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도 밥은 잘 먹고 다녀"

[ 목양칼럼 ]

강명훈 목사
2023년 11월 08일(수) 11:41
2020년 여름, 유난히도 길었던 장마의 끝자락에 우리 교회는 무너진 섬진강 제방으로 강물이 온 마을을 덮치는 재난으로 인해 어른 키 높이의 강물이 교회당에 차오르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무엇 하나 온전한 것 없이, 물에 잠겨 쓰레기가 되어버린 교회당 안의 여러 기물들을 바라보며 암담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곤 장장 4개월 동안의 복구를 위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사택도 물에 잠긴 탓에 사택이 수리 될 때까지 한 달여 넘게 임시 대피소에서 바닥에 매트 하나 깔고 지내야 했다. 아침이면 교회로 출근, 복구 작업과 함께, 리모델링 작업을 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대피소로 돌아와 그나마 쉴 곳이 있음에 감사하며 지친 몸을 뉘었었다.

몸은 몸대로 지쳐갔고, 마음은 마음대로 어려웠다. 그런데 많은 선배 목사님들과 동기, 후배들의 격려 전화가 걸려왔는데 하나같이 마지막 인사말은 "밥 잘 먹고 다녀,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해, 몸 챙겨가면서 해" 이런 인사들이었다. 도대체 밥 먹는 게 이 상황 속에서 그렇게도 중요한 일일까 싶을 정도로 밥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밥 걱정 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내 가슴을 울렸다.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챙겨 먹고 다니겠건만, 그래도 몸 상할까봐서 밥 걱정해 주시는 분들의 위로는 마치 어린 시절 '차조심 해라'고 당부하셨던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았다.

목회란 것이 참 외롭고도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성도들은 목사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물론 목사도 성도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 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끼니 걱정 해주고, 몸 상하지 말라고, 당연한 것 같지만, 그래서 잘 안되어지는 밥 걱정의 인사를 서로가 나눌 수 있다면 외롭고도 험한 목회의 길이 조금은 수월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세상에 누가 제대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물론 아직도 절대적인 빈곤으로 끼니 걱정을 해야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이처럼 육신의 양식은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되고, 만병의 근원이 된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배고파하는 우리네 마음들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육신의 배는 포만감을 느끼는데 우리의 마음을 허기짐에 배고파하고 있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 세상 사람들의 현실인 것 같다. 신경정신과마다 마음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넘쳐나고 '힐링', '치유'와 같은 콘텐츠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약 중독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현실도 이러한 마음의 허기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러한 이 때에 우리는 마치 그 옛날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그 음성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얘야 밥 잘 먹고 다녀라.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잘 챙겨 먹고 다녀' 아주 사소하지만 가장 기본에 근거한 끼니 걱정해 주셨던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힘들고 어려운 때에 "밥 잘 먹고 다녀"라고 위로해 주셨던 많은 선배, 친구, 후배들의 위로에 힘들었던 수해복구의 과정을 순탄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이제는 또다른 어려움으로 인해 사역지를 옮기고 새로운 곳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끼니 걱정 해주시던 귀한 분들의 위로 덕분에 하루 하루 힘내서 달려가고 있다. 힘들고 지쳐 있었던 엘리야를 위해 까마귀를 통해서 끼니를 해결해 주셨던 하나님,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냐고 수고했던 제자들을 위해서 갈릴리 해변에서 떡과 고기를 구워주셨던 주님, 아마 하나님께서도 다른 그 어떤 위로보다 '밥 잘 먹고 다녀'라고 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실까 싶다.

강명훈 목사 / 대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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