은, 하나님의 창조의 명령에 순종할 때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 때 행복하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셋째, 나를 돌보시고 살펴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다. 시인은 우리의 눈에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 샘물이 흐르고 새들과 동물이 마시고 생명이 자라나고 풀과 채소를 가꾸시고 동물과 인간에게 양식을 공급하시는 것들을 통해서 나를 볼보고 계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생각한다. 우리의 눈에는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마땅해 보이는 그 속에서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면, 이 모든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면, 나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신비와 기적과 하나님의 생생한 일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감사가 넘치는 천국인가? 내가 서 있는 곳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천국 같은 곳인가?
 
오늘의 기도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주옵소서. 들꽃의 하나에서도, 내 평범한 일상에서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양수 목사
광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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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예수님의 눈으로 어린이를 보라
본문 : 막 10:13~16
찬송 : 566장
지난 겨울은 매섭게 추워서 땅속에 있던 냉이나 뿌리채소가 많이 죽어 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듯이 우리 앞에 새싹이 돋아나고 꽃을 피운다.
 
우리 가정에서 봄은 우리 자녀이며, 교회에서는 교회학교 아이들이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통해서 시작하셨고 사단의 공격을 통해 그 가정이 상처를 받고 깨졌으며 예수님을 통해서 가정을 다시 회복하시고 완성하시는 가정 이야기가 바로 성경의 핵심주제이다. 예수님을 통해 땅에서 회복된 가정이 곧 교회이며 교회 같은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같은 교회가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어린아이들이 아름다운 꿈나무로 바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관심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양육해야 될 것을 교훈하는 것이다.
 
첫째, 관심의 대상. 부모들이 예수님의 안수와 축복을 통해 자녀들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군중들 사이를 헤치며 자녀들을 앞으로 데려가려는 부모들을 제자들이 꾸짖어 책망하여 돌려보내면서 문제가 생겼다. 부모들이나 제자들은 자기들의 육신적인 생각의 관점으로 과잉보호의 대상, 또는 무관심의 대상으로 평가했으나 예수님의 관점은 영적인 관점으로 보셨다.
 
둘째, 구원의 대상. 예수님은 아이들을 어른들과 똑같이 구원의 대상으로 귀히 보고 기쁨으로 환영해 주셨다. 예수님의 관점으로 어린이도 구원의 대상으로 전도되고, 환영 받고 사랑 받는 교회가 되고, 가정이 회복될 때 청소년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셋째, 신앙의 모델. 어른들은 신앙생활을 머리로 복잡하게 계산하고 믿지도 않으면서 필요하면 신앙 생활하는 척 위선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순진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대로 표현하고 나름대로 열심도 낸다. 그래서 어릴 적 주일학교 교육이 중요하다.
 
넷째, 사랑과 축복의 대상. 예수님은 어른들 때문에 불안해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껴안아 보호해 주셨다. 아이들을 사랑과 보호의 소중한 대상으로 보신 것이다. 자녀들이 마음의 깊은 상처 없이 아름답게 자라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사랑과 영적보호 속에서 자라도록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이 최선이다.
 
예수님은 연약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축복의 대상으로 삼아 그 머리에 안수하고 축복해 주셨던 것처럼 축복의 대상으로 잘 자라 장차 세상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나누어 주는 축복의 통로로 살게 하신 것이다. 우리 미래세대를 이어갈 자녀들은 사랑과 축복 속에 잘 자라서 평생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축복의 통로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양육할 수 있도록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여 주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다음세대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정우 목사
한우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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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본문 : 마 18:1~7
찬송 : 570장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묻는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이에 예수님께서 한 어린 아이들 불러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이같은 질문을 한 이유는 바로 앞장의 내용에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실 때 세 명의 제자만을 데리고 올라가셨다. 이 일 때문에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은 몹시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시면 누가 가장 윗자리에 앉고 나는 서열 몇 번째가 될까?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명백하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 말씀은 어린아이를 보고 배우라는 의미가 있다. 교만하게 높은 자리만 바라보지 말고 마음을 낮추어서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어린아이와 같이'는'작은 자(소자)'와 같은 의미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자'를 가리킨다. 어린아이가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고 부모님에게 절대 의지해야만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낮은 자의 자세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신뢰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런데 6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의 '화'선언이 나타나고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시고 이렇게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노라고 말씀하신다. 어린 자녀들을 실망시키고 노엽게 하는 것은 그 아이를 불신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분노가 가득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이 있다. 자녀들 문제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성격형성에 부모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무너져가는 가정을 살리는 해답을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찾을 수 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어린 자녀들을 실망시키지 말라고 말씀한다. 부모들의 말다툼이나 폭력행사는 어린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신뢰감을 깨뜨리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에서의 해답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말씀한다. 이는 성경을 가르치라는 말씀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부모가 직접 자녀들에게 보여줌으로서 모범으로 양육하라는 말씀이다. 자녀들을 바르게 키워서 천대까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모든 가정들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지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부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만준 목사
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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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하나님의 자녀는
본문 : 사 54:13, 38:19
찬송 : 565장

