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 박분임 전도사의 이야기

서른네 살, 박분임 전도사의 이야기

[ 선교여성과 교회 ] 전남지역 여전도회49

한국기독공보
2024년 01월 04일(목) 16:06
지난주에 시골에서 놀라운 시간을 경험했다. 우리 성경학교 여학생 두 명이 다른 교회에 다님에도 그곳에서 나를 만나 5일 간 성경반을 운영했다. 우리는 아침에 가르쳤고, 나와 전도부인이 심방을 나간 오후엔 여학생 한명이 청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찬송을 가르쳤다.

우리는 저녁 예배를 일찍 시작했다. 통행금지령 때문에 7시 30분까지는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두 여학생의 도움은 큰 힘이 됐다. 그들은 장차 훌륭한 전도부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젊은 집사의 집에 머물렀다. 그의 아내와 아기가 함께 있었다. 그 집은 그가 손수 지은 새집이다. 걸레로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 매우 깔끔했다.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푹 잤다. 예배를 마친 후 매일 밤 멀리서 온 분들이 철야를 하며 우리와 대화를 하고 찬송을 불렀는데 그야말로 영적 축제였다.

이 젊은 집사의 부친은 멀리서 와서 매일 밤 집에서 아기를 보며 며느리가 교회를 가도록 도왔다. 그는 회심한 성도였고 청소년 시절 유진 벨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핍박 때문에 40년간 교회에 다니지 못했다. 그는 귀도 난청이고 눈까지 나빠 성경을 읽을 수 없다. 나는 그에게 큰 글자로 된 성경책을 보냈다. 그가 안경을 쓰면 좋겠지만, 이곳에는 다초점 안경이 없다.

몇 주가 지난 후, 이분들이 급하게 전갈을 보내왔다. 우리 성경학교에서 가르치는 목사님 한 분이 그곳으로 내려가 집회를 인도했다. 그가 도착할 때까지 전도부인이 찬송을 인도했다. 38명의 새 신자와 예전에 믿다가 회심한 분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그 할아버지도 있었고, 또 다른 돌아온 탕자도 있었다. 이 교회는 전라남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조직교회였다. 목포에 첫 번째 교회를 세운 배유지(유진 벨) 선교사는 광주에서 살았던 최초의 선교사이기도 하다. 전도부인이 찬송을 가르쳤다.

그녀의 이름은 박분임이었다. 그녀는 우리 여성 성경학교(이일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1949년에 졸업했다. 졸업 전 그녀는 위에서 언급한 그 교회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러다 그녀가 졸업을 하게 되자, 우리는 그녀를 다른 마을에 파송해 교회를 개척하도록 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 교회에 있으면서 상당히 많은 사역을 하고 있다. 교인들이 교회를 건축하게 했고, 매 주일마다 예배도 지속적으로 드릴 수 있게 했다. 이 교회는 주변의 여러 마을까 지 담당하고 있다.

다음은 박분임, 서른네 살의 그녀가 살아온 삶이다.

그녀는 주일학교에서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녀의 나이 8살 때였다. 그녀는 집안에서 최초로 예수를 믿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계속해서 핍박했다. 아버지가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머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뽑아 댔지만, 그녀는 그것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 결국은 모든 가족을 회심시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현재 장로이다.

성인이 되어 그녀는 다른 동네에 살던 어느 장로 댁 아들과 결혼을 했다. 그들은 행복한 크리스찬 가정을 이루었다. 3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그들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런 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일제가 벌인 전쟁 중에 북한으로 갔다. 그곳에서 남편은 교회를 얼마 동안 다니지 않았다. 그는 돈을 차용해 이것저것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그녀는 아내만 그곳에 남겨 두고 본가로 돌아와 빚만 잔뜩 졌다. 그러던 중 병을 얻어 사망했다.

광복이 되자 박분임은 러시아가 장악한 북한 땅을 떠났다. 그녀는 전 재산을 처분해 빚부터 갚았다. 입고 있는 옷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친정아버지가 돈을 빌려줘 나머지 빛도 모두 청산했다. 그녀는 친정아버지에게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 위에 옷가지를 위시해서 여러 가지 물건을 이고 장마다 파는 박물장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빚을 모두 갚은 다음 우리 성경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녀는 그렇게 했고 졸업했다.

그녀는 이제 34세이다. 그녀는 매우 유능하며 인기도 많고 예쁜 여인이다. 그녀는 믿음이 대단하다. 그녀는 나에게 말하기를 친정아버지는 자기를 위해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3번씩 기도를 하며, 시아버지 또한 하루에 두번씩 기도를 하고 있다며,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주께서 자기를 소명하여 주신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1949년 1월 15일, 도마리아 선교사의 일기 속에서 실제 박분임 전도사는 1955년부터 광주 서석교회의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지도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