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리신 순교의 피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흘리신 순교의 피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 아름다운세상 ] 조석훈목사 순교 61주년 맞아 후손들 기념 음악예배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1년 11월 11일(금) 16:28
   
▲ 고 조석훈목사
"예수 믿는다고 만사형통합니까? 예수 믿는다고 핍박이 없습니까, 죽음이 없습니까. 아버지는 예수 믿을 뿐만 아니라 목사님이셨는데 믿지 않는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늘 그러나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자손들이 순교의 열매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6일 남대문교회. 故 조석훈목사(1905~1950)의 순교 61주년을 맞이해 열린 음악예배에서 차분히 말을 이어가던 3남 조영택목사(밴쿠버갈릴리교회 원로, 75세)가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회중을 향해 있기 보다는 순교자의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노라는 다짐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찬양하리.” 88세 고령인 조선희사모(1녀)의 하모니카 연주에 이어 예배당 가득 아름다운 선율의 찬양이 울려퍼졌다.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후손들이나 회중 모두 얼굴에 결연함이 묻어났다. 단 한 사람, 호흡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가까스로 하모니카 연주를 끝마친 조 씨만이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느라, 아니 더 참아내느라 연신 눈물을 훔치는 중이었다.

   
▲ 1녀 조선희사모(88세)가 아버지를 추억하며 찬송 '주 안에 있는 나에게(370장)'를 하모니카로 연주하고 있다. 옆은 3녀 조송산전도사.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떤 경우라도 늘 참으라 참으라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마음 속으로 참을 인(忍)자를 써서 벽에 다 채우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어요." 3녀 조송산 전도사가 기억하는 어머니 전영경사모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남한에 정착, 순교한 남편의 몫까지 7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 어느 때건 부를 때마다 가슴이 메어오는 그 곡조 앞에서 딸은 다시 한 번 참을 인(忍)을 써야 했다.

7남매 중 막내로 조석훈목사가 순교할 당시 9세 소년이었던 조유택목사(남대문교회 원로, 70세)는 지금도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어머니의 기도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저희 어머니는 범사에 감사하며 사셨고 항상 찬송 부르시는 것을 즐겨하시고 자손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도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합니다. 아버지가 순회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 저희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와 함께 목회 현장에 가시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복음 전하고 어머니는 7남매를 키우고 가르치고 농사를 지으며 사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식구들을 두고 순교하신 이후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너무 힘들고 부끄러운 삶을 많이 살았지만 이제는 정말 아버지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으셨음을 보게 됩니다." 조유택목사에 이어 조영택목사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팔에는 당시 부친의 시체를 찾으러 갔다가 공산당에 의해 총에 맞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더 이상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상처다. 아픔은 승화됐고, 순교의 씨앗이 풍성하게 열매맺게 하심을 찬양한 이날의 예배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 3남 조영택목사(밴쿠버갈릴리교회 원로,맨우측),4남 조유택목사(남대문교회 원로,맨 좌측) 등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故 조석훈목사의 자녀들.

1978년 전영경사모의 장례식 이후, 이날 후손들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미국, 캐나다, 한국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던 까닭이다. 올해초 조선옥 전도사(2녀)의 장례식 때 나온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이날 음악예배는 남대문교회 호산나찬양대와 2, 3, 4대 후손들이 함께 조진모교수(합동신대원 역사학과)가 할아버지를 위해 작곡한 추모곡 '순교의 열매(작사:조은아)'를 부르며 막을 내렸다. 노래는 끝이 났지만 직계 가족 뿐 아니라 친지, 옛 신앙의 동지들까지,반가운 얼굴들 사이 인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지난 6일 남대문교회에서 열린 조석훈목사 순교 기념 음악회. 조 목사를 추모하며 후손들과 동 교회 호산나찬양대가 함께 찬양했다.

순교 직전 조석훈목사에게서 마지막으로 세례를 받았던 장원모목사(인천중앙교회 원로)는 이날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추모사를 읽어내려갔다. "목사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1950년 6ㆍ25 동란이 일어나기 직전 토요일 오후 늦게 목사님 댁을 방문했던 당시 고등학생 장원모입니다. 목사님, 누리교회 교인들이 목사님의 신변이 위태하다는 것을 알고 피신을 권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에게 피하라 권하시고 왜 목사님은 피하지 않으시고 끝내 순교의 피를 흘려야 했습니까. 순교는 저희들에게 가슴 아픈 일이었으나 목사님이 순교하여 흘린 거룩한 피는 이 땅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가슴 아픈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을 다시 뵈올 때까지 저희들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60여 년 전 어느 날, 순교의 피는 뿌려졌고 2, 3대를 지나 지금 이 순간에도 후손들의 삶 속에서 계속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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