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중과 울고 웃었던 기억, 행복으로 남아"

"한국 민중과 울고 웃었던 기억, 행복으로 남아"

WCC, 한국 민주주의 위해 노력한 독일인 루츠 드레셔 인터뷰 게재 눈길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01월 08일(월) 03:23
2001년 청와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는 루츠 드레셔 /사진 WCC(루츠 드레셔 제공)
루츠 드레셔. /한국기독공보 DB
최근 세계교회협의회(WCC)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EMS 소속의 루츠 드레셔(Lutz Drescher)에 대한 인터뷰를 홈페이지에 게재해 한국교회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87~1995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루츠 드레셔(Lutz Drescher 한국이름:도여수)는 1980년대 말 서울 노원구 중계동 등에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복음화와 인권을 위해 사역했다.

당시 중계동 양돈단지 내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에서 기독교빈민협의회와 함께 협력 사역을 펼쳤던 그는 한국의 민주화, 남북 평화 및 인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에큐메니칼 활동가다.

WCC와의 인터뷰에서 드레셔는 "내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들을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6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 교회의 날' 행사 때였다"며 "그 당시, 독일과 한국은 모두 분단국가였는데 만약 누군가가 우리에게 5개월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에서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미쳤다고 선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부터 기장 총회의 에큐메니칼 동역자로 활동한 그는 "당시 기도회를 작은 집에서 열어 성경을 읽고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울고 웃었다"고 회상하며 "한국 교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었고, 사람들과 삶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군사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한국 사회 변화의 목격자가 되어 감사하다"며 "당시 나는 외부의 정보를 내 주위의 사람에게 알리고, 한국의 정보는 외부에 알렸었다"고 회고했다. WCC는 그에 대해 한국 민중교회의 경계를 넘어 한국 교회와 민주주의 운동, 그리고 세계 무대를 연결하는 다리 건설자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했다.

1995년 독일로 돌아온 드레셔는 처음에는 자원봉사자로 한국의 문제를 연구하다가 2001년부터는 EMS 아시아 담당 책임자 겸 독일교회 동아시아 상임이사로서 조그련의 초청으로 북한을 네 차례 방문해 주민들의 삶을 살피고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 동아시아선교회(DOAM)의 명예의장으로서 2000년 도쿄와 2008년 서울에서 각각 '용서, 배상 및 폭력의 포기: 한국, 일본 및 독일의 진실, 화해 및 평화에 대한 교회의 책임', '평화와 인간 안보: 세계의 불안과 폭력 극복'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북한에도 사람들이 살고, 일상을 살고, 희망과 경험을 하고, 좌절을 느끼고, 웃고 우는 땅이라고 상상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 드레셔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글을 인용하며 "만약 우리가 사람들이 했거나 하지 않은 것에 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이 겪었던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더 쉬워진다. 우리의 마음 속에 연민과 사랑을 가지면 화해의 순례를 위한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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