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개혁'아닌 '혁신' … 연구하고 수정 보완

교육 '개혁'아닌 '혁신' … 연구하고 수정 보완

[ 기고 ]

김철경 장로
2017년 09월 05일(화) 14:09

지금 대한민국은 '개혁'이라는 단어가 화두이며, 개혁의 바람이 진행형이며, 사회적인 개혁과 종교적인 개혁 이외에 산업기술계에서는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기독교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한국교회의 '개혁'을 외치고 있다. 때로는 교회에서는 개혁을 '갱신(updating)'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문의 수장을 교체하고, 교육의 틀을 수시로 변경해 왔다. 그런데 급진적인 개혁은 또 다른 위험과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현 정부의 교육개혁의 기조는 '평등'과 '교육 주체는 국가'인 것이다.

물론 총론적인 측면에서는 좋다. 하지만, '평등'이라는 개념의 이해 차이, 교육의 주체는 수요자(학부모, 학생)라는 논리와는 상충이 일어나게 되므로,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하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라는 큰 틀에서 '교육'을 생각해 보면, 각론적인 차원에서는 차분하게 더 연구해야 할 분야와 부분이 많다.

급진적인 발상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부문에서는 '교육개혁'이라는 표현보다는 '교육혁신(an Educational Renovation)'이 바람직 할 것이다. 'Renovation'이라는 의미는 '수선하고 수리하는'것이다. 즉 기존의 교육정책을 보완해 나아가며, 세부적으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세부적인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송두리째 기존의 교육체제 틀을 바꾸는 것은 아닌 것이다.

즉 교육에서는 개혁, 혁명이 되어서는 안되며, 'renovation, innovation'이 바람직한 것이다. 새로운 해법, 그 방법은 시간을 두고 더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공교육, 일반고, 대학입시제도 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한 정책수립은 필수적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급진적인 체제 변화는 또 다른 교육의 병폐를 낳게 된다. 대한민국 교육 전체의 틀에서 인재를 육성 발굴, 양성하여서 글로벌 시대를 이끌 21세기 창의인재, 미래인재교육, 통이 큰 교육정책이 절실하다. 경쟁을 피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경쟁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력된다.

지금 한국 기독교계는 보수집단과 진보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두 집단으로 나누어진 것이 문제이며, 작금 대한민국의 큰 문제도 바로 이념의 문제이다. 기독교 보수집단은 선교 초기의 선교사의 영향으로 서양의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한국적인 토속신앙 및 샤머니즘과 결탁되어 새로운 기복신앙을 양산한 것이 문제가 되며, 목회자들의 권위주의를 낳게 한 것이며, 이런 교계와 교회를 향한 정의를 외치는 무리들은 비판적 시각을 앞세우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로의 성장과정에서 불온한 이념적 사상으로까지 발전하여 급진적인 좌파세력으로 키워오게 한 것은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크게 반성해야 할 과제이다.

보수집단이 반(反)지성주의라고 비판을 받지 않도록 지성적인 신앙을 지녀야할 것이며, 진보집단은 신앙과 삶이 괴리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신앙인으로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두 집단이 동반의 관계로 발전해야 한국교회가 하나로 될 수 있다. 지금 한국교계는 다행스럽게도 일치, 통합, 연합, 화합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화합의 움직임에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진정성이 빠진 움직임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 좀 더 폭 넓게 서로를 이해하며,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이념의 문제로 보수, 진보 흑백논리로 매사를 풀어나가지 말고 협력으로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급변하는 21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한 것이다.

그 패러다임 정립을 위해서 개개인의 편향된 이념적인 주장을 버리고 큰 틀에서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진정성이 어린 상생의 대화를 해야 한다. 진정성이란 죄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죄의 회개운동이 없는 화합은 그냥 제스처, 위선일 뿐이다.

김철경 장로
새문안교회ㆍ대광고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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