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가정예배 ] 2024년 4월 2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인주 목사
2024년 04월 02일(화) 00:10

김인주 목사

▶본문 : 요한복음 9장 35~41절

▶찬송 : 366장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에 장애가 있던 사람을 만나자 예수님의 일행 가운데서 논쟁이 재연되었다. 그 장애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매우 심각한 질문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두 가지 답이 제안되었다. 신명기에서는 죄의 연대성이 강조되었다.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일이 일어나면,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성읍의 사람들이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조상들의 죄악은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이해하였다. 포로 시기를 거치면서 이는 매우 부담스러운 짐이 되었다. 그러자 선지자 에스겔은 개인의 책임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뿌리 깊은 논쟁에 대한 정답을 제자들은 듣기 원하였다.

이런 경우 예수님은 어느 한쪽을 택하여 답하지 않는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서로 자기편을 들어주기를 원하였는데, 주님은 어느 편도 배제하는 것을 피하셨다. 교묘한 질문으로 함정에 걸려들기를 바라면서 다가오던 사람들도 있는데, 답하는 것이 도리어 논쟁이 확산되는 발판이 될 뿐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잘못된 질문에 집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수님께서는 잘못되거나 부족한 질문을 진실한 질문으로 바꾸고, 현실을 바로 파악하는 시각을 갖도록 촉구하신다.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시자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란 게 문제였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당시 유대교에서는 철저히 단속하였다. 안식일에 이런 이적이 일어나니, 그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분명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고쳐준 사람은 율법을 어기고 있으니, 모순으로 보였다.

먼저, 예수님은 장애가 있던 사람을 고쳐주어 볼 수 있게 하신다. 한국교회는 역사에서 의로운 길을 선택하기도 하였으나, 현실을 외면하거나 중요 과제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흔아홉 양 떼를 두고서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가는 목자를 말하면서도, 다수의 편을 들고 그늘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가. 이제 주님의 마음과 시각을 회복하고 민족과 세계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한다. 약자들을 무시하고 강자들을 편드는 선택은 주님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 그 장애로부터 치유되어야 한다.

동시에 예수님은 경고하신다.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면, 죄의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편협한 시각으로 오해하거나 진실을 거부하는 역전이 일어난다.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장애를 스스로 안고 사는 세상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도 반복하여 일어난다.

우리 시대에 경험했던 많은 참사의 현장을 돌아보지 못하고, 희생자들의 아픔과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신앙인은 장애자로서 살아가는 셈이다. 단호한 태도로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서,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난 제대로 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으니, 오히려 죄가 그대로 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의 뜻을 밝히 깨닫게 하옵소서. 나의 부족하고 잘못된 판단이 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인주 목사/봉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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