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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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정서 불안 극복하고 개인전 연 작가 안준현 씨와 아버지 안재웅박사의 가족 이야기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12월 09일(금) 15:20

서울 중구 충무로2가에 위치한 갤러리브레송에서는 지난 11월 28~12월 10일 안준현작가(37세)의 기획전시회가 열렸다.
 

   
▲ Boston_ 30.5×22.5cm 종이에 연필,크레용 1988(안준현 작가 13살 때 작품)
안준현작가는 8절 스케치북에 연필과 칼라펜으로 얼굴,손,식물,새,말과 기하학적 문양 등의 소재를 활용,그림 속에 시적 감성을 표현해내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안준현작가는 단 한번도 정식 미술 수업을 받지 않았다는 것. 더군다나 그림을 그릴 때는 수정을 하지 않고 한번에 완벽한 그림을 그려낸다고 한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번 전시 작품은 준현씨가 13살부터 25살까지 그렸던 그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은 전시작품들이 그의 어린 시절 작품이라고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만큼 완성도가 뛰어나고 작품마다 가의 천재성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재적인 재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했던 아버지의 투옥과 연행 등으로 암울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안 작가는 말문을 닫고 침묵으로 긴 세월을 살기도 했다. 지금도 그의 부모는 안 작가를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보통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또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의 삶을 알아야 했다.
 
# 에큐메니칼 운동에 헌신한 안재웅박사의 아들

안 작가의 아버지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의 전 총무 안재웅박사다. 안재웅박사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기독교학생운동을 시작해 민주화운동을 위해 삶을 바쳤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한다는 것은 고난과 핍박의 길을 걷는다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기독학생운동에 뛰어든 안재웅박사는 1973년 결혼 3개월만에 긴급구속을 당한 이후 수차례 감옥과 집을 오가야 했다. 집에는 형사가 수시로 들이닥쳤으며,국경일에는 감시 차원에서 형사가 집에 들어와 자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집안 분위기는 항상 우울했다. 특히 아버지의 투옥과 연행은 예민했던 준현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얀 백지와도 같은 상태에서 받은 충격과 상처는 깊고 오래갔다.
 
심한 정서불안으로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그를 일반 학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다행히 1년 늦은 9살에 학교에 입학했지만 3학년 1학기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학교가서 한 행동은 종합장에 점을 찍고(1학년),수많은 직선을 긋고(2학년),끝도 없이 많은 동그라미를 그린 것(3학년)뿐이었다. 이러한 준현을 보며 부모도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채기는 커녕 자기 이름이라도 쓸 줄 아는지 조차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어머니 이경애여사는 수많은 점,직선,동그라미 속에 'ㄱ','ㄴ','ㄷ' 같은 문자 모양을 확인하려고 수도 없이 들여다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작은 소망마저도 가질 수 없었다.
 
부모들은 이러한 아들을 바라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러나 준현이 13세가 되던 해. 그가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부모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잘 그린 정도가 아니라 굉장한 수준에 도달해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글도 모르는 줄 알았던 아들이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완벽한 문장이었고,또 시의 본질을 꿰뚫은 글이었다. 부모는 그날 시와 그림을 부여잡고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천재성이 확인된 것은 아버지 안재웅박사가 하버드대학에서 유학을 하기위해 미국에서 거주할 때의 일이었다. 때마침 부부는 메사츄세츠주립대 은퇴교수인 크리스틴 크리스 박사에게 준현을 소개했다. 크리스틴 박사는 준현에게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포토그래픽 메모리'란 한번 본 것은 많은 시간이 흘러도 사진을 찍은 것처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크리스틴박사는 개인수업을 통해 그에게 영어와 수학,생물,지리 등을 가르쳤다. 그가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도 거의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그런 그는 시작(詩作) 능력도 인정받아 1995년 '노란 풍선(삼신각)'을 펴내고,2001년에는 월간 시전문지 '심상'에서 시인 박동규교수의 추천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기도 했다.
 
그의 시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응교시인은 "준현의 삶에 대한 전이해 없이 시를 읽었을 때는 형편없이 보이고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고등교육의 무게를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장난 어린 시냇물 사이에 소롯이 피어난 제비꽃마냥 소중한 시구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세 식구
 
기자가 전시회를 방문한 지난 7일. 안재웅박사와 부인 이경애여사,그리고 아들 안준현씨는 함께 모여 다정히 담소를 나눴다. 차남 문현 씨는 미국에서 가정을 이뤄 살고 있어 함께 하지 못했다. 안재웅박사는 대화 중 여러차례 아들 준현씨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이경애여사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경애여사는 "젊었을 때는 남편이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못해 가족끼리 저녁 한끼 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소중한 추억을 많이 못 만들었고,평범한 사람들과 많이 다른 아들을 보며 힘들어 했었다"며 "지금은 비록 우리 부부가 나이는 들었지만 가족끼리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아들을 이해하고,앞으로도 더 많은 달란트를 펼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그 어느 때보다 큰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 좌로부터 안재웅박사, 안준현 작가, 모친 이경애 여사.
 
'시대의 아픔'이 '가정의 아픔'으로 전이되어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아들과 부모. 그러나 그 아픔은 신앙 속에서,그리고 가족애 속에서 행복의 진주로 변화되고 있다.
 

<그냥 들어오세요>
                           안준현
그냥 들어오세요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늘 당신을 사랑하는데
왜 눈을 감으십니까?
지금 눈물이 납니다.
잃어버렸던 당신을
또다시 잃기 싫습니다.
그냥 들어오세요
갑자기 어디로 가십니까?
먼저 가시면 어떡합니까?
우리는 당신을 보내기가 아쉽습니다.
아쉬움만 남겨놓고
가시지 마세요
너무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그냥 들어오세요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 2001년  시 전문지 '심상'을 통해 등단한 안준현씨의 처녀작. 안 작가는 '노란풍선'이란 시집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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