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한 공간 '월평빌라'

가슴 따뜻한 공간 '월평빌라'

[ 아름다운세상 ] 중증장애인 32명 주거시설, 당사자 자주성과 지역사회 공생성 강조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4년 06월 16일(월) 13:43

*월평빌라 이야기
경남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에 위치한 '월평빌라'. 중증장애인 32명이 모여 사는 주거시설이다.

2008년 12월 지상 3층 규모로 개원한 이곳은 장애인시설이지만 명칭에 '장애인복지시설' 혹은 '사회복지법인'이라는 문구가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운영주체인 사회복지법인 이웃사랑복지재단 대표이사 유수상 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사회복지시설의 이름이 주는 낙인감이 있어요. 지역의 보편적인 이름을 사용함으로서 시설 거주인들이 지역의 주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동네가 월평마을이니 월평빌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말 그대로 동네의 보통 주택인 셈이죠."

월평빌라의 가치와 철학은 작명 과정에서 읽을 수 있다. 바로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이다. 장애인들의 특정지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속한 평범한 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그래서 월평빌라에서는 입주자를 장애인이라 규정하거나 호칭하지 않고 '입주자'라고 부른다. 저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서로 도우며 남녀노소, 빈부강약이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를 '사회다운 사회'로 여긴다.

   
▲ 월평빌라 전경.

입주 자격은 법정 등록장애인 1~2급 장애인, 건강검진에서 단체생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자 등이나 정신장애인(정신분열, 정동장애, 우울장애 등) 입주는 불가하다. 다만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는 입주가 가능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무료로 입주한다. 그 외에는 실비 정도만 받고 있다.

현재 입주자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74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원룸 형태의 집에 2~3명이 함께 생활하며 식사는 공동으로 하거나 각자 집에서 해결한다.

직원 23명의 대표격인 원장 유수상 목사는 일명 '관리사무소장'으로 불린다. 유 목사와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반상회와 성격이 비슷한 가구별 회의, 입주자 대표회의 등을 열어 시설물 수리 요청 등 애로사항을 접수하고 해결해준다.

월평빌라에는 나름 원칙이 있다. 그 중심에는 입주자들이 생활시설 원생이 아닌 마을의 평범한 주민으로 살아가도록 돕는데 있다.

우선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 유수상 목사는 "우리가 일상을 프로그램에 의해서 살 수 없듯이 월평빌라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도록 거들고 주선하고 돕는다"고 밝혔다.

또한 승합차가 없다. 입주자들이 훈련과정을 통해 홀로 혹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동수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내부에 직업재활훈련소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입주자들의 9명 정도가 직장을 구해 출퇴근을 하는데,직업훈련소를 내부에 만들 경우 주어진 틀 안에서만 갇혀 지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회관계망 구축을 위한 방편인 셈이다.

   
▲ 월평빌라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입주자들.

그리고 방문 봉사를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일상의 한 부분인 이발을 한다거나 영화 관람과 수영 등 취미생활을 즐기고 싶다면 봉사자를 초청해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현장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후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 보통의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진만큼 자족하며 사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월평빌라에 대한 후원금은 미비하다. 운영비는 국가 지원금에서 충당될 정도. 그러나 소액이라도 후원금이 들어오면 입주자와 일대일 결연을 맺어준다.

결국 월평빌라는 입주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또한 지역주민과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공간이 되고 있다.

유수상 목사는 "월평빌라는 자주공생하는 공간"이라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사회를 사회답게 하는 가치, 그 중에서도 사회사업이 감당할 수 있는 가치, 사회사업이 지키고 살려야 할 핵심가치는 바로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이라고 강조했다.



* 월평빌라 원장(관리사무소장) 유수상 목사

   
▲ 유수상 목사.

기자가 월평빌라 원장인 유수상 목사(진주노회 중촌교회)를 처음 만난건 2005년이었다. 경남 거창군 가북면 산골에 자리잡은 중촌교회를 시무하며 지역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센터 사역을 하고 있었다.

당시 유 목사는 군에서 지급되는 사례비를 전액 센터에 환원하며 섬김의 자세를 보였다. 현재 그 센터는 직원 95명인 튼실한 기관으로 성장했다.

월평빌라는 지역의 재가장애인을 섬기던 이웃사랑선교회와 함께 사회복지법인 이웃사랑복지재단을 만들고 국고지원을 받으며 시작했다. 그 빌라 옆으로 2011년에 거창효노인복지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센터의 모든 운영에 유 목사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센터가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다른 동역자들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하고 본인은 현재 중촌교회 시무와 월평빌라 사역에만 전념하고 있다.

유 목사는 모두가 선교의 절망이라는 곳에서 오히려 희망을 내다봤다. 그리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05년 당시 유 목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농촌교회라고 희망을 접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희망'이 지금의 노인복지센터와 월평빌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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