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74세 할머니들이 '볶고, 갈고, 내리고'

평균 74세 할머니들이 '볶고, 갈고, 내리고'

[ 아름다운세상 ] 아름다운세상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9월 25일(수) 15:39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미래 그리는 마을 기업 '외할머니 카페'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소설가 이효석이 1920년대에 쓴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의 한 대목이다.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1900년대 초반의 수필에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비유적 표현으로 담겨 있다는 사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 나라에 커피가 있었다는 게 반갑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시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낙엽을 태우면서'를 읽고나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커피가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땅 어디에선가 사랑받던 음료였단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 마치 커피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만의 음식문화인양 착각하지는 않았었나 한번쯤 돌아보게도 된다.
 
눈길을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외할머니 카페'로 돌려보자. 이 낯선 이름의 카페는 마치 이효석의 수필에서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생두를 볶고 갈고, 이를 내리는 일련의 과정이 할머니들의 손으로 진행되니 이 보다 더 신선한 것이 있을까.
 
"안녕하세요~" 카페에 들어서니 한 할머니가 인사를 받는다. "어서 와요~" 올해 75세인 이춘복 할머니다. 외할머니 카페의 산파역을 한 부천 등불감리교회의 권사인 이춘복 할머니는 지난 해 5월부터 카페를 돌보는 바리스타이기도 하다. "나? 커피믹스만 줄창 먹었지... 커피콩이 이렇게 생겨먹은지 그전엔 몰랐어~ 하지만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고 할머니들 특유의 손맛으로 이제는 커피를 맛있게 내리지. 소문도 많이 났고 맛있다는 젊은이들도 많은데 그럴 땐 정말 뿌듯해요. 어떤 커피를 좋아하냐고? 난 카푸치노~" 이춘복 할머니는 무엇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하다고 말했다. 외할머니 카페가 없었더라면 오늘도 방에 앉아 TV 리모컨만 붙잡고 있었을 거라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헌래 목사(등불감리교회 시무)가 슬쩍 끼어든다. 바로 외할머니 카페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카페는 외할머니들이 주인공이죠. 푸근하고 좋습니다. 거기에 커피맛도 좋으니 부족할 것이 없죠. 이제는 단골들도 생기고,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자신감을 얻은 것, 더불어 교회가 지역사회와 긴밀히 호흡하게된 것. 이런 것들이 소중한 결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할머니를 중심에 세운 카페의 콘셉트도 훌륭하고 선교적 차원에서도 결실이 있다니 일석이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커피였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아내(박미성 씨)가 커피 사업을 합니다. 물론 영리를 목적으로 한 비즈니스는 아니고 외국인 근로자 선교를 하고 있는 최의팔 목사님과 함께 공정무역에 방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데. 이처럼 커피와 접점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 2011년 11월에 바로 등불감리교회에 부임했는데 그때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교회에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커피와 어르신들을 함께 떠올리게 됐습니다. 이게 바로 외할머니 카페의 출발점이 된 셈이죠." 김헌래 목사의 말이다.
 
커피와 어르신들만을 연결해 외할머니 카페를 덜컥 시작한 건 아니었다. 김 목사는 이 카페를 마을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구청을 문턱이 닳도록 다니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것도 여러차례.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도 모자라 행안부까지 심사를 거쳐 결국 마을기업으로 승인을 받았다. 이후 정부로부터 일부 예산도 지원받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교회가 자리한 지역사회와 더불어 미래를 그려나가게 됐다는 희망 때문이라고.
 
'갓 볶아 낸 커피 냄새' 가득한 외할머니 카페에는 71~77세까지의 어르신 6명이 하루 4교대로 일하고 있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저녁 10시까지 커피를 내리니까 한 사람이 4시간 정도 일을 한다. 그리고 시급 5000원이 근무자들에게 전달된다. 한 근무자가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일한다고 했을 때 2만원을 버는 셈이니까 어르신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김헌래 목사는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무척 크다고 말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어르신들이 스스로 돈을 버는 모습을 보면서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다'는 깨달음이 생기더라구요. 어르신들에게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물론 풍족하게 못드리는 게 늘 안타깝지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운 일터, 행복한 교회, 희망찬 노후를 개척해 갈 생각입니다. 저희 외할머니 카페, 지켜봐 주세요."

외할머니들의 정다운 커피 수다
 
무엇보다 외할머니 카페의 바리스타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다. 커피의 효능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건강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커피를 사랑하는 외할머니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면서, 또 직접 커피를 만들면서 체험한 것인 만큼 한번쯤 믿어보자.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우선 커피는 혈전을 녹여주지, 물론 아가씨들에게는 다이어트 효과가 좋아. 아참 그렇다고 커피를 많이 마시면 안돼. 칼슘이 배출되거든….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도 있긴한데 그래도 하루 2잔은 문제없지. 위가 안 좋다고? 그럼 3잔만 마셔. 괜찮아. 건강한 사람들은 하루 5잔까지는 문제없다구~"
 
어떤 외할머니랄 것 없이 커피의 효능에 대해 자신있게 한 두가지씩 꺼내 놓는다. 집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잊지 않았다. "커피 맛의 비결은 생두에서 시작되지. 생두가 70%를 차지해. 그 담엔 볶는 거야. 로스팅이라고 알지? 로스팅은 20%. 그리고 나머지가 바로 커피 내리는 사람의 기술인데말야. 잘 들어봐. 로스팅한 커피를 우리 집에서 사. 우리 집 커피가 맛있거든. 집에 가져가서 먹을 만큼만 갈아. 갈고 나면 후딱 먹어야 하는데 말야. 좋다고, 맛있다고 오래 둬봐야 맛이 달아나. 맛있게 만드는 노하우 알려줄테니 잘 들어봐. 커피 가루를 커피 메이커 필터에 4분의 3가량 채우고 물탱크에는 3분의 2쯤 물을 채워. 그리고는 스위치를 켜고 10초 동안만 뜨거운 물을 내린 뒤 스위치를 바로 꺼. 그리고는 20초를 기다려. 뜸을 들이는 과정이야. 아주 중요하지. 빨리 먹겠다고 서두르지 말고. 이게 노하우라고~ 20초가 지나면 그때 스위치를 다시 켜고 완전히 커피를 내려. 그럼 핸드드립한 효과를 볼 수 있지. 한번 해봐. 맛이 있나 없나."
 
시킨대로 하지 않으면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할머니표 로스팅 커피도 사야할 것 같고. 그래서 외할머니들의 손길이 닿은 커피를 사들고 귀가해 외할머니들만의 노하우를 따라 해보니, 거짓말처럼 맛있었다. 뭔가 깊은 맛이랄까. 물론 이것도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이미 오래 전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가 솥에서 꺼내 주신 삶은 감자 한 덩이 베어 물었을 때의 따뜻함, 그 따뜻함 만큼은 외할머니 카페의 자랑이다. 이것만큼은 믿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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