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에서, 불가능을 꿈꾸다

아프간에서, 불가능을 꿈꾸다

[ 아름다운세상 ] 힘펀드 서우석선교사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3년 01월 10일(목) 13:10

[아름다운세상]

아프간 사람들에게 사랑 전하는 '힘펀드(HEMEFund)'와 대표 서우석선교사

   
 ▲ 현지에서 직업학교의 인기는 폭발적이지만 문을 두드리는 여성들을 다 받아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졸업생에게는 재봉틀 한대가 선물로 주어지며 60$짜리 재봉틀은 어머니인 과부 여성과 자녀들의 생계를 뒷받침하게 된다. 앞으로 50개의 직업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 사진은 힘펀의 사역에 감사를 표하는 아프간 여성들.

맨발로 3일을 걸어 병원을 찾아온 노인, 신발 살 돈이 없어서 한달에 3번을 다쳐서 오는 청년 하미드, 3년간 짝짝이 군화로 탈레반과 싸워온 19살 군인 자헤드 ….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이 세 사람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았고 그의 삶은 또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일 용산 미8군 121병원 인근에서 만난 힘펀드(HEMEFund)의 대표 서우석선교사(주한미군 의무병ㆍ죠이교회 협력선교사, 46세)는 "할아버지의 발을 닦아 돌려보낸 후 '왜 신발을 주지 못했을까' 하고 자책했다. 가슴에 쇳불을 넣은듯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미군들을 찾아다니며 신발을 사주자고 시작한 것이 1년간 3천명을 돕게 됐더라"고 말했다. 신발 뿐이 아니라 초등학교에는 책가방과 학용품을, 군인들에게는 옷을 전했고 난민촌 의료봉사, 문맹퇴치 사업 등 군인과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많이 했다. "아프간 사람들… 그냥 사랑이 필요한 것 같아요. 끝없이 사랑을 전하면 언젠가는 복음의 씨앗이 열매맺게 되겠죠."
 
시계를 거꾸로 돌이켜 보면 그는 지금처럼 남을 도울만한 형편의 사람이 아니었다. 경제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의대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마칠 수 없었습니다. 2000년 미국에서 파산을 했고 나이 마흔에 직업군인이 됐어요." 돈이 없어서 들어간 군대에서 그는 가슴 깊이 울었다. "왜 이 바닥까지 왔는지… 나를 생각하면서 울었어요. 하나님께서는 군대에서 내 교만, 꿈, 자아까지 다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전환은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찾아왔다. 2008년 미군에 입대한 그는 2009년 1월 12월에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됐다. 그리고 한번도 꿈꾸지 않았던 먼 이국 땅에서 그의 삶이 변했다. 서 선교사는 "탈레반과 싸우고 빈 라덴을 잡겠다고 농담하며 간 곳인데 사역지가 될 줄은 몰랐다. 그들의 삶과 마주한 뒤로 나를 위한 눈물이 그 땅을 위한 눈물로 바뀌게 됐다"고 고백했다. 2011년 9월부터 한국에서 근무 중인 그는 2014년 3월 제대한 후 아프간에 다시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꼭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프간에서 1년의 복무 기간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는 일시적인 도움만을 주고 온 것이 아닐까 무거운 마음에 쉽게 그 나라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2010년 4월 미국에서 비영리단체인 힘펀드를 설립하고 아프간 여성들의 실질적인 자립을 위한 구상에 돌입하게 된다. 무슬림임에도 형제의 정을 나눴던 현지 의사 라피가 적극적인 도움을 줬고 그해 10월 첫번째 직업학교를 세웠다. 힘펀드는 주거(Housing), 교육(Education), 의료(Medical), 직업창출(Employment)의 약자인데, 알고보면 힘(HEME)은 헤모글로빈의 한 요소로 혈액 내에 산소 공급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아프고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마음에 당장 방 2칸을 월세로 구하고 2명의 교사를 고용했다"고 설명한 그는 "일자리도 없고 재혼도 어려운 과부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하다. 그 땅에는 어머니가 짓밟혀 있더라"며 직업학교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현지에서 직업학교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정원은 10명, 3개월 과정으로 1년에 최대 입학할 수 있는 인원이 40명이다. 졸업시에 선물하는 재봉틀(60$)까지 한 명당 약 66만원의 교육비가 투입되는데 지금까지 80여 명의 아프간 여성들이 참여했고 이들은 월 60∼1백90불의 수입을 보장받고 있다. 아프간에서 의사 월급이 3백50불인 것을 감안하면 꽤나 큰 비용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 '불가능을 꿈꾸라(Dream the Impossible)'는 비전을 받고 "하나님 어떻게요?"라고 묻는 그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 인생이라는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인 부부가 기차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처음 공항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 은하철도 999의 철이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웃는 부인 정민선전도사.
 
미국에서 유학생 사역을 하며 아프간에서 SOS 이메일이 올 때마다 구제품 모집에 직접 발로 뛰었던 부인 정민선전도사는 "1년 동안 남편이 아프간에 파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교사로 파송하신 것 같았다"면서 "하나님이 아프간을 너무 사랑하시는 것 같다. '서우석'이라는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서 시민권을 갖게 하시고 낮은 자리까지 훈련시켜 아프간으로 파병하기까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놀랍다"고 했다.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던 꿈,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었던 꿈, 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구제하고 싶었던 꿈이 모두 산산조각났지만, 그는 지금 행복하다. 3∼4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힘펀드와 뜻을 함께 하고 있고 새로운 꿈에 이끌려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원래는 한국에 오지 않고 독일로 가려 했어요. 의사가 되지도 못했고 큰 사업을 이루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친척, 친구와도 연을 끊고 살았는데 하나님은 사명을 주셨고 다시 돌아오게 하셨죠. 지금도 아프간에서 매주 사진을 보내옵니다. 하나 하나 다 스토리가 있고 제 삶과 사명, 사랑이 담겨 있어요." 힘펀드는 아프가니스탄과 한국 내 비영리법인 설립, 현지 50개의 직업학교 건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50개의 학교를 짓는 데는 20억원의 돈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감동이다. 제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을 조금만 나눠서 가져주시면 좋겠다"며 그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같이 이룹시다."

 

[취재후기]

"힘펀드 주니어도 만들고파" 기적 이어가는 고등학생도
 
힘펀드의 취재는 한 장의 주차권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열린 개그맨 출신 김정식목사의 북콘서트 취재를 마치고 주차권을 받기 위해 들어간 홍보마케팅실에서 힘펀드 자원봉사자인 조태양집사(푸른우리교회)를 만났고 제보를 받았다. 그 또한 좋은씨앗의 CCM 콘서트에서 우연히 서우석선교사의 사역을 알게 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눅 9:13)"는 성경말씀이 계속 맴돌아 힘펀드 홍보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이 어떤 곳인가. 한국교회에는 트라우마가 있는 땅이고 순교의 피가 뿌려진 땅이기도 하다. 90%의 여성이 문맹이고 월 평균 수입이 30불, 대부분의 물품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운동화 한켤레가 5∼10불인 나라. 모 일간지에서 기사를 보고 "힘펀드 주니어를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온 고등학생도 있었다. 유니세프 한국 총재를 꿈꾸는 김예은학생(수원 화홍고등학교 전교회장)이 그 주인공. 우연으로 시작된 인연이 기적으로 이어지는 현장,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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