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사막 레이스 완주한 그랜드 슬래머 최규영 씨

4개 사막 레이스 완주한 그랜드 슬래머 최규영 씨

[ 아름다운세상 ] 아름다운세상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13년 03월 13일(수) 15:15

내 인생의 황무지를 건넜다, 오직 주님의 은혜 아래서
 
'스펙'에 도움 되는 일만 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이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눈엔 그리 달갑지 않다. 그렇다고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그들을 나무랐다간 대화의 단절을 맛보기 십상이다.
 
좀 더 현명한 방법은 '사서 고생'의 좋은 모델을 제시하는 것인데, 기자는 최근 4개 사막 레이스를 완주하고 돌아온 최규영 씨(송촌장로교회 출석)를 만나 '사서 고생'의 의미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4학년인 그는 2012년 한 해 동안 칠레 아타카마사막, 중국 고비사막, 이집트 사하라사막, 남극에 이르는 약 1천㎞의 레이스를 완주하고, 주최측 '레이싱 더 플래닛(racing the planet)'으로부터 '그랜드 슬래머(grand slamer)'의 영예를 얻었다.

 

   
 

 
'레이싱 더 플래닛'은 극한과 싸우는 인간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세계 10대 극한 경기' 중 하나다. 사막별로 약 2백50㎞의 거리를 6박 7일 간 달리게 되며, 참가비도 총 2천3백만 원에 달한다.
 
그는 왜 이 '사서 고생'에 뛰어들게 됐을까? 2006년 인터넷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이 그의 마음을 빼앗았다. "황량한 사막에 한 사람이 뛰고 있었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정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오랫 동안 찾아 헤맨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타인의 도전하는 모습'에서 발견했다"고 첨언했다.
 
그러나 원하는 일을 찾았어도 꿈을 이뤄가는 과정엔 여전히 힘겨운 현실이 존재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참가비 마련을 위해 2011년 호주의 한 농장에 취업한다.
 
"아침에 씨리얼을 먹고 농장에 나가면 하루 12시간 이상 허리를 숙이고 일해야 했습니다. 공동으로 작업하고 수익은 일꾼들이 똑같이 나눠갖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견제가 심했죠. 일을 못하거나 잠시 허리를 펴면 여기 저기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건강한 몸과 남다른 참을성이 자랑거리였던 그도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6개월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때 번 돈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레이싱 더 플레닛'의 '그랜드 슬래머'는 전세계에 28명 뿐이다. 보통 한 경기에 1백50명 정도가 참가하지만 그들이 싸우는 상대는 다른 참가자가 아니다.
 
"모든 극한 경기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옆에서 뛰는 다른 참가자의 모습에서 힘을 얻어 한 걸음 더 내딛는 아름다운 자기 극복이죠. '그랜드 슬래머'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서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그래서 다른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또 다른 '사서 고생'을 준비 중이다. "미국 횡단, 유럽 일주, 아프리카 종단을 무전여행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을 만나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습니다."
 
호주에 가기 전 우간다에서 2년간 생활했던 그는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는 NGO 설립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학과 학생으로서 그가 소망하는 선교는 '현지인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동일하게 생활하며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일'이다.
 
요즘 그는 유명인이 됐다. 몇몇 언론에 그의 도전기가 소개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페이스북 계정(www.facebook.com/gyuyoung.choi)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근한 교류를 나누고 있다. 그의 담벼락에는 그 동안 그가 살아온 이야기부터 한 명의 젊은이로서의 고뇌, 세계 각지에서 느낀 경험과 사진들이 고스란히 올라와 있다.
 
여기서 그는 고백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굳게 믿으며 힘들어도, 배고파도, 외로워도, 삶이 나를 외면 할 때도 꿋꿋하게 버텼더니 인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랜드 슬램 달성한 남극 경주 마지막 날 최규영 씨의 일기(요약)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를 수없이 생각했다. 남극의 마지막 날엔 정말 허파가 터지도록 뛰었던 것 같다. 자그마치 1년이란 시간을 뛰어온 내 레이스의 결승선을 눈앞에 두니 어떤 말로도 표현을 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가슴을 뚫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것은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표출됐지만 그 진정성은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서러움과 두려움임을 나는 안다.
 
갑자기 호주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가 생각났다. 돈을 벌겠다며 편도 티켓만 들고 입국했는데 막상 갈 곳이 없었다. 한 번은 나에게도 쇼핑센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카트를 밀고 그 안을 돌아다녀서 산 것이라곤 1kg짜리 소시지 한 덩어리. 냉장보관된 소시지 한 덩어리를 그 자리에서 다 먹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나는 꿈이라는 것, 그 두리뭉실하면서도 왠지 희망적인 것을 위해 사는 일이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왜냐하면 '정말 용기를 내서 현실을 떨쳐내고 꿈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갔으니, 분명 뭔가 달라져야하고 삶은 특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내가 나의 꿈 그랜드 슬램을 향해 나가가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한 또 다른 현실에 충실해야 했다. 그래서 호주로 건너갔고 새벽부터 밤까지 농장에서 일을 했다. 한국에선 공부로 밤을 지새우고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었다면, 호주에서는 노동으로 생활비와 참가비를 마련하고 시간 쪼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현실은 어느 곳에나 존재했고 아침마다 내 목을 졸라왔으며 가혹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난 꿈을 위해 현실을 살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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