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현장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느끼죠"

"사역 현장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느끼죠"

[ 아름다운세상 ] 월드비전 해외사업본부 이명신본부장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1년 10월 11일(화) 19:58
   
▲ 사역현장에서 아동과 함께 한 이명신본부장.

월드비전에 해외사업팀장으로 재입사한 이명신권사는 지난 2000년 솔로몬군도로 출장길에 올랐다. 내륙에 길이 없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4인승 쪽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 배가 출발한 지 얼마가 지났을까 갑자기 큰 비가 몰아쳤다. 남태평양 한 가운데 4인승 쪽배는 산처럼 높은 파도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위태롭게 출렁이고 있었다. 쪽배에는 손잡이도 없었다. 비와 진땀으로 젖은 채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이 본부장은 부르짖었다. "하나님 저를 주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시겠다고 해놓고 사용하시지도 않고 이곳에 수장시키실겁니까?"
 
배는 겨우겨우 섬에 닿았다. 섬에 도착해 가슴까지 차오른 개울을 건너는데 갑자기 큰 물살이 그녀를 휩쓸고 지나갔다.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던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구조됐다. 그 때 그녀는 깨달았다. "아! 이 일은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거구나!"
 
한국 월드비전 해외사업본부장 이명신권사(대현교회)는 월드비전이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국제구호개발 NGO로 성장하는 가운데 사역의 밑바닥 현장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헌신해 온 우리나라 기독교 NGO계의 산 증인이다.
 
비록 인터뷰 섭외를 위한 전화통화에서도 그녀는 "내세울 것이 없고, 기관 내에도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다"는 이유로 여러번 사양의 뜻을 밝혔지만 그녀를 아는 많은 이들은 '하나님 한분만을 보고 나아가는' 천상 사역자라고 평가한다.

 

# "어려운 이 섬기는 일이 천직"

 

그녀가 한국월드비전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4년 가을이었다.
 
졸업반이던 그녀가 수학하던 연세대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어느날 한국선명회(현 한국월드비전)로부터 직원 한 명을 추천해달라는 공문 한 장이 도착했다.
 
"빈민지역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졸업반 학생 중 남성을 추천해주십시오."
 
교수들은 논의 끝에 당시 4학년 학생 한 명을 천거했다. 그게 바로 이명신 본부장이었다. 교수들은 추천을 하며 월드비전측에 이러한 말을 덧붙였다. "이 학생은 비록 여성이지만 분명히 남학생 10명 이상의 몫을 할 사람입니다."
 
이명신 해외사업본부장은 한국월드비전의 '공개 채용 1호', '사회복지사 채용 1호'로 1984년 10월 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첫 보직은 서울 봉천동의 빈민지역 가정개발사업장 사무장. 당시 봉천동은 전형적인 달동네로 도시빈민들이 밀집해 하루 하루 끼니를 감당하기도 힘든 삶을 살던 곳이었다. 이 본부장은 지역사회개발사업과 함께 도시 빈민지역의 영세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달동네를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이들을 돌보고 보듬었다.
 
가정개발사업 프로젝트 기간(5년)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다. 경사진 길을 너무 오르내려 무릎 관절에 이상이 오고 봉천동 빈민들을 섬기기 위해 결혼까지 뒤로 미룰 정도였다(결국 이 본부장은 결혼을 포기해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다.). 그녀는 이 기간을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봉사한 시기였다고 회고한다.

 

   
▲ 잠비아 사업장 방문.

# 오직 주님만 두려워

 

봉천동 빈민지역 가정개발사업이 끝난 후에 이 본부장은 본부로 들어가 모금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
타국에서 진행중인 저금통 모금을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시켜 우리나라 NGO 모금 중 역대 최고의 히트 상품인 '사랑의 빵'을 제작, 보급시켰다. 또한, 청소년들의 기아체험 프로그램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기아체험 24시' 기획안을 만들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녀였기 때문에 새롭고 특별한 결과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는 새로운 선택을 하기로 했다. 사표를 내고 미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난 것. 이 본부장은 이곳에서 상담학을 공부했다. 틈틈히 방송국의 리포터로 일하기도 하고 현지 선교사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도 했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몸도 마음도 지칠데로 지쳐있는 상태였다고. 그녀는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광야 생활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쳐 쓰러져 있던 엘리야를 회복시키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던 것처럼 지치고 상처받은 그녀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녀를 아끼는 감리교 본부의 목사가 찾아와 기도와 말씀을 나누며 집회를 가졌다. 그녀와 그녀가 돌보던 4명의 아이들이 집회 참석자였다. 그녀는 이때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체험을 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앙생활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고백한다. "하루에 회개기도만 4시간씩 했다"는 그녀는 "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내 삶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 역사 속에 계획하신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참 신앙인의 자세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체험을 한 후 그녀는 새롭게 사명을 확인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비록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너무 행복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신권사는 해외사업팀장으로 7년만에 월드비전에 재입사했다. 이후 그녀는 동해복지관장, 춘천복지관장 겸 강원도지부장을 역임했고, 해외사업본부가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4년 9개월여간 본부장직을 감당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월드비전의 사역의 중심에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하나님께서 군사로 사용하실 수 있는 직원을 선별하고, 이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그리고 이들이 밟는 땅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가 증거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능력도 실력도 부족한 나를 해외사업본부장의 귀한 자리에 앉히신 이유"라며 "많은 이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찾아주는 월드비전의 사역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동참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한국교회에 호소했다.

 

*높은 분들? 나에게 높은 분은 오직 '하나님'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명신 월드비전 해외사업본부장을 검색하다보면 'NGO계 수다맨 국회 상륙'이라는 2009년도의 영상이 검색된다.
 
이 영상은 10월 2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이명신 본부장의 속사포 같은 발언을 편집해 놓은 것으로 해외원조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다. 이 자리에서 이 본부장은 한국의 무상원조 중 NGO를 통한 지원이 너무 적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를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본부장은 그해 청와대에서도 신년 업무보고 토론자로 섭외되어 대통령 앞에서도 NGO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토로하기도 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NGO 사역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국내외 현장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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