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서 만나는 찬란한 유산, 서울 '정동길'을 가다

길 위서 만나는 찬란한 유산, 서울 '정동길'을 가다

[ 아름다운세상 ]  봄이 오는 길목서 만난 여유와 낭만, 근대유산의 1번지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4년 03월 10일(월) 17:11

   
 
도심 속 골목길은 유일하게 자연과 어울리는 공간이다. 붐비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사방에서 울리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가운데서도 바쁜 현대인에게 여유와 낭만을 선물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골목길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곤 한다. 이뿐만 아니다. 골목길은 도심 속의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다. 거리 곳곳에 생생한 우리네 삶의 흔적이 묻어 있고, 역사와 문화, 예술의 향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막바지 겨울옷 벗기가 유난히 더딘 3월 초. 그 향기로 가득한 서울 중심의 골목길, '아름다운 정동길'을 찾았다. 봄을 재촉하는 햇볕 한줌을 친구 삼아 걷는 그 길은 향기에 심취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주중에는 아시아와 유럽 등에서 온 외국인의 발길도 이어진다. 안내지도를 펴들고 골목길을 헤매는 이방인의 모습은 우리의 골목길 '정동길'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이제 정동길은 서울의 골목길을 뛰어넘어 세계인이 걷는 길로 다시금 변모했다.
 
걷기 좋은 길,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수 있고, 선교역사의 숨결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96년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되면서 생겨난 정동은 정릉의 기억을 새긴 이름만 간직해 오다가 1883년 미국공사관이 처음 들어선 이후 서양의 외교가로 변모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와 교육시설, 의료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근대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수용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그곳은 제국주의의 세력 다툼 속에 자주 독립국의 위치를 지켜나가기가 매우 어려웠던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관파천'의 현장이자 자주적 근대국가로 탈바꿈하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한 뜻깊은 역사의 공간이다.
 
이처럼 근대 역사를 전하는 유산이 남아 있는 정동길은 서울 도심 속 '근대유산 1번지'로 주목받으며 박물관, 전시관, 또는 미술관 등으로 단장되어 생활 속에 친근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동길 걷기 코스-덕수궁 대한문-정동전망대-서울시립미술관-정동제일교회-배재학당역사박물관-정동극장-중명전-이화박물관-작은형제회-구세군중앙회관-성공회 서울성당.
 
정동길 걷기의 첫 시작은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에서 시작됐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걷는 그 길은 정동의 시작과 현재를 확인할 수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시작한 100미터 앞에는 서울특별시 서소문청사가 있다. 청사 내 13층에 마련된 '정동전망대'에서는 정동의 전경을 둘러볼 수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그 길은 사람을 품어주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이후 전망대를 떠나 옛 독립신문사 터를 지나면 서울시립미술관(구 대법원청사)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을 무료로 관람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한편 맞은편 정동길 초입에는 1885년 4월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최초의 교회 정동제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사적 제256호인 정동제일교회는 일제강점기 항일 활동의 거점으로서, 독립선언문이 비밀리에 등사된 역사의 현장이었다. 또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정동제일교회 담임 이필주 목사와 박동완 전도사는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교회를 나와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선교사의 사택 터였던 러시아 대사관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배재공원 내 자리 잡은 배재학당역사박물관도 볼 수 있다. 배재학당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교육기관으로 이승만 대통령, 소설가 나도향, 시인 김소월 등을 배출했다. 현재는 배재학당역사박물관으로 단장돼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정동길을 걷다 보면 정동극장과 중명전을 만날 수 있다. 정동극장은 한국의 전통음악 공연장으로 뮤지컬 '미소'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은 최근 복원됐다. 애초 덕수궁의 황실도서관으로 설립된 그곳은 1907년 헤이그특사 파견의 현장으로 대한제국의 좌절과 국권수호의 의지를 다지게 했다.
 
중명전 옆에는 1963년 신아일보가 매입한 신아일보사 별관도 있다. 또 골목길 맞은편에는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이화박물관)이 위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념관은 1886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1922년과 1961년에 걸쳐 증축되었고, 한 때 이화여중 교사로 쓰였다가 현재는 이화박물관으로 전시물이 잘 갖춰져 있다.
 
한편 정동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톨릭 '작은형제회'가 있다. 그곳에서는 성 프란치스코의 스토리가 담긴 북카페에 들러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 정동길 사거리를 지나 경찰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을 관람한 뒤 127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를 방문해 기독교역사의 현장도 체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금융사박물관과 조선일보미술관을 둘러본 뒤 1928년 설립된 구세군 중앙회관과 성공회 서울성당에 이르면 각 종교의 특색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경험도 맛보게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정동길, 그 길에서 묻어나는 교육과 문화, 기독교 역사의 열매가  큰 유산으로 남고 지켜져 거룩한 계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임성국 limsk@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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