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내드리는 목회

[ 목양칼럼 ]

송경호 목사
2023년 11월 01일(수) 10:47
서울과 가깝고 아름다운 경기도 양평에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과일과 음료수를 사들고 마을회관을 돌면서 인사드리고, 교회 어른들에게도 부임 인사를 드렸다. 그 중 한 원로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목사님! 이곳에서의 목회는 '잘 보내드리는 목회'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0살을 바라보는 노인의 힘 있고 묵직한 목소리가 쿵하고 마음에 와닿았다. 이게 무슨말인가? 성장과 부흥을 꿈꾸며 이곳에 왔는데 당연히 잘 맞아들이는 목회를 해야할 것 아닌가. 그런데 잘 보내는 목회를 해 달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에 필자에게 목회에 대해 조언해 준 한 선배 목사님이 생각났다. 그 분은 "교인들이 아무리 멀리 이사를 가도 절대로 '가까운 교회 나가시라'는 말을 목사가 먼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산으로 이사한 성도가 주일 마다 기차 타고 올라오는 것이 안쓰러워 '이제는 근처 가까운 교회로 나가시라'고 얘기했는데, '목사님이 우리가 싫어서 교회를 옮기라고 한다'는 이상한 소문으로 와전됐다고 한다. 교인을 아껴서 한 말이 목사님을 공경에 빠뜨리는 일이 됐다고 한다.

'이 장로님이 새로 부임한 내가 마음에 안드시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장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장로님은 새가족이 많은 도시 교회와 달리 시골은 장례가 더 많은 것이 목회 현장이라고 의미를 풀어 주셨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라고 덧붙이셨다. 이 또한 무슨 말씀인지 물어보니, "인생 여정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가는 분들과 함께하시니 복이 많은 거 아닌가요"라며 웃으셨다.

장례가 많은 시골교회 사역을 힘들어하는 목회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국백성을 다시 아버지께 보내드리는 최종 단계의 사역을 감당하니 얼마나 큰 복인가. 교회의 어른으로 평생을 헌신하셨던 장로님의 말씀이 마지막 유언처럼 다가왔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오랜 병환으로 거동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집사님 한 분을 방문했다. 그런데 필자가 심방한 그날 저녁 집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주변 이웃들과 성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무래도 목사님을 기다린 듯 하다"며, "심방 후에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셨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임하자마자 첫 장례를 마치고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필자는 '잘 보내드리는 목회'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것을 당부했던 장로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지금도 잘 보내 드려야한다는 장로님의 유언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잘 보내드리는 목회를 하니 하나님이 또 다른 생명들을 보내주시어 행복하다. 우리교회는 올해 104주년을 맞는 전통있는 교회다. 그 중 9년을 섬기며 많은 분들의 임종을 지켜봤다. 이땅에서 하나님 자녀로 살다가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마음 속에 한분 한분 남아있다.

오늘도 '잘 보내 드리는 목회'를 위해 심방하고 장례예배를 인도한다. 하늘나라 가신 장로님의 말씀처럼 나는 '잘 보내드리는 복이 있는 목사'다.

송경호 목사 / 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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