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선고 받고도 선교현장 지켰던 아버지의 삶에 감동, 그 삶 따라 살고파"

"암선고 받고도 선교현장 지켰던 아버지의 삶에 감동, 그 삶 따라 살고파"

[ 아름다운세상 ] 환우들의 친구, 색소폰 부는 의사 '최주열 집사'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14년 06월 23일(월) 14:25
   
 

호스피스 병동. 깊은 울림의 색소폰 연주가 병동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일까.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 생사의 경계에서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말기암 환자들은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도 울었다. "막내라 눈물이 많아요… 아버지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삶을 정리하셨어요…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그는 울고 또 울었다.

그는 이 병원(대구의료원) 가정의학과 전공의 3년차 의사다. "아픈 사람들을 만져주고 싶어서 의사가 됐다"는 최주열 집사(성덕교회). 그가 흰 가운을 입고 환우들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한지도 벌써 3년째다.

대구의료원에서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 병원 로비에서 환우들을 위한 작은음악회가 열린다. "색소폰의 풍부한 감성과 짙은 호소력이 사람의 감성을 직접적으로 '터치'한다"는 최 집사는 "색소폰은 마음을 열게하는 능력이 있다"면서 "힘들고 지친 분들이 마음의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색소폰을 연주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세미클래식으로 꾸며지는 연주회는 소박하다. 주로 어린 환우들과 보호자가 대부분이다. 오랜 병원 생활로 지친 아이들은 최 집사가 건네는 작은 사탕에 기뻐하면서 그의 연주에 "선생님 멋있어요!"라고 응원한다.

그러나 3년 동안 꾸준히 연주회가 진행되면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팬'들도 여럿이다.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연주자들이 재능기부에 동참하면서 더 의미있는 연주회가 펼쳐지기도 한다. 

사실 그는 프로 색소포니스트다. 고등학교 때 처음 색소폰을 만졌던 그는 대구예술대가 주관하는 '전국 관악 콩쿠르'에서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는 연주자가 될 것"이라는 극찬을 받고 1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대구예술대에 편입학했고 전공의 과정과 병행하며 어렵게 졸업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소독 냄새 나는 병원에서 이처럼 감성 충만한 색소폰 연주가 꽤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연주의 스킬보다는 환우들을 향한 그의 진실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음악을 사랑했던 슈바이처의 길을 가고 싶다"는 최 집사는 사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의대에 진학했다. 의사는 그냥 막연한 꿈이었다.

   
 
여느 수험생처럼 성적에 맞춰서 공대에 진학했고 그럭저럭 학업을 이어나갔지만 "금속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만지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갈등을 겪었다. 가난했지만 20년 동안 뜨겁게 목회를 하고 50세가 넘어 늦깍이 선교사로 순교한 아버지 고 최윤철 목사(본교단 파송)의 영향이었을까.

한때는 신학을 생각했지만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겠다"는 사명으로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했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더욱 '임팩트'있는 사역을 위해 의학전문대까지 진학하게 됐다.

"사람의 몸만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마음도 치료하고 나아가서는 영혼도 치료할 수 있는 진정한 명품의사가 되고 싶다"는 그는 환자를 만나는 의사로서의 일상이 소중하다. 그래서 가진 음악적 재능을 취미로만이 아닌 치유의 도구로 사용하고 싶다. 병원에서의 연주회 시작도 그랬고 지난 2월에 첫 연주앨범 'SHEMAYIM'를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서 평생 갚아도 못갚을 빚을 지고 산다"고 고백하는 그는 음반을 통해 좋은 음악도 선물하고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도 전하고 싶었다. 제작비는 청년시절부터 한푼 두푼 모았던 용돈으로 충당했다. 처음부터 기부를 생각하고 있었던 돈이었다.

앨범은 발매된지 한달 만에 1000장 이상 판매 됐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판매 수익금 전액은 모두 아프리카미래재단에 기부되고 있으며 때에 따라 가난한 사역자들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오늘도 환자의 푸념을 특유의 유쾌하고 넉살좋은 성격으로 받아주는 그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의외의 대답을 했다.

암으로 돌아가시기전 아버지의 선교현장에서 의료선교봉사를 하며 죽음을 앞둔 노목사의 에너지 넘치고 감동적인 모습에 "아버지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지금은 소아과 의사인 아내와 함께 선교지와 시기 등을 조율하며 "하나님이 보내실 때 언제든지 다 버리고 가겠다"며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아내 김지은 씨는 의대 공부를 하며 어렵게 세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면서 입양서류를 신청했다.

"의사로서 한 사람의 치료뿐 아니라 한 단체를 치유하고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대의'가 되고 싶다"는 최주열 집사.

색소폰의 깊은 울림과 환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그의 인술이 어우러져 이 세상 곳곳마다 구원의 기쁨과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지친 영혼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위로가 되어주기를 조심스럽게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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