일년 열두 달 중에 생명과 생명공동체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감사하고 축하하는 달이 5월인 것 같다. 특별히 어린이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 양육해야 할 거룩한 부담을 그리스도인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라고 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서 양육할 때 그들은 크게 평강할 것이며 또한 주께서 책임지신다.

첫째, 그 심비에 예수 그리스도를 새겨라. 차동엽 씨의 '무지개원리'란 책에 보석상인이 진귀한 보석을 발견하고 샀지만 나중에 발견한 흠집으로 크게 실망했다. 원래의 가치로 되돌리기 위해 고민하던 끝에 그 보석에 정교하게 장미꽃을 새겨 넣었다. 장미꽃 조각으로 그 보석은 누구나 사고 싶어하는 보석이 되었다고 한다. 부모는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여행하면서 자녀의 인생을 가치 있고 아름답고 귀하게 살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녀들의 인생이 행복하고 가치 있게 되지 않는다. 자녀들의 심비에 예수님이 새겨지고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실 때 그 인생은 가치 있고 귀한 인생이 된다.
 
둘째로 탄력성이 강한 사람이 되게 하라. 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오히려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튀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사람들은 모두 탄력성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요즘 같이 변화가 급속하고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요구하는 현대생활은 자녀들에게도 같은 수위로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는 자녀는 그것들을 창조적인 것으로 바꾸어 그 위기를 탈출한다. 자녀들이 예수님과 함께 동행할 때 그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큰 평강 가운데 거하게 된다.
 
셋째로 감사하는 자녀가 되게 하라. 본문은 히스기야가 병이 나은 후 "오직 산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라고 노래했다. 현 시대에서 제일 메말라 있는 것이 감사이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낮아졌을 때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자"고 노래한다. 현실의 여건이 힘들고 고단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미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미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고 하신다. 감사하라,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할 것 뿐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 자녀들이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며 환경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음에 감사하며 높은 자존감으로 살게 하소서. 어렵고 힘들 때 주님 주시는 자원으로 회복하는 우리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주미 목사
새들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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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걱정을 내려놓자
본문 : 마 6:25~31
찬송 : 337장

봄(spring)은 봄(seeing)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본문에서 예수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요즘 말씀하셨다면 백합화 대신 봄꽃 중의 하나를 보라고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새와 꽃을 보라고 하신 것은 봄 구경을 권하신 것이 아니라 염려를 금하신 것이다. 예수님 말씀의 요지는 "공중의 새가 먹을 걱정 하는 것 봤느냐? 들의 백합화가 입을 걱정하는 것 봤느냐?"고 물으시며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까지도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신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강아지, 이구아나, 거북이, 열대어, 새 등. 화초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금붕어, 새한테는 삼시세끼 밥을 주고 화초에 영양제를 챙겨주면서 자식에게 먹을 것도 안 주고 입을 것도 안 주는 부모가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하고 있는가? 바로 우리가 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식하고 계시다.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제발 염려하지 마라. 염려가 생기면 날아다니는 새를 봐라. 너희들은 이것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귀하다. 염려가 생기면 봄꽃을 봐라. 오늘 피었다가 내일 지는 꽃들도 내가 돌보는데 하물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이 정도로 말씀하셨으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그래도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당시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이 꾸중을 하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아마 예수님께서 아마도 답답하여 가슴을 치면서 말씀하셨을 것이다. 염려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아는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22:17). 마음의 즐거움, 기쁨, 감사, 희망, 행복감은 몸에 약이 된다. 우울한 모드를 버리고 기쁨을 선택하고 짜증을 버리고 감사를 택하고, 절망보다는 희망을 생각하면 보약을 먹는 것과 같다. 근심은 몸의 독이다. 어느 정도로 해로운가? 뼈를 마르게 한다. 살을 마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함을 잊지 말자.
 
오늘의 기도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걱정 될 때 마다 봄꽃들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각종 삶의 염려가 생길 때 마다 나무와 하늘과 구름을 보고 부는 바람을 느껴 보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지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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