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찾아가는 복음의 향기

두 바퀴로 찾아가는 복음의 향기

[ 아름다운세상 ] 문화와 쉼, 그리고 선교 역사 가득한 양평을 가다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4년 05월 13일(화) 11:38

   
 
흐르는 강물 따라 반짝이는 아침 햇살과 푸르른  5월의 신록이 어우러진 팔당 자전거 길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용산역에서 중앙선 국철을 타고 팔당역에 내리면 신세계가 열린다. 남양주 팔당에서 양평까지 이어지는 30㎞ 길이의 중앙선 폐철로 구간은 이미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로 소문이 자자하다.

과거 해맞이를 위해 정동진역을 향해 달리던 추억의 녹슨 기찻길을 시멘트로 포장한 팔당-양평 자전거길은 몇 개의 터널을 지나다 보면 쉼터 역할을 하는 추억의 간이역과 북한강 철교도 만난다. 두물머리를 비롯한 자연명소와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 등이 강을 따라 이어지는 살아있는 역사자연박물관길이기도 하다. 당연히 주변 경관 좋은 곳에 찻집과 맛집이 즐비하다.

여기까지라도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릴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이 자전거 길 따라 흐르는 남한강변은 110년 전 곽안련(郭安連, Dr. Charles Allen Clark) 선교사에 의해 뿌려진 한국교회의 선교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넘실대는 곳이다. 어떤가? 이쯤 되면 신문구독 사은품으로 받았지만 먼지만 가득 쌓인 자전거일지라도 꺼내서 한번 달려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자전거가 없으면 그냥 떠나도 괜찮다. 팔당 역 주변엔 자전거 대여소가 많으니까.

자전거 도로는 겸손하다. 고속도로처럼 산을 깎지 앉는다. 흐르는 물처럼 자전거의 길은 언제나 우회한다. 자전거는 엔진도 기름도 없이 오직 두 다리의 힘만으로 달린다. 자연친화적이다. 바퀴의 중심은 텅 비어있다. '비어있음'의 에너지가 자전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전거만 있으면 대한민국 어디라도 스페인의 '산티아고' 못지 않다.

한국교회 선교 초기 선교사들은 대부분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왔고, 뱃길따라 경기도 양평의 곳곳으로 복음을 전했다. 한강 포구를 중심으로 교회가 많은 이유는 바로 그런 연유일터. 이렇게 세워진 교회들은 그 지역의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감당했다. 이 지역에는 1904년부터 1909년 사이에 신점, 용문, 상심리, 문호, 묘곡, 고송, 양평, 고읍교회 등 8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 중 5개처가 본교단 소속이다. 양평군기독교회사를 보면 "본래 양평군은 양근군(楊根郡)과 지평군(砥平郡)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서쪽은 수도권과 인접해 있고 동쪽은 원주 제천 등 당시 선교가 활발하던 지역과 가까이 하고 있어서 동서로부터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의 활동이 쉽게 이루졌을 것"이라 전한다.

팔당역을 나와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건널목을 건너자 마자 낮은 언덕길이 초보 라이더들의 숨소리를 거칠게 만든다. 그러나 괴로움도 잠시, 가운데 펼쳐진 철길 따라 5분 남짓 가면 오른편에 노란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파라솔과 의자가 펼쳐져 있다. 노천카페인가? 그런데 십자가가 있다. 한쪽 벽엔 추수감사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라는 명판도 있다. 알고보니 탤런트 이진우 이응경 부부가 개척한 교회였다. 지난해 한세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내년에 안수받는다는 이진우 전도사가 담임목회를 하고 있으며 지난 4일이 교회 창립 2주년이었다는 후문. 평일은 지역주민을 위해 교회 마당을 개방하여 음악회 등 문화행사를 열고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해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실비로 제공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추억의 간이역 능내역,
추수감사교회를 지나면 추억의 간이역인 능내역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능내역은 1956년 5월 간이역으로 지어졌지만 2008년 폐쇄됐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추억의 간이역, 요즘 젊은이들은 경험하지 못했을 매표소와 빛바랜 사진, 우체통, 고풍스런 소품 등 추억여행을 떠나게 한다.

