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훈련에서의 기억 조각

[ 미션이상무! ]

이구 목사
2023년 09월 13일(수) 15:31
함정에서 드린 수요저녁예배 모습.
2015년 8월 27일. 필자는 해군사관학교 70기 생도들과 함께 5대양 6대주를 131일간 함정을 타고 돌아다녔다. 바닷길로 총 5만 6100km였고 15개국 16개항을 들르는 장기간의 훈련이었다. 생도들은 이 기간 동안 해상에서는 해군장교로서의 실무능력을 배우고 세계 각국의 해군부대를 견학하며 식견을 키우는 동시에 군사외교관의 역할을 해나가는 교육훈련을 받게 된다. 군종목사로서는 순항훈련 131일의 시간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생도들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기에, 순항훈련의 기간은 지금까지 선교의 중요한 장(場)이 되고 있다. 필자도 해군해병대 군종목사를 하면서 생도들과 131일간의 함정생활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닌 시간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순항훈련을 출발하기 전에 총회 세계선교부를 통해 기항지에 계시는 선교사님 명단을 받아 미리 연락을 취할 수 있었고, 선교사님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여 함정이 들어갈 때 전달해 드리는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었기에 군종목사로서 더욱 뿌듯한 기간이기도 하였다. 또한 총회 파송 선교사님들을 통해 현지에서 남들이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경험을 생도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기에 교단 소속 군종목사로서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순항훈련 중 16개 항구를 들를 때 항상 한국교민들과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 이상, 해군이 들렀던 기항지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한국 교민들 중 대다수가 선교사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군함이 부두에 입항할 때 작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 해군을 맞아주셨다. 그리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대한민국 태극기가 달린 군함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해군군종목사로서, 그리고 군선교사로 살아가며 세계선교현장을 짧게나마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큰 경험이었고 도전이었다.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그리고 낯선 문화와 풍습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가족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군선교사로서의 열정을 다시 불태울 수 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함정에서의 주일예배와 수요저녁예배는 참 은혜로웠다. 생도들과 실무장병들이 함께 참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듣는 시간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나도 자칫 영육 간에 지치기 쉬운 함정생활에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설교에서부터 예배의 순서마다 많은 몸부림을 치며 예배를 준비하였다. 습관적인 예배가 되지 않도록 소소한 변화들을 주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활력을 얻는 시간들로 만들어 가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생도들과 실무장병들 중에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연락을 주고받는 귀한 만남이 지속되고 있다.

순항훈련 중에 딱 1번 수요저녁예배를 못 드린 적이 있었다. 바로 대서양을 건너면서 황천(荒天)이 심해서 8미터 파도를 헤치며 나아갈 때였다. 함교에서 하늘을 보았다가 바다 아래를 보았다가를 반복하며 8미터의 파도를 넘으며 나아가는 시간은 군종목사로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자기부인(self-denying)의 시간이었다.

이 글을 독자들이 읽을 때쯤이면, 해군사관학교 78기 생도들과 군종목사님(소령 김바울 목사, 기감)이 141일간의 순항훈련의 대장정을 시작한 뒤일 것이다. 내년 1월까지 순항훈련을 참가해야 할 사관학교 78기 생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늘어나고 믿음의 깊이가 더해지는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그리고 안전한 순항훈련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이구 목사 / 해군중앙교회·해군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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