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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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세상 ] 성산 장기려박사 탄생 1백주년, "참 의사가 그립습니다"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1년 08월 23일(화) 16:07
'영리병원' 도입이 8월 임시국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도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그만큼 널리 확산된 까닭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종국에는 의료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의료산업이 갖는 잠재력을 무시할 순 없지만 단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영화 '식코'에서처럼 돈없는 환자들이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이 실제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생전의 장기려박사. '돈없는 환자들'이라고 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바로 그 얼굴이다.

사실 '돈없는 환자들'이라고 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바로 성산(聖山) 장기려박사(1911~1995)다. 때마침 올해는 장기려박사의 탄생 1백돌을 맞는 해로 다양한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있던 참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직원들 몰래 도망가라고 뒷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던 그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지난 1968년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 났을 때 도움 받자'는 슬로건 하에 추후 우리나라 의료보험조합의 효시가 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든 것은 장기려박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정부에서 5백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시작한 것이 1977년, 실질적인 전국민 건강보험시대가 열린 것은 12년 뒤인 1989년이다).

"대단한거죠. 지금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보다 낫거든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3대째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손자 장여구교수(서울백병원)의 말이다. 지난 8일 백병원에서 만난 장여구교수는 '청십자의료보험'과 관련,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너무 남에게만 믿고 맡기지 말고 직접 챙기시는게 좋지 않냐"고 아버지를 종용했던 아들 장가용교수(서울의대 명예ㆍ2008년 사망)에게 장기려박사는 도리어 "너는 왜 그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냐"고 다그쳤다는 것이다.

   
▲ 지난 11-16일 장기려박사의 발자취를 좇아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펼친 이들. 수술 중인 사람이 손자  장여구교수다.
그렇게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아꼈던 장기려박사이지만 생전에 자신의 흉상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온 제자들에게는 "내 흉상을 만드는 자는 지옥에나 떨어져라"고 불호령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끝내 흉상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신대 복음병원에 가면 흉상동판이 있고 인제대학교 내 우웨이산 조소공원에도 장기려박사의 조각상이 있다.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지난 5월 부산과학기술협의회가 실시한 독후감 대회에서 고등학생 부문 장원을 차지한 정자영 양(부산 동여자고등학교 2학년)은 장기려박사와 같은 의사가 되길 꿈꾸며 이렇게 편지를 썼다. "장기려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삶에 큰 감명을 받은,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입니다. 요즘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그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모습을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저는 선생님처럼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종교를 뛰어넘어 의사를 한번도 못보고 죽어가는 이웃을 위해 활동하겠습니다."

장기려박사를 롤모델로 삼고 의사를 꿈꾸고 있는 것은 증손자 장지인 군(17세)도 마찬가지다. 차남 가용만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장기려박사는 북에 남겨둔 부인과 5남매를 평생 그리며 살았다. 그런 장기려박사에게 지인 군의 출생은 말년에 큰 기쁨이 됐다. 1995년 4월 30일, 지인 군이 태어난 그해 12월 25일 장기려박사는 생을 마감했다. 만약 외과의사 가운을 입은 증손자의 모습을 본다면 장기려박사는 무어라 말할까. "자기가 원한다면 해야죠." "한번도 외과의사로서 살아온 길 후회한 적이 없다"는 장여구교수는 그저 담담하다.

   
▲ 현재 장기려박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모란공원 묘지에 잠들어있다. 피난길에 동행했던 차남 가용이 곁에 잠들어있다.

오는 9월 28일 장기려박사의 제2의 고향인 부산에서는 장기려박사 탄생 1백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지난 4월 문화선교연구원(이사장:장경덕)에서 선보인 창작뮤지컬 '그 사람 바보의사 장기려'도 순회 공연 중에 있고 올해말에는 평전 '장기려를 말하다(가칭)'가 출간될 예정이다. 성산 장기려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백낙환)에서는 '장기려의 숨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장기려박사와 삶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다.

어쩌면 탄생 1백주년이라고 여러 기념행사를 갖는 것을 정작 본인은 달가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참 의사, 참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세태의 반영인 것을.

취재후기
    살아있는 사람을 취재하는 것과 달리 고인의 이름 앞에 서니 처음에는 조금 막연하게 느껴졌다. 먼저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고 장기려박사의 후손, 그의 발자취를 좇아 해외 의료봉사를 떠나는 의사들, 기념사업회 관계자를 만나고 나서 마지막으로 발걸음이 닿은 곳이 장기려박사가 잠들어있는 모란공원이다. 지난 15일 찾은 장기려박사의 무덤에는 고인의 유언대로 "주님을 섬기다 가신 분이 여기에 잠들다"라는 비문이 새겨져있었다.
 평생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다른 이산가족들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고 특권을 거부했던 장기려박사의 묘비에는 부인 김봉숙, 아들 택용 가용 인용, 딸 신용 성용 진용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손자 손녀들 이름까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아마도 천국에서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면 하는 열망이 아니었을까. 문득 고인이 지은 시 '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의 한구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나직히 읊조리던 장기려의 환한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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