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나님 뜻 찾던 그 사람,온 몸 다주고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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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천사 의사','아빠 의사'였던 故 박준철집사,인체 기증으로 1백50명에게 새 삶 선사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11년 11월 21일(월) 16:30
   
▲ 평생 어렵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준 故 박준철집사.
"남편은 수술 할 때도 환자 손을 잡고 기도하던 신실한 의사였어요…그의 곧은 신앙관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사랑을 실천한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난 달 7일,환자 1백50명에게 피부,뼈,혈관,판막 등 신체 조직 모든 것을 내주며 마지막까지 세상을 향한 '소금과 빛'의 삶을 실천한 외과전문의 故 박준철집사(김포하나성심병원)의 가슴 뭉클한 사연이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돈벌이보다는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 그게 의사의 보람이고 자부심이다"고 습관처럼 말 했던 의사. 환자와 동료 의료진들에게는 '천사 의사','아빠 의사'로 통했으며,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의료선교에 열정적인 섬김이로 기억된 박 집사는 시신조차 온전하지 않은 채 그렇게 딸 혜진(20)과 아들 예찬(9세),부인 송미경집사 곁을 먼저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다.

그의 나이 마흔 다섯. 어렵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며 살기를 평생 보람으로 여긴 박 집사의 인체 조직은 모두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인체조직기증 지원본부에 기증됐고,국내에서 의사가 인체조직을 기증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인체조직은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피부,뼈,연골,인대,혈관,심장판막 등을 말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적출 후 봉합이 가능한 장기기증과 달리 신체가 훼손된다는 거부감이 퍼져 있어 기증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두 자녀 때문에 남편을 먼저 떠난 보낸 아픔까지도 삼켜야 했지만,기자 앞에서 뺨 위로 뜨겁게 달아오른 슬픈 물방울마저는 가로 막지 못했던 송미경집사는 다시 한 번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남편 故 박준철의사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남편이 고혈압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해외 의료선교를 계획했기에 특별히 식이요법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병원 직원들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다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으로…." 더 이상 말끝을 잇지 못한 송 집사는 병원 영안실에서 남편의 사망을 확인했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을 때쯤 어디서 누군가가 내던진 "인체기증 할 의사 없냐"는 질문이 송 집사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조차 확인할 수 없는 정신없는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인체기증'이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는 시부모에게 곧바로 전화를 했다. 남편이 사망선고를 받은 지 채 5분이 안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황망한 상황 속에서도 고인의 생전 뜻을 받들어 인체 조직 기증을 결정했다.

송 집사는 "남편은 늘 우리가 죽어 천국에 가면 육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 죽게 되면 함께 인체를 기증하자고 말했다"며 "하나님께서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예비해 놓으신 시나리오대로 우리는 행할 뿐이고,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박 집사의 인체조직 기증을 통해 1백50명의 환자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힌 인체기증원측은 "현재 국내 78%의 인체조직을 수입에 의존할 만큼 기증률이 저조하다"며 "이번 박준철의사의 첫 인체기증은 국내 기증문화를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았던 박 집사의 나눔 실천이 더욱 빛나는 까닭은 그가 생존당시 펼쳤던 섬김의 실천적 삶의 자세와 평소 생활습관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부터이다.

박 집사는 해외의료봉사를 언제 떠나고,하나님께 어떻게 쓰임 받을지 모른다는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에 18평도 채 안 되는 월세 주공아파트에 보금자리를 잡아 최소한의 살림만으로 생활하는 검소한 가장이었다.

   
▲ 2009년 서아프리카 베넹지역을 방문하고 난후 지역 어린이들과 함께.

또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아프리카 해외의료봉사에서 만난 아이들과 사람들을 위해 점심을 금식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전문의였다고 병원관계자들은 전했다.

특히 그의 의료봉사는 2002년,경남 창원에서의 첫 개원의 시절부터 시작됐다. 병원 운영이 어려워 경제적 위기가 닥쳤지만 교회 의료봉사팀에 참여해 국내외 의료봉사를 꾸준히 실천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주 지역 요양원과 복지기관을 순회하고,필리핀 아프리카 등에서 해외의료봉사를 펼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이에 대해 송 집사는 "남편 박 집사는 생전에도 의사의 신분을 내려놓고 겸손하면서도 진지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해 고민했다"며 "아프리카에서 진행된 예수전도단 제자학교와 머시쉽(Mercy Ship)에 승선하여 외과 의사로서 수술을 집도하며 아프리카 의료선교사에 대한 큰 꿈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2009년 의료봉사선 머시쉽에 먼저 승선한 박 집사는 올해 온 가족이 의료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머시쉽 승선을 준비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어 남편의 신앙관에 대해 입을 연 송 집사는 "남편의 중심은 늘 하나님이었다. 늘 하나님의 뜻을 찾는 예배자였다"며 "가정에서는 신앙의 헬퍼로 가족들을 이끌었고,병원에서는 천사의사로,봉사현장에서는 아빠의사로 환자와 이웃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 우리의 영원한 헬퍼 박준철집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가난과 질병,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땅에서 병든 몸을 치료하고,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으며,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내 던져 그들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故 박준철의사.

마지막까지 신앙 안에서 곧았던 그의 실천적 삶의 향기가 이 세상속에 아름다운 향기로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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