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최영재목사, 36년째 청소년교정사역에 올인

원장 최영재목사, 36년째 청소년교정사역에 올인

[ 아름다운세상 ] 나사로 원장 최영재목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3년 01월 18일(금) 13:40
"이곳 아이들이 범죄자로 크느냐, 아니냐는 우리 관심에 달려"

   
"목사님! 힘드셔도 힘내시고요! 항상 존경하고 사랑해요! 화이팅! - 민지와 유진"

나사로청소년의집 원장실 칠판에 써있는 글이다.

"녀석들이 들어와 써놓고 간 모양이네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원장 최영재목사는 아이들이 몰래 써놓고간 메시지가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미소를 짓는다. 모두가 꺼려하는 청소년 교정사역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사실은 제가 비행청소년이었어요.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술 먹고 싸움박질만 하면서 살았어요. 정말 스무살까지 술만 먹으면 싸웠던 것 같아요. 서울 용두동에서 최영재하면 이를 박박 갈았을 정도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난폭하고 못되게 놀았죠."

이렇게 방황하던 최 목사가 마음을 잡게 된 것은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부터다. "술 안마시고 사고 치지 않으려고 아무리 결심해도 되지가 않았어요. 결국 자살을 생각했죠. 그런데 지옥이 있을 것 같아 자살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이러한 신학적인 질문을 가지고 스스로 교회에 찾아갔어요. 기도원 등을 찾아다니며 성경을 두달동안 3번 읽는 동안 제 자신이 깨졌습니다."

이렇게 변화한 최 목사는 군복무를 마치고 예전 자신처럼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아이들에게 간증을 하며 "오갈데 없는 아이들은 나에게 오라"고 말했는데 얼마 후 실제로 6명의 아이들이 찾아왔다. 1977년 11월 이 아이들과 전셋집을 얻어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나사로청소년의집의 시작이요, 청소년 교정사역의 시작이었다.

"이사를 얼마나 다녔는지,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정말 말로 다 못해요. 빚더미를 떠안고 공장에서 숙식하던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혼 때도 아이들 여섯명과 같이 살 정도였어요. 너무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기가 막히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재정과 사람들을 딱 맞게 보내주셨죠. 조지 뮬러가 따로 없어요."

그때 함께 살던 아이들은 지금 50대가 되었고, 그중 두 명은 목사가 되었다. 이렇게 36년간 비행청소년들과 함께 살아온 최 목사는 지금도 나사로청소년의집 내 판넬집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 곁을 떠나기 싫은 것이 첫째 이유다.

"우리 아이들은 솔직히 학교 폭력을 일으키고 커서는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이에요. 커서 계도하는 건 더 힘들죠. 그런데 국가에서 나오는 재정만 가지고는 고아원처럼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해줄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범죄자 혹은 사회적 낙오자가 되느냐는 문제가 우리의 관심 여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최고의 사랑을 주고 싶은 게 이 아이들의 영적 부모된 저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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