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은 잃었지만,영의 눈 떴습니다"

"시력은 잃었지만,영의 눈 떴습니다"

[ 아름다운세상 ] 세계적인 화학자 이수민 명예교수의 삶과 신앙이야기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1년 11월 04일(금) 16:49

   
                             ▲ 이수민 명예교수.
"녹내장 말기입니다. 아무래도 시력을 회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1982년 당시 37세였던 젊은 화학자가 갑자기 눈이 뿌연 증세로 안과를 찾았다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의사는 그의 눈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34세에 고려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5세에 모교인 한남대 교수로 학과장이 되고, 36세에 장로 장립을 받고, 37세에 국비 해외파견 과학자로 선발돼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었다. 인생이 순탄했다. 그러나 미국 비자를 기다리던 그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한남대 생명나노과학대학 학장을 지낸 이수민 명예교수(태평성결교회 장로)의 스토리다. 이 교수는 세계 3대 인명사전중 하나인 미국 인명정보기관(ABI)의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된 세계적인 화학자다.

이 교수를 한남대 대덕밸리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퇴임 후에도 일주일에 두 차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인사를 나눈 후 중도실명 당시 상황을 물었다. 아픈 기억을 떠올렸을 그지만 담담하고 차분하게 회상했다.

"어느 순간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것... 굉장한 충격이었죠. 그저 입에서는 '주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는 말만 나왔어요."

병원 진단 후 이 교수는 국내 병원을 돌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했지만 허사였고, 일단 예정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세계 최고의 안과의사를 만나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으나 오히려 희미하게 보이던 것마저도 아예 암흑이 돼버렸다.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는 나날이 늘었다. 절망의 늪에 빠지자 신앙은 온데간데 없었다. 성경을 읽기도 싫었고, 부인 김군자권사의 손에 이끌려 주일예배는 참석했지만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교수는 "시력을 완전히 잃으면서 식사도 거르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원망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정년퇴임 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이수민장로. 역경을 극복한 이 장로의 삶은 제자들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어준다.
우울 증세가 더해지며 '자살'을 생각했다. 죽음을 실행에 옮기려던 전날 밤, 마치 귀에다 누군가 얘기한 것처럼 생생한 음성이 들렸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이었다.

이 교수는 "나도 모르게 말씀을 따라하자 마음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어둠이 사라졌다"며 "회개부터 했다. '하나님은 확실히 살아계시며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마음을 추스른 후 고분자화학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메사추세츠대학교의 화학과 연구교수로 들어갔다. 교수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기록할 수 없어 녹음을 했다.

전공 서적은 부인 김군자권사가 읽어 녹음을 했다. 이 교수는 이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학습이었지만, 신앙을 통한 긍정의 힘이 이를 지탱하는 기둥이 됐다.

학생 강의는 대부분 세미나로 진행한 후 실험을 했다. 강의 내용은 통째로 암기해 그대로 전했다. 이 교수는 이마저도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시력이 나빠지니 암기력이 월등히 늘었다"며 웃어보였다.

이후 보스톤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준비하다 비자 문제로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한남대 교수직에 복귀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의는 줄줄이 외워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원생을 받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영어성경을 가르치면서 전도를 했다. 제자들에게 이 교수는 멘토였다. 자상함이 몸에 배있는 이 교수에게 제자들은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이 교수는 성경말씀을 인용해 제자들을 다독였다.

이 교수는 제자들에 대해, "늘 빚진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제자들의 도움 없이는 교수 생활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학교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사회가 매입한 대덕연구단지 부지에 생명나노과학대학을 이전시키는데 앞장서 결국 대덕밸리 캠퍼스가 조성됐다.

이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명예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한남장학회 이사장을 맡아 장학금 모금운동을 하며, 매주 월요일마다 KBS 제3라디오 '우리는 한가족' 프로그램의 '이수민의 해피 먼데이'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퇴임에 맞춰 전기를 출간했는데, 그 수익금으로 선교사 자녀들을 돕고 있기도 하다.

"시력은 잃었지만 영적인 눈을 떴다고 생각해요. 사도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한다'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도 저는 약한 것(실명)을 기뻐하고 자랑하며 살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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