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살아 있다

국경은 살아 있다

[ 땅끝편지 ] 멕시코 최남영 선교사편(5)

최남영 선교사
2024년 02월 23일(금) 10:14
한 교회의 청년 단기선교 모습.
현지인교회 가족찬양 모습.
국경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넘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힘이 언제나 팽팽하다. 철벽처럼 높이 솟은 녹슨 담장 가까이 서면 영락없는 감옥의 이쪽과 저쪽이다. 무심히 서 있는 철 담장 이쪽은 넘으려는 자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ALTO Guardian(국경수비 멈춰라)'라는 퇴색된 낙서 글씨들과 커다란 벽화들이 난무하게 그려져 있다. 국경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허락된 자들, 허락 없이 넘으려는 자들, 허락을 기다리는 자들, 살다가 추방당한 자들까지 모여들고 흩어지면서, 마치 커다란 개미집 구멍 주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4시간 변화무쌍하게 불철주야 움직임이 멈춰진 적이 없다. 2001년 뉴욕에서 9·11사태가 있던 날 아침, 노회 참석차 LA에 모인 목사들과 아침식사 중 모든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해외에서 오신 목사들의 출국 일정이 불투명해지자 모두가 난감 해졌다. 육로로 열린 길은 멕시코 티후아나 국경이 유일한데 거기도 언제 막힐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조건 국경 탈출을 감행했고, 그날 티후아나 선교센터에서 잠시 머물다가 티후아나 공항에서 각자 나라로 출국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때조차도 국경은 닫히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어느 날 국경 옆 길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물었더니 결혼식을 진행하는 중이란다. '아니 어떻게 이런 곳에서?' 평소에 오가며 국경 담장에 작은 쪽문이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 하는 두 남녀가 남자는 멕시코 쪽에 살고, 여자는 미국 쪽에 살면서 오갈 수 없는 사연에 국경이민 비영리단체가 나섰다. 국경경비대를 설득하고, 경비대원 입회 허락 하에 그날 담장 쪽문이 개방됐고, 아주 특별한 결혼식이 성사됐다. 첫날밤도 치루지 못한 슬픈 결혼식이지만 이 정도면 미담에 속한다. 국경 끝 미국 쪽에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 이쪽과 저쪽 사이에 철 담장을 앞에 두고 주말이면 오갈 수 없는 가족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얼굴은 마주 하지만 가슴으로 안을 수는 없고, 손만 붙잡으며 긴 인사를 나눈다. 가져 온 음식을 담장 틈새로 나누며,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는 풍경이 겉으로 정겹게 보이지만 속마음까지 과연 즐거울까?

국경 담장 끝 쪽 벽에는 수많은 나무 십자가들이 마치 공동묘지처럼 무질서하게 붙여져 있다. 가까이 보면 그 나무 십자가 마다 사람 이름이 쓰여 있다. 이쪽 태평양부터 저쪽 대서양까지 2500km의 긴 국경 담장을 넘어가다 죽은 사람 명단이다. 불법으로 넘지만 국경 수비대원에 불응하지 않는 한 총을 쏠 수 없는 게 법이다. 이를 피해 산 길로 가다 길을 잃고, 한 여름 애리조나 텍사스 쪽 국경 사막을 지나가다가, 국경 강을 넘다가 죽기도 한다. 그 숫자가 얼마인지 모른다. 다만 저 높은 담장에 빼곡히 걸린 나무 십자가들 만큼일 거라 상상해볼 뿐이다.

우리 선교센터 주변 동네는 '코요테(여우) 마을'로 유명하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의 브로커를 일컫는 말이다. 알고 찾는 사람들을 '뽀지또(병아리)'라 부르는 데, 그들은 길거리에 항상 서성거린다. 달빛이 없는 밤, 안개 자욱한 날이 적기다. 그때가 되면 코요테(여우)가 뽀지또(병아리)를 이끌고 국경 담장에 붙어서 일제히 뛰어 넘는다. 지금은 다 옛날 말이다. 트럼프 때 높은 담장으로 개조되고, 이중 철망에 곳곳마다 국경수비대 감시 차량, 카메라들까지 세워진 후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다.

막는 방식이 변한 것처럼 넘는 방식도 달라졌다. 땅굴 원조가 북한인 줄 알았다. 여기서 보니 국경 담장 밑 땅굴 역사가 더 오래 전 일이다. 땅굴 안에 철로까지 놓일 정도로 커다란 통로는 9m 높이의 담장 벽을 무력화한다. 온갖 마약, 불법상품, 총기류와 사람들까지 모든 걸 실어 나른다. 어떻게 그 길을 막는가? 가끔 굴이 발견되어 세상 뉴스 거리가 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땅굴을 파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도대체 저 국경너머엔 뭐가 있길래, 누가 저들을 기다리길래…. 오늘도 목숨조차 마다 않고 저토록 매달려야 하는가? 국경이 언제나 살아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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