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장애인들의 마음에 봄꽃이 피었다

자폐장애인들의 마음에 봄꽃이 피었다

[ 아름다운세상 ] 밀알천사 토요산행 함께 하는 천사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7년 03월 13일(월) 18:06

낮기온이 14도까지 오를만큼 봄 기운이 만연했던 지난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자폐장애인 24명, 자원봉사자 36명, 도합 60명이 무리를 이루어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청계산을 올랐다.

올들어 가장 따뜻한 날씨로 인해 봄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탓인지 자폐장애인들과 자원봉사를 나온 이들의 표정이 더욱 밝았다. 이들은 2인 1조 혹은 3인 1조가 되어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뎠다. 

이 모습은 자폐장애인들의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사)밀알천사(대표:남기철)의 토요산행 광경이다. 밀알천사의 토요산행은 지난 1995년 남기철 대표가 자신의 자폐장애인 아들 범선 씨를 데리고 등산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등산이 자폐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충분한 양의 산소를 공급하고, 두뇌를 자극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남 대표는 무작정 아들을 데리고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들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30년 지기들에게 산을 함께 올라 달라고 SOS를 보내자 친구들은 기꺼이 달려와 이 부자의 등산에 동행한 것이 밀알천사 토요산행의 시작이었다.

한동안 남 대표와 아들 범선 씨, 그리고 친구들만 매주 토요일 등산을 하다가 남 대표의 아내는 다른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가달라는 부탁을 했다. 남 대표는 다니던 교회에 공개서신을 띄우고, 지역사회에도 알려지면서 참여하는 자폐장애인도 늘고, 더불어 자원봉사자들도 증가했다. 남 대표 아내는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자폐아 자녀를 돌보는 엄마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산행하는 4~5시간 동안 엄마들에게 꿈 같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주자는 뜻에서 이러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천사, 천사들과 동행하다

'장애인들의 산행인데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취재를 나올 때 들었던 기자의 생각은 영락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꼬박 4시간 여의 등산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남 대표는 "처음에는 잘 걷지 못했던 아이들도 이제는 비장애인처럼 걷고, 몸의 자세도 바로 잡히고, 다리에도 힘이 생겼다"며 "무엇보다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들도 산을 오르는 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원봉사자 최희용 씨(42세)는 "자원봉사로 10회 정도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장애인 아이들보다 힘들어서 뒤쳐지곤 했다"며 "최근에야 체력이 길러져서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혼자 올라도 쉽지 않은 길을 장애인들을 돌보며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봄볕에 기분이 좋아 비탈길을 무작정 뛰어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힘들 때마다 아무 설명 없이 다리를 땅에 붙이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때로는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고, 올라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기도 한다. 덩치가 큰 장애인들이 갑자기 내려가겠다고 방향을 틀면 이를 말리는 장정 두 명이 질질 끌려가기도 한다.

베테랑들은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지난해 7월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김필원 씨는 자신이 맡은 종화(14)에게 연신 말을 건넨다. 

"종화가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서빙 등 여러 일을 돕는다며? 너무 기특하다. 종화가 내리는 커피를 마셔봐야 되는데 카페 한번 찾아갈께."

김필원 씨는 종화의 정보를 미리 듣고서 산행 내내 살가운 이야기를 건넸다. 물론 자폐아인 종화는 별다른 말이 없지만 마치 아들과 산행하는 듯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고 손을 잡아준다.

막내인 세현이(10살)도 형과 누나들을 따라서 씩씩하게 따라가고, 봄볕에 기분이 좋아진 휘준 씨(21)는 대중가요 '찰랑찰랑'을 신나게 부르며 산을 오른다. 

2시간 여를 오른 후 중턱에서 간식시간을 가졌다. 장애인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 장애인들은 부모가 싸준 간식에다가 자원봉사자들이 싸온 과일과 초콜릿, 과자와 사탕에 너무나 신이 난 모습이다.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남 대표는 명단을 들고 아이들이 모두 있는지 점검하느라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22년간의 산행 동안 아이들이 없어져 이들을 찾으러 산을 몇 번이나 오르내린 적이 있었고, 때로는 장애인 아이들이 넘어져 다치거나 자원봉사자가 다리를 헛디뎌 골절상을 입기도 했기 때문에 산행이 끝날 때까지 남 대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가페출판사 사장 정형철 장로(하늘사랑교회)도 12년째 봉사에 참여하는 베테랑이다. 그는 밀알천사의 홍보부장의 역할을 자청한다. 정 장로는 "산행 봉사를 하다보면 자원봉사자들이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긍정적인 면들을 주고 받는다"며 "개인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도 오히려 힐링이 되고 밀알천사들로부터 기쁨을 전달받는다"다고 말한다. 그는 "저도 12년동안 참여했으니까 오래된 자원봉사자이기도 하지만 사실 봉사자 중에는 20여 년 전부터 참여한 남 대표의 친구와 후배들이 있다"며 "친구 아들을 위해 그 긴 세월을 동행하는 그들의 모습을 크리스찬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난 이날의 산행. 매주 토요일 산행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자폐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손을 흔든다. 해가 떨어지면서 다시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지만 초봄 주말 저녁 그 누구보다도 마음만은 넉넉하다. 장애인들에게도, 오늘 4시간 동안 이들의 손을 잡아준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춘삼월의 봄은 벌써 시작됐다.

 

#22년 간 자폐장애인 위해 토요 산행 이끌어
밀알천사 남기철 대표

"아들을 위해 시작한 산행이 22년째가 됐습니다. 그동안 자폐장애인 아이들도 늘

고, 이들과 동행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수도 늘었네요. 아이들도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천사입니다."

밀알천사의 남기철 대표(65세ㆍ선한목자교회 집사)는 6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매주 토요일마다 산에 오른지 어언 22년이 됐다. 산을 오르는 4~5시간은 장애인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고, 그 부모들에게는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이를 알기에 폭우와 폭설 등 피치못할 사정이 없는 한 반드시 산을 오른다. 

"처음부터 이러한 모임을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아들 범선이를 위한 거였으니까요. 그러나 아내의 부탁으로 주변의 장애인 아이들을 하나 둘 데리고 올라가고, 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모으다 보니 '밀알천사'라는 단체로까지 발전하게 됐습니다."

남 대표가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확장한 덕분에 30여 명의 자폐장애인들은 산행을 통해 체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들의 부모들은 잠시동안이나마 꿀 같이 달콤한 휴식을 얻게 됐다.

물론 지난 22년동안 밀알천사라는 단체를 이끌고 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5년전에야 법인 설립을 했기 때문에 그 전까지 거의 모든 비용을 개인이 짊어져야 했고, 자원봉사자의 숫자도 모자라 산행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기 때문이다. 

밀알천사는 매주 토요산행 이외에도 1년에 두차례 부모와 함께 야외 나들이를 떠나기도 한다. 자폐장애인 가정은 가족이 다 같이 나들이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가족들간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남 대표는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외부 강연과 장애인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밀알천사의 활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래그랜느'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래그랜느는 자폐성 장애인들이 주 근무자로 근무하며, 수제쿠키와 빵을 생산하는 전문기업으로 제과제빵 기술자들의 감독 하에 100% 핸드메이드로 생산하고 있으며 카페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래그랜느의 착한회원으로 가입하면 원하는 날짜에 쿠키와 빵을 받을 수 있다.(문의전화 02-44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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