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의 신학과 전통에서 살펴본 치유

[ 특집 ] 제108회 총회주제 해설 4

최윤배 교수
2023년 09월 22일(금) 16:46
세계기독교 역사와 한국교회사에서 "치유"를 중심으로 종종 양 극단이 존재했다. 한쪽에서는 주로 자연적·의학적 치유에만 집중하고, 지나친 합리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하나님의 신비롭고 초월적이며 기적적인 치유를 무시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적 치유만을 절대화하여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 치우친 결과, 의학적 치유를 아예 무시하거나 신앙생활과 목회실천 활동에서 신유 이외 하나님의 다양한 은사, 은혜, 역사, 활동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반적인 치유와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적인 신유 역사를 동시에 인정하면서도, 일방적인 신비주의나 은사주의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치유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토대와 목회적, 선교적 실천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할 것이다.

I.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와 세계 개혁교회 전통에서의 치유 사역

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병자들을 위한 치유목회

한국기독교회사의 성령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치유와 신유 집회에 대한 평가는 크게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로 갈라진다.

미국 유학시절 극심한 질병으로 학업을 마침내 중단하고, 투병 중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한 한경직 목사는 항상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경직 목사는 지나친 은사주의적, 열광주의적 성령 이해와 성령 운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세진 목사는 1919년 14세 때 그 당시 한의술이나 양의술도 고치지 못했던 결핵성 관절염을 80일의 기도를 통해 치유받았다고 간증했다.

2. 세계 개혁교회 전통: 병자들을 위한 치유목회

1) 개혁파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처와 칼뱅의 치유사역

종교개혁 운동과 개혁교회 안에서 성령에 대한 관심이 약하다는 오해가 종종 발견된다. 종교개혁자들이 성령에 대한 관심이 약했다는 주장에 강력하게 반대한 네덜란드 역사신학자 꼬쁘만스(J. Koopmans)는 "교리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의 의미는 성령론의 재발견과 성령론에 대한 발전 속에 있다"고 올바르게 주장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성령의 신학자"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처럼 우리 교단은 참 교회의 3대 표지(말씀선포, 성례전 집례, 치리/권징 시행)를 받아들이고 있다.

개혁교회는 교회 안에 항상 있어야할 목양의 세 가지 기능, 곧 "가르치는 기능", "다스리는 기능", "섬기는(봉사하는) 기능"을 주장했다. 그런데 집사가 담당하는 섬기는(봉사하는) 기능에는 가난한 자를 위한 재정(물질) 관리 기능과 병자의 돌봄과 간호 기능이 있다. 마르틴 부처나 칼뱅은 가난한 자를 위한 재정 관리는 남자 집사에게, 병자들의 돌봄과 간호 기능은 여성 집사에게 담당시켰다. 따라서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목양과 관련된 치유목회 기능이 두 가지로 작용하는 바, 곧 치리와 권징은 성령을 통한 사랑의 매와 치유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여성 집사직도 병자의 치유 기능으로 사용된다.

마르틴 부처에게서는 항상 영·육 또는 영·혼·육의 "전인(全人)"과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공동체 전체와 사회와 국가 공동체 전체가 중요했다.

칼뱅의 제네바 목회사역 중에서 치유와 관련된 "종합구빈원"과 "집사직"을 살펴보자. 칼뱅의 제네바 선교의 중요한 기구로서 제네바 "종합구빈원"(General Hospital)이 있었다. 종합구빈원은 병자들을 돌보는 병원의 기능뿐만 아니라, 고아와 가난한 자와 노인을 돌보는 종합사회복지기관의 역할을 했다.

2) 에듀아르트 투르나이젠의 스위스 개혁교회의 치유사역

독일 루터교회 소속 블룸하르트(Blumhardt) 부자(父子)는 "예수께서 승리자이시다!"라는 상징적 표어로 인해 널리 알려진 신학자들인데, 아버지 블룸하르트는 고틀리빈이라는 소녀(여성)에게로부터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친 사건으로 유명하다. 블룸하르트 부자는 이 사건에서 세상의 악과 마귀와 죽음의 세력을 축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인식했고, 승리자이신 예수를 그들의 가르침과 설교의 주제로 삼았다.

투르나이젠은 목회와 "정신치료법" 사이의 관계 문제와 관련하여, 목회를 위해 정신치료법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치유목회는 성경에 기초한 하나님의 "사죄"와 은혜를 전제한다는 측면에서 양자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투르나이젠은 성경에 기초한 인간 이해로부터 질병과 죄를 상호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목회치유를 "사죄로서의 치유"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투르나이젠은 자연과학적인 의학치료를 배제하지 않고, 그것과의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목회에 있어서는 이제 참된 '치유로서의 해방'이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투르나이젠은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기적으로서의 치유"를 주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치료와 사죄의 상관관계에서 볼 때 모든 치유가 다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치유되는 것이 기적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투르나이젠은 어둠의 영들이 배후에서 역사할 수 있는 "인지학", "심령과학", "마술", "운명감정", "점성학" 등의 사상을 경계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하는 동시에 목회를 통해 악령의 세력을 몰아내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할 것을 촉구한다.

II. "치유"에 대한 용어 정의

의사가 가지고 있는 의술은 창조주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과 구속과는 무관한 "자연은혜" 또는 "일반은혜"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의술과 의약을 통한 의학적 치료나 자연치유를 하나님의 자연은혜로 이해하고,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병고치는 은사"는 의술의 결과가 아니라, 신령한 능력에 의해 병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이 은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치료하고 구원하는 성령의 능력에 참여하게 하며, 특별히 믿음과 신뢰가 충만한 기도가 기적적인 것을 가능케 하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으로 병을 고쳐서 건강하게 만드는 권세를 주신다는 초대교회의 근본 경험과 관계가 있다. 병고치는 은사를 소유한 사람은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병을 고치는 것이 항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고후12:8~9)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환경에서 신유의 도구가 되었다. 병고치는 활동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에 속했다. 이 활동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복음선포 메시지와 결부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적으로 유효하게 했다.

III. 구원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치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35개 이적들 중에 "치유" 이적은 17개로서 예수님의 이적 사역 중에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예수님의 치유를 포함한 35개의 이적은 하나님 나라 도래의 징표(눅 11:20), 사단 통치시대의 종말(마 3:27), 메시아적 비유행위(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선포/메시아적 자의식), 하나님의 인간회복 의지(신·인(神·人) 샬롬공동체의 회복), 성령의 능력으로 이적을 행함(성령의 활동) 등을 의미한다.



최윤배 교수

전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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