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손놀림 속 발달장애우들의 희망이 꽃피다

서툰 손놀림 속 발달장애우들의 희망이 꽃피다

[ 아름다운세상 ] 음악으로 소통하는 밀알복지재단의 첼로 앙상블 '날개'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4년 07월 21일(월) 17:57

   
 
지난 7월 7일 오후 5시 30분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밀알아트센터 내 연습실. 8명의 발달장애인 학생들과 그 엄마들이 지휘자 선생님의 구호에 맞춰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비록 능숙한 연주는 아니지만 열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 아이들은 발달장애인 학생들로 구성된 밀알복지재단 첼로앙상블 '날개'의 단원들이다.
 
첼로앙상블 '날개'는 음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2년 11월 활동을 시작한 발달장애청소년들로 구성된 연주팀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 아이들은 첼로 연주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성을 배우며, 이를 발전시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날 아이들을 지도한 지휘자 오세란 선생은 연습도 하기 전 소란스러운 아이들을 향해 연습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산만한 아이들은 쉽게 집중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 익숙한 지휘자는 웃음을 잃지 않고, 그러나 단호하게 휘어잡는다.

 "다리 예쁘게!"
 "영민이 고개 땅 쳐다 보면 안되지."
 "세영아 손가락을 좀 더 벌려서 4번까지 내려와야지."
 
몇 번씩이고 지적을 반복해야 하지만 선생도, 배우는 아이들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선생은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에서 감사와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이미 정기연주회 및 크고 작은 공연에서 연주를 통해 청중들에게 큰 박수를 받아본 아이들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밀알콘서트 무대에도 서 본 경험이 있단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수 있으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매일 누군가의 도움만 받아 온 아이들은 첼로를 배운 후 이제 재능기부를 통해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아이들이 됐다.
 
비장애인들도 놀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이들은 활동단원으로 선정된다. 나머지 학생들은 학생단원, 그리고 연습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은 예비단원으로 구분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중 활동단원에 뽑힌 학생들은 비장애인들이 들어도 감탄할만한 연주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처음 첼로를 잡았을 때는 연주는 커녕, 지휘자의 눈도 쳐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 한 연습은 10초 동안 지휘자를 쳐다보는 것. 그만큼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1년 넘게 옆자리에 앉는 친구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휘자는 연습 중 자주 "옆 친구의 이름이 뭐지?"하며 옆 친구의 이름을 확인시킨다.
   
▲ 2013년 9월 '날개' 음악발표회

 
그렇게 시작된 첼로 연습이 1년 반 동안 계속 됐다. 솔직히 가야할 길은 멀다. 아이들은 아직도 집중을 못하고 기대했던 화음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첼로를 잡은 아이들도, 그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거나 선생님이 지시한 사항을 따르도록 도와주는 엄마들도, 똑같은 말을 수십번 반복해야 하는 지휘자 선생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평생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무언가 할 수 있게 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망의 발견은 아이들을 더욱 적극적이게 만들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서서히 사회성을 갖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녀들의 이러한 변화를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들은 변화를 겪는 아이들보다 더 기쁘고 들떠있다.
 
지휘자 오세란 선생과 함께 개인지도를 맡고 있는 방효섭 첼리스트는 "처음에는 모두들 아이들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이가 해내는구나 하는 감탄으로 변하고 있다"며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고민의 종류가 행복하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현재 밀알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전공과정에 있는 최형은 양(지적장애 1급)도 첼로를 연주하면서 긍정적인 치료효과를 경험한 대표적 케이스. 형은 양의 어머니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여기 저기 치료를 많이 다니지만 성장한 후에는 사실상 치료가 큰 의미가 없다"며 "나이가 들수록 활동 영역이 좁아지고 긍정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데 첼로앙상블에 들어오면서 그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또한, 최 양의 어머니는 "연주를 시작한 후 언어표현이 굉장히 활발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내재되어 있던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며 "첼로 레슨을 받으면서 스스로 안되는 부분을 찾아내며 '아 틀렸어요'를 외치는데 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던 장면은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최 양이 "주님 일에 쓰임 받길 원하고, 가능하다면 날개 구성원들과 함께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을 하는 곳으로 쓰임받길 원한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30여 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이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밀알복지재단의 전적인 후원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다. 밀알복지재단은 매년 기업과의 후원계약으로 레슨 및 행사비용을 마련, 주 1회 개인레슨, 주2회 앙상블 레슨, 월1회 오케스트라 레슨을 학생들이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심지어는 연습용 첼로도 재단측에서 대여해준다.
 
사람의 음역대와 가장 비슷한 악기인 첼로를 가슴에 대고 악기를 통해 자신이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던 이야기와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발달장애인들. 이들은 비록 서툰 손놀림이지만 첼로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화음을 만드는 과정에서 타인과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들이 팀 이름처럼 '날개'를 펴고 장애와 편견을 넘어 꿈을 향해 비상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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