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골목마다 기독교 역사 살아 숨쉰다

굽이굽이 골목마다 기독교 역사 살아 숨쉰다

[ 아름다운세상 ] 아름다운세상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3년 03월 28일(목) 09:33

기독교 역사와 근대 문화 어우러진 광주 양림동 '복음길'

전남 최초의 선교사 배유지(1868∼1925, 미국명 유진 벨) 목사가 호남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던 광주광역시 양림동. 양림동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단단하게 맞물린 고장이다. 급변하는 사회 문화적 흐름 속에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변치 않는 복음 사역으로 조성된 골목 곳곳에 1백 년의 기독교 역사가 여전히 숨쉬기 때문이다.
 
이런 양림동은 광주의 기독교 역사와 근대문화가 어울린 생동감 있는 기독교 야외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4년 전남 목포와 군산을 거쳐 광주에 기독교가 전해지면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터를 잡았던 것이 큰 배경이다.
 
양림동에서 40년 이상 거주한 박귀님 권사(양림교회)는 "광주 양림동은 '복음동'이다. 양림동의 골목길은 '복음길'이다. 복음길에는 선교사들이 씨 뿌린 기독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교회, 병원, 학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기관이 자리한 모든 곳이 역사의 흔적이고, 복음동 주민 또한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말했다.

   
 
 
골목길 곳곳에서 찬양 소리가 울리고, 본교단과 기장 예장(합동) 교단에 속한 양림교회 3곳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을 양림동 일대. 선교사와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골목 곳곳을 누볐기에 동서남북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기독교의 흔적을 지울 순 없었다.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통했던 그 곳,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기독교 역사를 되짚어보는 양림동 골목길 여정은 괜히 미소가 지고, 맥박을 상승시키며, 불현듯 걸음을 멈추게 했다.
 
선교 역사의 추억이 담긴 골목길,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옛길, 봄기운이 가득한 아름다운 복음길을 따라, 근대에 남겨진 추억을 더듬어봤다.
 
양림길은 광주시 '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양림동 역사문화 둘레길로 조성됐다. 코스는 총 4.5km.
 
여유를 갖고 반나절은 걸어봐야 간파할 수 있는 그 길은 양림동 주민센터 골목을 출발해 오웬 기념각을 지나 이장우 가옥, 광주정공엄지려, 최승효 가옥, 양파정, 통기타 거리, 사직공원 산책로, 충현원, 호남신학대학교, 김현승시비, 선교사묘역, 우일선선교사 사택을 지난다. 또 호랑가시나무, 커티스메모리얼홀, 3ㆍ1만세운동 기념상, 수피아여중ㆍ고 옛 강당, 윈스브로우 홀, 어비슨농업학교터, 광주기독병원, 푸른 길 정율성 동상, 정율성 생가를 거쳐 양림동 주민센터로 돌아온다.
 
기자의 첫 출발은 1955년 미국 남장로교에 의해 설립된 호남신학대학교였다. 호남 선지동산의 언덕을 따라 오르니 호남지역에서 활동하다 숨진 선교사 20여 명의 묘원이 마중한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숨진 외국인 선교사들의 희생에 절로 머리가 조아려졌다.
 
선교사 묘원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오면 3채의 선교사 사택이 보인다. 그중 1910년에 세워진 우일순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로 광주시 지정기념물 제15호로 선정됐다.
 
이어진 자갈길을 따라 사시사철 푸른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면 1908년 4월 유진벨 선교사가 설립한 수피아여자고등학교를 만나게 된다. 학교는 3.1절 만세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전통 있는 기독교 학교다. 학교 입구에는 1921년 준공된 선교사들의 예배당, 커티스 메모리얼 채플(유진벨 기념 예배당)이 당당히 자리를 지키며 '복음동'의 끈을 이어오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외에도 수피아홀, 윈스보로홀 등 선교사들의 흔적이 깃든 건축물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학생들의 등장으로 시끌벅적한 학교 맞은 편에는 광주기독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1905년 미국 남장로교 소속 놀란(Dr. J. W. Nolan) 선교사의 의료선교로 시작된 병원은 양림동의 대표 의료기관으로 발전했다.
 
광주기독병원과 어비슨기념관을 지나 광주천 방향의 골목길로 향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기독간호대학과 3개의 양림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기독간호대학에는 선교활동 중 폐렴으로 숨진 오웬 선교사와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 설립된 오웬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현재 기독간호대학의 강당과 교회 관련 행사,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 오웬기념관 맞은 편에는 3개의 양림교회 중 본교단 양림교회(노치준목사 시무)가 자리 잡고 있다. 1904년 광주 최초의 예배공동체로 시작한 양림교회는 이미 1910년에 성도 6백여 명이 출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하지만 분열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본교단과 기장 개혁 교단에 속한 3개 교회로 나눠었다. 현재는 3개 양림교회가 1백 년사를 합동으로 발행하기도 하며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느다.
 
양림교회를 벗어나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향하면 광주YWCA가정폭력상담센터, 기독서점 등 기독교와 뗄 수 없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광주사직공원을 향해 걷다 보면 사직도서관 입구에 전남노회가 광주지역에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것을 기념해 세운 선교기념비도 있다.
 
이외에도 양림동은 남궁혁 김철 김마리아 조아라 등 독립운동가들과 인연을 맺은 역사의 현장이며,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가옥, 최부자집 등에서는 조선 말 전통한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통과 문화의 골목길이다.
 
호남신대 송인동 교수는 "양림동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남다른 정과 헌신, 마을 주민들이 담게 된 기독교정신이 양림동을 독특한 문화로 발전했다"며 "양림동 정신의 근본은 생명존중 사상이다. 이 사상이 호남의 호혜정신과 맞물려 희생ㆍ나눔ㆍ섬김으로 발현됐다"고 말했다.
 
이어 송 교수는 "양림동은 기독교가 주체가 돼 근대 역사를 잇고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마을을 만드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며, "한국교회 성도들이 기독교 문화와 전통이 숨 쉬는 양림동, 복음동의 골목을 누비며 새롭게 도약하는 영적원동력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둘레길 조성으로 최근 양림동을 찾는 방문객은 급증했다. 부활의 기쁨을 마음 속에 담고, 신앙을 지킨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소중한 역사 현장을 나서보는 건 어떨까. 그 길은 우리에겐 힘이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처진 어깨를 회복시켜 줄 답을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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