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필사하며 날마다 주님과 동행, 난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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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20년간 성경 필사해 온 92세 할머니 윤여선 권사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4년 07월 15일(화) 14:42
   
 

그녀는 참 '멋쟁이'할머니다. 할머니와의 수다는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고 담백하다. 사춘기 소녀처럼 수줍어하시면서도 우리네 여느 할머니처럼 손녀 걱정에 하신 말씀 또 하고 또 하시는 모습에 괜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힘주어 하시는 말씀. "하루에 한 절씩이라도 말씀을 적어보아라"하신다. 역시나! '성경 필사하는 92세 할머니' 윤여선 권사(전주 동신교회)였다.

지난 6월, CBS 창사 60주년 기념으로 진행중인 '한국교회 성경필사본 전시회'에서 만난 윤 권사는 정확한 자간과 필체로 마치 인쇄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정갈하고 단정한 필사를 소개했다. 이날 전시회에서는 잠언서 병풍을 비롯해 신구약을 통째로 담은 두루마리 필사본, 3년에 걸쳐 완성한 신구약 5권의 책 필사본, 십자 모양의 필사 작품까지 다양했다.

관람객들조차 그 모든 필사본이 92세 노(老)할머니가 쓴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반듯하면서도 힘찼다. 특히나 12폭의 잠언서 병풍은 윤 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수를 세는 것은 물론, 글자 폭과 띄어쓰기 간격까지 계산해가면서 작업한 결과물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손으로 쓰는 기도, 성경필사'에 대한 윤 권사의 사랑은 유별나다. 일흔 살 무렵부터 시작한 필사를 20년 넘는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오죽하면 '서울 사는 딸네 집'에도 올해 처음 들렸다고 했다. 무려 20년 만에!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기도도 "하나님 건강을 지켜주세요. 오늘도 써야 합니다"란다. 실제로 윤 권사의 일상은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2~3시간, 점심 후에 1시간, 밤 9시부터 12시까지 다시 필사에 매달린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절대 못 할 일"이라는 윤 권사는 필사를 할 때만큼은 고령의 나이에도 놀라운 정신력과 집중력을 발휘한다. 어떻게 보면 볼펜하나 잡기에도 힘겨운 나이. 그러나 윤 권사는 "건강해. 너무 건강해. 치매도 없고 팔도 어깨도 하나도 안 아퍼. 성경필사가 나의 건강비결이지"라며 애찬론을 펼친다.

사실 성경필사의 시작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들'때문이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윤 권사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신약필사본을 남기기로 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을 갈고 한지를 다듬었다. 1년 동안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가며 자녀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경필사는 스스로의 신앙고백이 되었고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신약을 완성하니까 또 구약이 쓰고 싶고, 구약을 다 쓰니까 또 두루마리로 한번 쓰고 싶더라고. 두루마리가 완성되면 또 다르게 쓰고 싶고… 계속 계속 쓰고 싶어. 무엇보다 필사를 하는 동안은 주님이 나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아. 내 옆에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시는 것 같아. 나는 날마다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게 행복해."

어머니의 성경필사 사랑에 대해 6남매들은 "지금처럼 어머니가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것이 성경필사 덕인 것 같다"면서 "어머니가 남겨주신 성경필사본이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고 고백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새벽예배에 가시기 전에 6남매를 모두 깨워서 말씀을 읽히시고 찬송을 부르시게 하셨다"는 윤 권사의 셋째 딸은 "그때 어머니의 신앙훈련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 같다"면서 "주어진 삶을 뜨겁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늘 존경스럽다"고 사랑을 전했다.

오늘도 윤 권사는 필사를 한다. 늦둥이 막내아들이 부탁한 신약성경 필사본 때문이다. 아들에 대한 기도를 멈출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말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그리고 삶에 대한 그 열정이 어우러져 또 한 권의 믿음의 유산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 윤여선 권사의 손은 따뜻했다. 두 손을 꼭 쥐면서 "성경필사를 하다보면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서 헛생각과 헛짓을 할 수 없어. 그래서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는 거야. 나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라고 고백하는 속삭임에 잊고 살았던 주님과의 첫사랑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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