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서사는 '노량'이 될 수 있을까

기독교 서사는 '노량'이 될 수 있을까

[ 기자수첩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4년 01월 08일(월) 03:17
얼마 전 '우리 동네' 초등학생들의 유행어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들었다.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이하 노량)'가 개봉 18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다.

영화 '노량'은 '명량', '한산:용의 출현'에 이은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이 동네 초등학생들의 유행어가 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유언을 남기게 된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을 그려냈다.

노량해전은 동아시아 최대 해전으로 임진왜란 7년 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두며 전쟁을 끝낸 전투다. 영화는 15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중에서 무려 100분을 전투신에 할애하며 처절하고 참혹했던 역사 속 전쟁을 현재로 끌어냈다.

앞선 두 작품을 보지 못한 까닭에 '호불호'가 갈리고 '뒷심부족'이라는 우려섞인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티켓 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 웅장하면서도 장엄한 전투신에 압도되다가도 인간 이순신의 깊은 외로움과 고뇌를 담아낸 꽉 찬 서사는 지루할 틈이 없다.

지난해 연말 기독문화기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한 해 기독 문화계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 한 출판 관계자는 "인간이 성장하고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사유를 해야 하고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시간을 들여서 어떤 형식을 습득하려는 노력 자체를 거부하는 시대다"고 분석했다.

1분 안팎의 짧은 숏폼 콘텐츠를 비롯해 숏츠, 릴스, 틱톡 등 강렬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가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긴 호흡의 영화를 가만히 감상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고, 길고 긴 기독교 서사를 담아낼 콘텐츠 생산은 더욱 막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라보기' '요약보기' '건너보기' 에 익숙한 지금의 시대가 141분(서울의 봄)에 열광하고 153분(노량)을 맞이했다. 탄탄한 서사에 제대로 된 메시지가 담겼을 때 '시간을 견뎌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 '노량'을 보고 인간 이순신 매력에 빠져 '난중일기'를 다시 읽고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면서 교실에서 배운 역사에 분개했다. 교회에서만 배운 '성경'에 한탄하며 통탄할 수 있는 '기독교 영화'는 나올 수 있을까.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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