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묵은 이불빨래 해드려요"

"겨우내 묵은 이불빨래 해드려요"

[ 아름다운세상 ]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14년 05월 02일(금) 13:08

공주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 이동 빨래방 이야기

   
 
【공주=박성흠 부장】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 가득한 날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을 하고 싶어 몸을 들썩거릴테고 시간이 남는 사람들은 살랑이는 바람에 꽃구경이라도 해야 하는가 고민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어제의 비바람은 온데 간데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해맑은 웃음을 비추고 있었다.

충남 공주를 찾은 날이 그랬다. 먼저 온 봄을 시샘하듯 비바람 불던 어제와 달리 탄천면 중뜸길에는 '이젠 정말 봄인가보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날씨가 좋았다. 드럼세탁기가 네 대나 실린 '이동빨래방'도 불어오는 바람에 콧노래를 부르듯 달려가고 있었다. 공주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관장:김태진)을 출발한 이동빨래방에는 이하나 팀장과 김성진 주임 그리고 황정민씨 등 모두 4명의 사회복지사들이 몸을 실었고, 겨우내 묵은 빨래를 하기 원하는 '어르신'을 찾아 가는 길이다.

   
 
공주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이동빨래방은 이름 그대로 세탁기와 물을 싣고 빨래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는 차량이다. 2.5톤 트럭을 개조해 17kg짜리 드럼세탁기 4대를 탑재하고 1톤에 달하는 물을 저장하는 탱크 그리고 세탁기를 돌릴 발전기를 갖춘 '최첨단' 빨래차다. 지난 2011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지원받은 차량으로 공주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고 있으며, 하루 2~3곳의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찾아가 무거운 이불을 비롯해 묵은 빨래를 대신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먼 데까지 찾아와 주니께 아 우리야 고마울 뿐이지이~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커피라도 한 잔씩 드셔어"

이동빨래방을 맞이한 윤종진 할아버지(74세ㆍ가명)는 사회복지사들을 맞이하면서 연거푸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윤 씨는 시각장애인 아내와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논일과 밭일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는 것이 사회복지사 황정민 씨의 귀뜸이다. 윤 씨의 아내는 본래 비장애인었지만 최근 몇년새 시력이 약해지더니 한 눈씩 시각을 상실해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라고.

윤 씨는 이동빨래방이 온 것을 확인하고 트랙터를 몰고 밭으로 나간다. 빨래방에 동행한 김성진 사회복지사는 할아버지가 금방 돌아오는지를 확인하고 다녀오시라며 길을 터준다. 그 사이 황정민 복지사는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그 아들과 함께 방안까지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런두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촬영을 하는 핑계로 살짝 엿들었더니.

무슨 별다른 얘깃거리가 있으랴. 사는 이야기고 살아가는 이야기며 살아지는 이야기다. 남들은 다들 논을 갈았는데 우리집은 언제나 논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집 그냥반은 술을 좀 적게 먹어야 할텐데 걱정이라는 얘기까지 동기간이나 마을 이웃사촌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듯했다.

"사회복지사가 그래요. 빨래하러 왔다고 달랑 빨래만 하고 가는 건 너무 정없잖아요. 여기도 한 달 전에 미리 와서 조사를 해서 오늘이 두번째 방문이에요. 두번째 봤다고 벌써 친해졌나봐요.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듣고 하는게 우리 사회복지사들 일인거죠"

사회복지사로 공주기독교사회복지관에서 이동빨래방을 담당한지 이제 겨우 한 달째. 황정민 복지사를 비롯해 이하나 팀장과 김성진 주임은 빨래를 삼킨 세탁기가 열심히 돌고 있는 동안 서비스를 받는 '고객'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꼼꼼히 점검하고 메모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한 집을 방문하는 때는 무거운 이불 빨래를 비롯해 주민이 원하는 빨래도 할 수 있다.

   
 
때로 이동빨래방은 마을회관을 방문하는 때도 있는데 그런 때는 동네 빨래를 도맡아 하는 때가 태반이다. 또 이동빨래차에 설치된 세탁기는 건조기능도 갖추고 있어서 어지간히 궂은 날씨에도 임무를 수행한다고. '빨래터'에 도착하면 이동빨래차는 마련된 햇빛가리개를 내리고 하수구를 찾아 배수 호스를 연결한 뒤 발전기를 돌려 세탁준비를 마친다. 준비해간 저공해 세재와 진드기 제거제까지 투입하면 '빨래준비 끝'.

이날 찾아간 탄천면 중뜸길의 윤 할아버지네는 널찍한 마당에 빨래줄이 널려 있었고, 햇빛도 좋아 세탁기 건조를 하지 않았다. 탈수가 끝난 이불 다섯채를 내려 빨래줄에 널고난 뒤 모두가 모여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빨래 끄읕".

시각장애인 아내를 꼭 안고 챙기는 윤 씨는 아들과 함께 이동빨래방 사회복지사들을 배웅한다. 고마워, 조심해서 잘 가, 다음에 또 올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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