조금 더 달려보니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나타난다. 상큼한 바람과 함께 달리다 보니 어느덧 국수역에 도착했다. 대로변 쪽으로 나오다 좌측에 독특한 구조의 교회가 보인다. 음악 공연을 하는 데 적합한 콘서트홀의 구조로 설계한 국수교회(김일현 목사 시무)이다. 국수교회는 피아노 독주회에서부터 합창과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1년에 평균 2~30여회에 걸쳐 공연을 하는 문화센터이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김 목사는 지역주민들을 단순히 전도하기 위해 문화공연을 펼치는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혜택받지 못하는 문화를 충족시켜주기 위함이라고. 단순한 동네음악회가 아니라 그동안 '프랑스의 피아노 신'이라 불리는 파스칼 갈래(Pascal Gallet)의 공연을 비롯해 모스크바 국립오케스트라 공연 등 많은 공연을 했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공연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국수교회.
김 목사는 지역주민들과의 소통을 위해 문화와 교육, 두 가지를 교회가 섬겨야할 두 축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공연 외에도 여름방학 기간 중엔 글로벌 시대의 다음세대 지도력을 위한 영어캠프를 운영하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카메라를 둘러메고 동행한 기자는 맨 몸으로 취재간 기자보다 체력 소모가 더 많을 터. 자전거 길 주변엔 마을 부녀회가 운영하는 쉼터가 많다. 메밀전과 도토리묵, 수제비로 식사를 했다. 사실 이 구간엔 '전직 대통령이 빵사드신 곳'이란 간판이 붙은 찐빵집도 있고 간장게장을 무제한 리필해주는 '도둑게장집'도 있고 콩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촌두부밥상' 등 넉넉한 시골인심과 다양한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식당 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팥빙수도 있고 연인들을 위한 드립커피 전문점도 있다.

다음 목적지는 올해 설립 109년이 된 상심리(上心里)교회(한종환 목사 시무). 양평과학고등학교 쪽으로 고개길을 2km 정도 가니 상심리교회가 보인다. 거리는 짧지만 업힐(uphill)과 다운힐(downhill)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구간이랄까? 솔직히 산을 하나 넘는 난코스다. 이 마을은 과거엔 상심리였고 현재는 대심리로 불린다. 상심리교회는 위(上)에 계신 분의 마음(心)을 품은 마을(里)이란 뜻이 아닐까? 가쁜 숨을 몰아쉬고 도착하니 옛 예배당 앞 강변에 신축된 상심리교회 100주년 기념예배당이 있다. 이 예배당 부지는 60년대 중반 경신고등학교 채플시간에 3년에 걸쳐서 학생들이 낸 헌금이 기초가 되었다고. 학생들이 헌신예배 시 헌금으로 율리교회 2천평, 문호교회 2천평, 상심리교회 1천4백평의 전답을 구입하여 기증했다는 것. 주변 풍광과 교회가 너무 잘 어울린다. 본당의 십자가는 가로부분이 곡선으로 되어 있어 마치 인생의 먼 길을 돌고 돌아온 나그네를 두 팔 벌려 맞아주는 듯 하다.

   
 
상심리교회가 세워진 것은 1905년이다. 한강 뱃길은 구한말 시대 초고속 교통수단이었다. 제대로 닦인 신작로 하나 변변치 않던 시절, 이곳은 나루터가 형성된 교통 요충지였던 것. 이 남한강 뱃길을 통해 상심리에 성경이 전래됐다. 특이한 것은 차상진 배운길 노윤용 노성원 등 초기 교인들이 권서인으로부터 입수한 성경을 읽고 자발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모르는 예배 형식에 대해선 서울 연동교회를 찾아가 배우며 설립된 자생 교회라는 점. 이 상심리교회는 묘곡, 문호, 양평읍, 고읍, 곡수, 고송교회 등의 설립에 기여하며 어머니교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상심리교회는 100년이 넘는 교회 답게 옛 성전을 보존하고 각종 기록물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서울노회사와 양평군기독교회사를 보면 문호리(무내미) 나루터는 조선시대 경성의 관문으로 주막과 여관이 즐비하여 작은 서울로도 불렸다. 사람들의 출입이 왕성한 이곳에 곽안련선교사가 1905년 가을 문호교회를 설립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방 한칸에서 시작한 이 교회는 1911년에는 6칸의 교회당과 183명의 신도로 부흥했다고. 한시간 반 정도 가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상심리교회 고갯길에서 너무 많은 체력소모와 취재시간의 지연, 더욱이 문호리는 자전거로 가기 어려운 일반도로 코스여서 아쉬움을 뒤로 한채 복귀하기로 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처럼, 자전거는 간만큼 돌아올 시간과 거리도 염두에 둬야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지금 이 곳에 없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이제 100년이 넘는 거목으로 성장했고 그들이 수없이 다녔을 강물은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잠시 서울을 벗어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하고 바쁜 일상 속에 지쳤던 마음이 여유를 찾게됨은 실로 큰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hcahn@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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