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기적 넘치는 탈북 청소년들의 희망 발전소 '여명학교'

언제나 기적 넘치는 탈북 청소년들의 희망 발전소 '여명학교'

[ 아름다운세상 ] 탈북청소년 희망발전소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2년 11월 09일(금) 10:46
"'통일나무'로 자라는 우리들 잘 지켜봐주세요"

   

서울 중구 남산동2가 49-25번지에는 특별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통일 시대의 주역이 될 '통일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지난 8년간 사랑을 영양분으로, 관심을 수분으로 섭취하며 한 뼘씩 성장해왔다. 그리고 지난 2일 세종대학교 대양홀, 제8회 여명의 날에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사람들 앞에 섰다. "우리는 통일나무 입니다"를 주제로 열린 여명학교의 후원의 밤, 이날만큼은 '북한이탈 청소년'이란 수식어를 잊고 통일나무가 됐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지난 2002년 대림동의 6평 남짓 방에서 시작됐다. 2004년 9월 개교(초대 교장 우기섭), 2005년 2월 5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고 그해 6월 통일부로부터 사단법인 여명(현 이사장:강경민)으로 인가받은 데 이어 지난 2010년 3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학력 인정 대안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배출된 졸업생은 95명. 95그루의 통일나무가 사회 곳곳에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다. 지난 2일 감사기도로 후원의 밤 시작을 알린 이흥훈 2대 교장은 "정성껏 물을 주는 여러분들의 후원으로 통일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통일이 되면 우리 아이들이 각 영역에서 낙후된 북한의 시스템을 바꾸고 복음을 전할 것"이라며 "우리 아이들이 보석 같은 기적이 되기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빵! 빵! 빵!" 커다란 스크린 영상 뒤로 몇차례 총소리가 울리는가 하더니 CCD 워십 버전으로 편곡된 '시온으로 인도하는'과 함께 이날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등장했다. 방금 전까지 무대 뒤에서 긴장 속에 동작을 맞춰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학생들은 절제있는 안무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연습한 기량을 맘껏 뽐냈다. 9백석 규모에서 2천석으로 장소가 갑자기 변경되면서 전날 밤까지 전전긍긍 해야 했던 교사들도 비로소 안심을 하는 기색이었다. 1천5백여 명이 1, 2층 객석을 메웠다.
 
   
매년 여명학교 후원의 밤에 참석하고 있는 탤런트 차인표씨는 이날 행사의 단독 MC였다. 영화 크로싱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중지 촉구 캠페인을 펼치는 등 탈북 청소년들에게는 '삼촌'처럼 친근한 존재인 그는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보배야. 고맙다." 노안(老眼)이 왔다며 무대 위에서 돋보기를 요청하는 등 위트 넘치는 진행으로 시종일관 분위기를 이끈 차 씨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의 씨앗'을 심으신 줄로 믿는다. 우리 모두 동역자들"이라며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여명학교를 후원하며 학생들에게 논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지성작가('꿈꾸는다락방'의 저자)는 여명학교에 대한 책을 집필 중에 있다고 귀띔하며 후원을 독려했다. 실제 여명학교의 운영은 대부분이 후원을 통해서 이뤄진다.
 
"북한은 제게 그립지만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한동대에서 국제지역학과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한 졸업생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스피치를 통해 "기도하면서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며 "일단은 국제NGO에서 일하며 아프리카, 남미 어디가 됐든 돕고 싶다. 1억을 버는 것보다 1명을 살리는 것이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명학교의 교훈은 '회복, 이해, 사랑'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학생들은 호스피스, 장애우, 농활 등 꾸준히 봉사활동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고 사회복지, 간호사, 선교 등 '남을 돕는 일'을 꿈꾸고 있다.
 
4년째 체육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황희건교사(빛과소금교회)는 "학교에서 모든 시작은 '미라클'을 3번 외치는 것으로 한다. 아이들이 남한으로 넘어온 것도 기적이고 후원의 밤을 준비하면서도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 남들이 볼 때는 쉬워 보이겠지만 생소한 음악을 배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전하는 한편 "외톨이로 고립돼있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특별한 아이들을 만나게 된 우리들이 행운아"라며 '짐'이 아닌 '동반자'로 탈북 청소년들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가끔은 '차라리 북한으로 다시 가고 싶다는 아이들을 보면서 누구의 책임일까?'를 고민하게 된다는 그의 말이 가슴 한 켠을 묵직하게 눌렀다.
 
물론 처음부터 학생들과 교사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것은 아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문화차이로 인한 시행착오를 무진 겪어야 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이렇게 내버려 두셨나?'라고 신앙에 반감을 갖는 아이들도 있었다(여명학교는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지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개교부터 학생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조명숙교감은 "아이들이 우리에게 기대면 그 무게감이 그대로 느껴져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아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면서 미워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운동화가 낡았다고 이틀 동안 노동일을 하면서 신발을 선물해주는 아이들이에요. 지난번 스승의 날에는 세족식도 해줬구요. 남한 아이 백명과 우리 아이 한 명을 안바꿀 거에요."

[취재후기]

후원의 밤이 끝나고 나흘 뒤인 지난 6일 여명학교의 한 교사와 통화를 하게 됐다. 저녁 8시, 수화기 너머로 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아직 학교에 계신가봐요?" "네,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표시도 해야 하고 방금 아이들 저녁 먹였어요. 김치볶음밥을 준비했는데 맛이 괜찮았을지 모르겠네요. 하하." 지난해 결혼해 이제 막 아빠가 됐다는 교사의 김치볶음밥 솜씨가 무척 궁금해졌다.
 
조명숙교감(남서울은혜교회)은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내용 중에는 후원의 밤 마지막 순서이자 하이라이트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 얽힌 에피소드도 포함돼 있었다. 두 학생이 1년간 배우며 준비했음에도 첫 리드 부분인 해금 연주의 화음이 맞지 않으면서 해금 특유의 소리가 웃음을 유발했던 것. 분명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지켜보는 누구 하나 소리내어 웃는 이가 없었고 오히려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었다. 조 교감은 "깽깽거리는 연주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 목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데 참 감동스러웠다. 역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음씨가 좋았다"며 "민망해서 퇴장하는 두 아이에게 '걱정마 너희들이 제일 감동이었어!'라고 말해줬다"고 무대 뒤 후기를 들려줬다.
 
"정말이세요? 우리가 잘했어요?" "OO아, 오늘 이 음악회를 평생 기억할 수 있도록 미소짓게 해준 것은 너희 둘이란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너희들이 대견하고 이쁘시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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