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에 대한 소회(所懷)

[ 목양칼럼 ]

박종반 목사
2023년 10월 18일(수) 13:37
아련하면서도 가슴 아픈 추억의 한 페이지를 꺼내본다. 목회자를 꿈꾸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필자는 3학년임에도 모교회에서 고등부 학생회장으로 섬기고 있었다. 어느날 후배인 한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식물인간이 될 것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교육부서를 전담하는 교역자가 없던 시절이라 부장선생님과 교사들이 모든 활동을 지도했고, 학생회장의 역할도 컸다. 필자는 학생회 임원 몇 명과 병문안을 갔다. 온돌방으로 된 입원실이라 신발을 벗고 병실에 들어가 안부를 물은 후 회장이기에 대표로 환우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오려는데, 후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뒤돌아보니 정말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당시에는 손목시계도 흔치 않았고, 그 시계는 더 귀한 디지털 시계였다. 수일을 누워있으니 답답해 내 손목시계에 관심을 보인 것이라는 생각에 벗어서 후배의 손목에 채워주고 병실을 왔다. 어린 나이였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후배는 사고 휴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이후 시계를 후배 아버지로부터 돌려받았는데, 시계를 볼 때 마다 후배가 생각났다.

또 한 가지는 전도사 시절의 일이다. 심방을 마치고 심방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모두가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라 식사 양이 적었다. 그러나 필자는 한 그릇을 더 부탁해 절반을 덜은 후 먹으려 했다. 그랬더니 심방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젊은 사람이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을 내지. 최소 세 그릇은 먹어야 해"라고 말했다. 문득 이런 생각 들었다. '내가 밥을 먹는 만큼 밥값을 하고 있을까?'

겸허한 마음으로 독자들에게도 이 질문을 하고 싶다. '밥값을 하고 있는가?' 필자도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인간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한다. 인간은 먹을거리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 먹을거리에 정열을 쏟는 만큼 삶에는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밥은 자신이 희생되어 영양분을 공급함으로 인간의 육체를 건강하게 해 준다. 어느 목사님이 쓴 '예수님은 우리의 밥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예수님도 밥처럼 우리에게 양분을 공급해 주고 계신다. 그렇다면 밥이신 예수님을 먹고사는 우리는 밥값을 하고 있는가? 거듭 묻지만 새삼스러운 질문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밥이 돼 주셨듯이 우리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삶의 자리에서 밥이 돼 밥값을 제대로 하고 사는 신앙인이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필자는 담임목사로 부임해 심방하며 어느 집을 방문하든 목회자로서 행복을 느꼈다. 가정에서 준비해 간 말씀을 선포하고, 가족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어떤 땐 아픈 가족을 위해 함께 울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담소를 나누는 시간들이 참으로 귀하다. 물론 어떤 경우엔 눈시울을 붉히며 슬프거나 쓰라린 고통의 시간을 보낸 삶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때는 목회자로서 마음이 더 아프기도 한다.

박종반 목사 / 은혜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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