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아이들, 필리핀에서 꿈을 꾸다

대안학교 아이들, 필리핀에서 꿈을 꾸다

[ 아름다운세상 ]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14년 12월 01일(월) 17:58

사단법인 캠프 '꿈꾸는 청년 봉사단' 이야기

【필리핀 불라칸 타워빌 = 박성흠 부장】 빨리 가려면 혼자 가야겠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던가, 이 친구들은 멀리 함께 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어머니와 친구들 곁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 필리핀에서, 그것도 마닐라의 화려한 도심도 아닌 불라칸 타워빌이라는 곳에서, 그것도 공기맑고 물좋은 시골도 아닌 도시빈민 집단이주 정착촌에서 말이다.

이 친구들의 이름은 '꿈꾸는 청년 봉사단'으로 붙여졌다. 자기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은 아니다. 김규원 김다미 이은서 장희재 전동훈 정의석 이렇게 여섯 명의 - '젊은'과 '어린'의 경계에 있다고 보는게 맞을 듯한 - 친구들과 김보미 복원용 두 명의 멘토 등 모두 여덟 명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이 머무는 캠프(CAMP)에서는 간편하게 '꿈봉'이라고 부른다.

   
▲ 사단법인 '캠프'가 모집한 '꿈꾸는 청년 봉사단'의 모습.
꿈봉이들이 머무는 캠프는 5년전부터 마닐라 외곽 지역 불라칸주 델몬테시에 들어와 도시빈민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엔지오(NGO)다. 안양제일교회(홍성욱 목사 시무)를 비롯한 교회들의 종자돈으로 시작된 캠프는 한국과 필리핀의 여러 NGO와 대학교 그리고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여러 기관들이 협력하고 불라칸 지역의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제 막 그 열매가 익어가는 중이다.

꿈봉이들은 왜 캠프를 찾아 필리핀의 이름도 낯선 도시 불라칸 산호세델몬테시 타워빌이라는 곳으로 왔으며 이곳에서 꿈봉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에 있었다면 멘토를 제외한 여섯 명의 아이들은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천방지축 천지사방 뛰어다니거나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다양한 날갯짓을 해야 할 질풍노도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도데체 왜 타워빌 캠프에 있는 것인가.

"저는 천안에 있는 아힘나평화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창업과정에 있어요. 일반 고등학교로 치면 고3쯤 되는데요, 대학을 안가고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매년 논문을 한 편씩 써야 하는데 저는 그게 좋거든요. 대학은 왜 꼭 스무살에 가야 하는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돈은 왜 꼭 많이 벌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죠. 그냥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자급자족이 저는 더 좋아요".

   
 
꿈봉이들 중 같은 학교에서 지원한 이은서 김규원(아힘나평화학교 졸업예정자) 씨는 자신들이 왜 대안학교를 선택했는지부터 설명했다. 다른 꿈봉이들도 대부분 대학에 대한 고민과 실망과 공교육 시스템에서 얻을 수 없었던 '내 존재의 이유'를 찾는 등 다양한 이유와 사연으로 대안학교를 선택한 경우다.

캠프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를 통해 꿈봉이들을 선발했다. 지난 10월부터 내년 그러니까 2015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불라칸 타워빌에서 지내면서 사회적기업인 캠프봉제센터와 베이커리센터 등 캠프가 타워빌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업을 지원하고 이 지역내에 있는 현지인 고등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협력할 '일꾼'들을 찾은 것이다.

캠프가 밝힌 꿈꾸는 청년 봉사단의 배경 설명은 이렇다. 과도한 입시경쟁과 스펙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 없이 힘겨워하는 청소년ㆍ청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캠프는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젊은이들이 해외 빈곤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재능을 발현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안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대학이 제일 고민이었어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공연기획을 하고 싶은데…, 공연기획의 스태프로 인턴십을 경험하는 것이 대학을 가는 것 보다 더 좋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공연기획 인턴십을 하면서 멘토들에게 들었던 답변은 늘 애메하기만 했어요"

   
▲ '꿈봉'이들은 사단법인 캠프 아시아지역사회개발센터 개관식에서 자작곡을 노래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꿈봉이 김다미(검정고시 예정)씨도 '그눔의' 대학이 제일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잘 부르던 그녀는 결국 캠프 지역개발센터 개관식에서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개관식 하루 전날 꿈봉이 친구와 함께 작사작곡해 '뚝딱뚝딱' 만든 노래로 참석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앵콜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꿈봉이들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를 탈출하고 싶다고 살짝 귀뜸했었다. 치안 등 현지 사정상 센터 외부로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는 현실은 피끓는 청춘 꿈봉이들이 견디기 힘든 과정이었지만 잘 견디고 있을거라 확신한다. 깨진 타일을 붙여 건물벽을 치장하는 일을 비롯해 캠프 대장 이철용 목사가 지시하는 일이라면 기쁘게 감당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붙여진 '봉사단'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민폐나 끼치지 않아야죠"라고 말하는 꿈봉이들은 이미 겸손을 알고 있었다. 따갈로그 말도 안통하고 영어도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당신들을 돕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는 말도 안되는 자만을 버리고 함께 친구가 되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한다는 것을 꿈봉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보미 복원용 두 명의 멘토는 물론이고 여섯 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여덟명의 꿈봉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필리핀의 빈곤 현장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들의 비전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래는 정해져 있는데 그 가야 할 길에 대해 확신하고 또 몰랐던 우리의 길도 찾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